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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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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13)

“서랍속 당신사진을 꺼내봅니다”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0-10-22 (목) 12:17:17

 

 

무슨 수배가 풀렸는지 좌우지간 당신도 돌아올 수 있다 하여 제 친구 순지 이름으로 저에게 부친 편지 주소만 들고 저는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이리 저리 완행버스를 몇 번을 바꿔 타고 빵과 우유로 허기를 달래고 마침내

주소에 적힌 집을 물어 물어 찾아 갔더니 당신의 외삼촌 집이었습니다

처녀가 겁도 없이 어디라고 찾아 와? 외삼촌께서는 그런 눈으로 보시는 것 같았는데 외숙모님은 이물없이 대해 주셨습니다. 당신이 이곳 저곳으로 몇번을 옮겨 다녀 어른들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 하시는데 고등학생인 당신의 외사촌 동생이 안다 해서 다음 날 아침 일찍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하루 밤을 추수해 논 먹을 거리로 꽉 찬 방에서 잤습니다. 외숙모님이 군불을 때주셔서 초저녁에는 방이 잘잘 끓더니 새벽녁에는 싸늘하니 식어 추워서 잠이 깨었습니다. 잘 됐지요. 잠충이가 자느라 남들 다 일어났는데도 안 일어나면 흉일텐데.

 

동생이 어디 있는지 안다 해서 길을 나서면 금방 만날 줄 알고 가슴이 몹씨 설레었는데, 머물고 있는 줄 알고 간 곳에서는 이미 떠나고 흔적이 없어 다시 버스를 탔다가 걷다가 하는 게 온종일, 산길을 잘못 들어 산꼭대기 인적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니 눈보라가 겁나게 쳐서 앞이 안 보이고 참으로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어떻게 뱅뱅 맴돌던 산중을 빠져 나와 집도 좀 보이고 하는 곳으로 들어 서서 휴, 안도의 숨을 내쉬며 걷고 있는데 저 위 별로 높지 않은 산꼭대기에서 누가 노야 노야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습니다. 엄마야! 빵모자를 쓰고 있는데 틀림없는 당신이었습니다.

 

동생이 형을 막 불러댑니다. 나는 기어이 당신을 찾아 낸 기쁨에 아무 말도 못하고 몸을 떨고 있는데 나를 본 것 같은데 당신은 산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노야 노야 우렁찬 소리로 불러 대어 우리를 알아 보고 그러는지 알았는데 .

 

제가 거기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여 가만 있는데 자꾸 자기 쪽으로 대고 소리를 질러 길을 물어 보려고 하나 보다 하고 그냥 내려 와 봤다 하더군요. 눈 앞에 서 있는 저를 보고 당신은 멀뚱멀뚱 보기만 하고

 

그러더니 내가 백야시에 홀렸나하며 머리를 흔들어서 우리는 막 웃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애써 태연한 척 동생에게 이것 저것 물으면서 힐끔힐끔 나를 보는데 정신이 쑥 빠진 표정이었습니다. 둘이 있을 때 당신은 내 손을 당신 가슴에 갖다 대어 주었지요. 심장이 쿵쿵 뛰고 있다고. 우리는 당신이 머물던 작은 암자로 가서 늦은 점심을 한상 받아 먹고 같이 김천으로 해서 대구에 왔지요.

 

천지가 깜깜한 밤, 고속버스 막차를 타고 당신 품에 안겨 올 때는 참으로 세상이 다 내꺼 같고 내님은 얼마나 우람하고 믿음직스러운지 나 얼마치 사랑해?” 물으니 십 원 어치!” 당신은 장난스럽게 말하였지요. 너무 행복하여 가슴은 터질 듯하며 마치 천상에 있는 듯 하였습니다.

 

요새 저의 건강상태는 아주 좋아요. 아침체조는 한번도 빠뜨린 적이 없었구요.

밥 한 그릇 게눈 감추듯이 뚝딱이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고. 이래도 말을 잘 안듣는다고 미워할건지, ?

197551일 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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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님께

오늘도 비는 추적추적 나리고 있습니다. 볕이 쨍한 날이 이틀을 가지 않는군요. 아침에 깨면 하늘이 그럴 수 없이 파랗고 화창한데 좀 있으면 비바람이 몰아 칩니다. 좀 심하게 몰아 칠때는 우산이 낙하산이 되어 저는 걷잡을 수 없이 날려 가 곤두박질 쳐질 것 같아 무서워 제 재산목록 1호인 우산을 놓아 버려야 했습니다.

 

한번은 휭 불려 갈 것 같았는데 마침 학교 용인 아저씨가 (팔척 장수같으신) 보시고 저의 뒷덜미를 꽉 잡고 질질 끌고 가서 무사했습니다. 바닷가에 살아 본 적이 없어 날씨가 이렇게 변덕인줄 몰랐지요.

 

비가 좀 오면 교실마다 비가 새어 난리입니다. 그러면 산길을 걸어 집에 가야 하는 아이들을 얼른 보내야 한답니다. 그렇지 않으면 물이 넘쳐 길이 끊겨 갈 수가 없다 합니다. 가정방문을 댕겨 보니 죽변 사람들의 생활은 말도 못하게 궁핍합디다. 아침에 조회하러 미안해서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공납금 얘기 할까봐 저이들이 먼저 고개를 팍 숙이고 있는 걸 보면 가슴이 무너져 내려 않는 듯 아픔니다.

 

담임의 일 중에 하나가 아이들 일기를 매일 읽는 데 우리 반 한 아이는 집안의 가난에 대해서 얼마나 절망을 하는지 그애의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이 소녀는 겨우 중 2인데 문학적인 재능이 대단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우리 부모가 불쌍하다 우리는 왜 가난한가 단순히 말하는데 이 아이는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성숙한지 그리고 어휘와 문장력도 제가 깜짝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부모님이 돈 때문에 걱정하는 시름에 잠긴 모습은 보고 자랐지만 뼈아픈 가난의 고통은 그리 모르고 천방지축 살아온 제 자신이 너무 미안할 정도입니다. 아마 이 여학생은 나중에 분명히 우리나라 문학계에 독보적으로 서리라는 확신이 듭니다.

 

여선생 하나는 애인 보러 대구에 나갔고 또 하나는 친구가 찾아 와서 이때까지 깔깔거리다 등대에 가 본다면서 나갔습니다. 저는 설합 속에 넣어 둔 당신의 사진을 꺼내 봅니다. 그동안 자주 보지 않았습니다. 보노라면 눈물이 날 것이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괜히 청승을 떠는 것 같아 참았습니다. 당신 모습은 많이 변했겠지요. 머리는 빡빡이고. 군에 간 남자들은 살이 많이 찌던데 당신도 퉁퉁 쩠겠지요?

 

이곳에 온 지 벌써 두달이 됐습니다. 수 번의 주말이 왔는데 빨래하고 목욕하고 책 좀 뒤적이다가 낮잠 자고 나면 후딱 지나가 버립니다. 대구에 가자면 7시간이나 걸리니 하루 갔다 하루 오는데 차에 시달릴 걸 생각하면 끔찍해서 갈 생각을 말아 버립니다.

 

화창한 봄날, 그곳 거리는 성장한 선남선녀로 물결치겠지요. 당신이 휴가 나오시면 그때는 벼루고 멋부려서 당신 팔짱끼고 활보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훈련이 끝났으니 숨 좀 돌리시려나. 무얼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지요.

죽변 거리에 있는 꾸줄부레한 졸병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군요. 유심히 쳐다 보여 집니다. 당신은 뭐가 필요한지요. 먹고 싶은 것도 많겠지요. 읽을 책을 보내도 괜찮을지. 말씀하시면 뭐라도 보내겠습니다

 

어제는 경미언니께서 답장을 주셨습니다. 딸애에게 하루를 다 빼앗긴다 하시며 옛날처럼 말갛게 차려입고 찻집에도 가고 싶고 봄날의 들판도 달려보고 싶다 하십니다. 엄마가 되어 보니 엄마의 은공을 절실히 깨달으신 듯 모두 엄마에게 효도해야겠다고 하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편지 쓰려고 했는데 그 말씀 듣고 내 엄마와 당신 엄마께 삼천원씩 적지만 국 끓여 잡수시라고 부쳤습니다. 당신 엄마께서는 당신이 편지마다 복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이 세상 누구 못지 않는 효자가 되련다 하더라고 하십니다. 엄마를 끔찍이 사랑하는 당신이니 그곳에서도 엄마를 못 잊으시겠지요.

 

언니 말씀에 큰형님은 아직도 당신을 위한 사업에 분주하신다 합니다. 잘 안되더라도 다 신의 뜻으로 돌리겠습니다

 

요새는 중앙일보 연재소설 겨울여자보는 데 낙을 부칩니다. 석기는 대학신문 기자이고 이화는 세상 물정 모르는 온실 속의 꽃같은 여대생, 석기를 만나 조금씩 세상에 눈을 뜹니다. 어느 날 석기는 예정을 앞당겨 입대하게 되고요. (대학사태로)

 

오늘 날 이런 젊은 연인들이 많이 있나 보지요. 작가는 조해일씨.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그의 글은 처음 보는데 참 신선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 오려서 보내니 심심풀이로 읽어 보세요.

 

내일 쯤 당신의 편지가 오지 않을려나 기대해 봅니다

안녕 내님!

197554, 노야

 

 

***그리운 내님이여

간밤에 잠을 깊이 들 수 있었는지요. 저는 막 잠을 깨었습니다. 일찍 잠자리

에 들어 아주 단잠을 잤습니다. 시계는 다섯 시를 좀 지났네요. 새소리가 들리고 닭이 웁니다. 옆집 목재소에서 기계소리가 요란하게 들립니다.

 

무척 상쾌한 기분이라 밖으로 나가니 바람이 여간 거세지 않습니다. 그래서 후다닥 다시 들어 와 이 글을 씁니다. 어제는 오선생이 대구 갔다가 제 심부름을 하고 왔습니다. 주선생님은 제주도에 가셔서 10일이 지나야 오신다고 하더랍니다. 당신 부모님은 별고 없으시고 큰형님 사업도 잘 되니 걱정마라고 하시더랍니다

 

지난 일요일 당신께 편지 쓰고 난 뒤 당신 편지 기다리다 보니 벌써 토요일입니다. 이제는 정말 논산을 떠나셨겠습니다. 이화는 석기가 훈련을 마치고 배치받은 휴전선 근처로 벌써 찾아가 둘이는 꿈같이 하루 밤을 같이 지낼 수가 있는데 저는 아직도 당신이 어느 곳에 계신지도 모르고 있으니 약이 올라 미치겠군요. 두 여선생은 매일 소설을 보면서 되어 가는 것이 꼭 노선생 두사람 같다면서 흥미있게 봅니다

 

6일날 봄소풍을 다녀 왔습니다.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라는 말이 지극히 실감이 되었습니다. 어느 예술가가 있어 이처럼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눈에 보이는 색채 하나하나가 감동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하늘에는 학인지 무척 고귀하게 보이는 하얀 새 한마리가 끝없이 파란 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문득 저도 저렇게 날아보고 싶었습니다. 날아 가지는 못해도 달려는 갈 수 있는데..

 

죽변에 와서도 고작해야 학교 뒷산이 아니면 등대로 가보는게 다였는데 이렇게 멀리 나와 보니 이곳은 좋은 곳이고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더 많이 납니다. 감동을 잘 하는 당신이라 여기 와 보시면 무척 좋아 하시겠지요.

 

당신의 일과는 무엇인지요. 쳇바퀴 돌아가는 듯한 지루한 하루가 아닌지요. 그리고 그 속에서 홀로 와 있는 듯한 외로움이 엄습하지나 않는지요. 많은 사람이 당신 생각을 지극히 하고 있습니다. 부디 외로워 마세요. 당신 편지 받으면 이때까지 써둔 글을 다 부치겠습니다. 제법 푸짐할 거에요. 안녕!

1975510일 노야.

 

 

***보고싶은 당신께

우리 아줌마는 정말 심통 사나운 여펜네입니다. 당신 편지를 두통이나 받아 놓고는 일요일이라 우체부가 올까봐 하루종일 집에 있었는데도 주지 않고 있다가 저녁에 대구 집에 전화하러 잠깐 학교에 갔다 오니 방바닥에 던져 두었더군요. 번번이 이러니 무슨 고약한 심보인지 모르겠습니다.

 

열흘 간 편지가 없길래 이제야말로 어디로 떠났나 하고 있었습니다. 56일과 7일자 연무대 소인이 찍힌 편지라 4월에 쓴 편지를 괜히 묵혀두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다 짜증을 내며 속 끊이는 당신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간 저는 소화 한번 안된 적 없이 잘 있었습니다. 남들 주는대로 하숙비를 다 주고 있는데도 뭣 때문인지 하숙집 아줌마가 못 마땅해 하는 기색이 심하여 오선생은 자취하러 나갔고 김선생과 저도 방 구하러 다니다 다행히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서 나갈려고 자취도구 보내달라고 집에다 전화했더니 뜻밖에도 희소식이 있었습니다

 

거창에 있는 학교에서 저를 데리러 왔더랍니다. 재단이 부자인 사립학교라 공립학교와 꼭 같은 대우를 해주고 대구에서는 버스로 1사간 40분 밖에 걸리지 않는 곳입니다. 36일 여기에 와서 아직 한번도 집에 못 가볼 정도로 멀고 곧 당신에게도 뻔질나게 면화도 다녀야 하는 데 그러지 않아도 전전긍긍 하던 차 입니다. 17일 토요일 대구에 가서 알아보고 오라는 것이 확실하면 떠날려고 합니다.

 

제 좁은 소견으로 당신을 답장 기다리다 울화통 터지게 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미안해요. 내일 아침 등기로 몽땅 부쳐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보낸 편지는 다 받는 것 같으나 제 편지는 못 받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흥분하여 편지가 두서없습니다. 다음에 차분히 쓰겠습니다.

1975511, 노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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