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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희, ‘불멸의 남자 현승효’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2년,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돼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 구보훈련중 사망한 현승효. 그에겐 뼈가 녹고 피가 말라도 식지않는 불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연인의 사연들, 30년만에 빛을 본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를 뉴스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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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30)

‘내겐 노야라는 생명이 있다’
글쓴이 : 현승효노천희 날짜 : 2021-05-16 (일) 10:21:11

내겐 노야라는 생명이 있다

 

 

-------보고픈 노야에게

두통의 편지 잘 받았습니다. 서울서 순지씨를 만나셨다니 무척 반가웠으리라 생각됩니다. 나도 그 귀절을 읽으며 한참이나 서울서 생활할 때의 추억에 잠겼습니다. 많은 것이 변해도 노야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내 가슴에 새겨 있습니다.

 

어제는 박동현군에게서 편지가 와서 반가왔고 오랫만에 고향소식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노야가 사는 집 앞 들판도 황량해 졌으리라 생각됩니다. 햇볕이 따사롭게 비치는 토요일 오후에 넓은 벌판을 거닐면서 집으로 돌아 오실 노야를 그려봅니다. 그러다 금방 눈발이 나리고 온 산하가 백설로 덮이겠지요. 그날이 금방이겠지요.

 

역사철학 삼권을 구해 놓으셨다가 여기서 부탁할 때 부쳐주기 바라오.

모든 것이 다 잘 되리라 믿고 건강에 유념하시길 빌고 있소. 한파가 오기 전에 방문 틈에 종이를 바르고 가스가 새지 않게 유의하시오. 이만 줄이오. 승효.

114일 수, 1975

어려운 글들이 갑자기 해석되어 기뻤다. 별게 아니다. 너무도 귀에 따갑게

들었던 쉬운 말을 나는 이해 못해 온거다. '인간은 미완성이다'라는 말.

제껏 내가 읽어 온 책들은 결국 인간은 미완성이기에 이러한 주장 저러한 주

장이 엇갈린 것이 아니었던가. 역사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실존

사이에 소멸하는 존재로서 세계는 있는 것이다.

 

이러하기에 인간이란 하나님을 믿음 속에서 확실성을 가지는 것이다. 갑자

기 머리가 시원해졌다. 이상한 일이다. 여태껏 그것을 알면서도 인식을 못했

다는 것이. 그러므로 인간이란 무제약적인 要求란게 있는 것이고 그것은 인

간이 그 자신이 될려는 노력인 것이다.

이 무제약적인 요구란 것은 자기반성을 통하여 도달할 수 있는 실존의 결단

을 의미한다. 그것이 결단이라는 것에 인간의 문제를 인간자신의 책임하에

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것은 선과 악의 영역에서

그 결단의 내용을 성립할 것이다.

 

116일 금, 1975

계속 일기를 거른다. 그동안 쓸 만한 느낌 사건들이 없었는 것이 아니라 새로

운 경험이 아니기에 선뜻 이 수첩을 꺼내기가 어렵다. 어제는 동현군에게서

편질 받았고 노야에게서도 한통 받았다. 동현의 글엔 믿음이란 도덕도 아니

요 이념 철학도 아니요 단지 절대자 앞에 선 초라한 인간의 모습이며 생활

속에서 그 믿음이 확인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제 한 사람의 성직자로서의 자세와 각오를 터득하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나에게 인식된다. 왠지 약간 소외감을 그에게서 느낀다.

나는 객관적인 율법이나 교리에 맹복적인 믿음의 신앙을 제공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거부한다. 나는 오히려 모험과 시련을 거쳐서 아니 상처 투성

이의 투쟁을 거쳐서 내재적 의미에 있어서의 하나님을 느끼고 그의 확실성

과 접촉하기를 결단하는 철학인의 길을 택하기를 원한다.

 

나와 동현군은 성장과정과 그 배경이 판이하다. 그러나 동현 군의 글 속엔

앞으로 대성할 천재의 느낌이 번뜩이는 것 같아 즐거웠다. 왜냐하면 그의

글 속엔 객관적 실체로서의 맹목적 신앙을 거부하며 시간 속에서의 무시간

적 요구로서의 절대자의 인지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놈은 확실히 보기

드문 천재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결함 많고 재미있고 실수하며 그리고 항상 진리를 추

구하며 사는 재미있는 생활인이 되기를 원한다. 이유는 없다. 그저 나에겐 노야라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내 곁에 있는 한은 거짓말도 하고

욕정도 가지고 탐욕하는 그러면서 항상 신선한 삶의 정기를 찾는 그런 사람

이 되고 싶다.

노야! 사실 인간 존재란 걸 봐라. 솔직히 긍정적으로 볼 때 그것은 미와 추

그리고 추악함과 고상함을 동시에 양가적으로 지닌 중간적 존재로서의 미완성일진대 세계와 을 끊고 오직 자신의 내적 자유에 침몰하는 것은 오

히려 절대적 부자유에 속한다.

 

반대로 세계 속에서 타인들과의 교통 속에서 세계의 일부분으로서의 공동체 공동의지 속에서 자신을 추구해 갈 때 거기에 비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진리란 결국 우리의 직관에 의뢰하는 것이고 우리의 생존이란 것도 결국은 타인 즉 다른 자기존재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란 두사람 사이의 진리인 것이야.

나는 무식하고 눈이 멀고 벙어리라도 좋다. 오직 노야가 내 곁에 있고 언제

나 변함없는 사랑으로 남아 있으면 그것으로 나는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어제 밤에 노야에게 편질 썼다. 오늘 밤엔 동현군에게 쓰리라. 그래서 나의

이 태도를 알려 주리라.

새벽에 일어나면 날이 캄캄하다. 오늘은 날이 무척 흐리더니 저녁엔 비가

뿌린다. 이 비가 지나가면 날씨가 더욱 차가워 지겠지. 하루 일과란 그저 치료해주고 왔다갔다 하고 밥 먹고 눈치 보며 책 한두 페이지 읽고 담배

피고 환자들과 싸우고 항상 후회하고 반성하는 그런 시간들, 그저 내 자신이 너무나 나태하고 한마디로 얌체질 하고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고 한다. 나는 내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아끼려는 투쟁을 부단히 계속한.

딴 사람들이 볼 때 얼마나 미울까. 나는 안다. 그러나 나에겐 책을 읽고 생각

할 시간이 그토록 절실하니 어쩌랴. 하나님 도와주소. 누구 말마따나 철학인

의 생활이란 자기반성 초월자에 대한 신뢰 믿음 즉 초월적 內省 과제의 천명, 거기에다 무제한적인 교통, 결론적으로 죽을 수 있음을 배우는 것이라 했다.

나도 그렇게 살기로 작정한다. 그것은 나의 反省을 통한 決斷이어야 한다.

 

노야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그립다. 보고프다. 안녕. 내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님께

가을이 깊어 갑니다. 집 앞 들판은 추수를 다 마치고 텅 비었습니다. 창가에서 내다보면 낙엽은 한잎 두잎 떨어져 외로이 구르고 있습니다. 가을이 익어가듯 아이들과 도 익어갑니다. 당신의 사랑을 흠뻑 받고 있으니 마음이 누그러져 가는 것 같습니다.

 

밤이 길어 당신을 생각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밥을 먹은

뒤 방을 말끔이 훔치고 나서 씻고는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이

생각 저 생각 행복했던 순간에 잠겨 듭니다. 당신을 만나는 기쁨은 크나 안

타까운 이별은 너무나 빨리 닥치곤 합니다. 군에 가기 전이나 지금이나 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날은 낙엽 밟는 소리에만 귀 기울이며 걷고 싶습니다. 당신이 제 어깨

에 팔을 얹으면 더 행복하겠지요. 그리고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다방에

앉아 뜨거운 차를 한잔 마시고 싶습니다. 당신과 하고 싶은 것이란 고작 이

런 것입니다. 곱게 물든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찬 겨울바람이 뺨을 스칠 때 우리는 또 만나겠지요.

19751030일 노야.

 

118일 토, 1975

~~ ~~

먼 허공에다 대고 그대의 이름을 가슴이 터져라 부르면 손에 잡힐 듯이 가까

이 구름이 반향을 돌려주고 멀리 들판 위에 둥둥 뜬 산들이 대답을 하는구려.

노야! 나는 지금 높은 산마루에 걸터 앉아 비경에 빠져 표현할 말을 잃어

버리고 있다오. 단지 그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 밖엔. 明鏡같은 강물에 나무

와 산들이 거꾸로 서있고 멀리 안개 속에 가물가물 꼬리를 감으며 가는 저

수갈래 강줄기들. 굽이굽이 돌아 언덕에 모습을 감추었다간 또 허리를 살짝 돌려대고 어딘가로 뻗쳐진 저 판판한 수면. 멀리 여기서 보면 산 위에 먼산

들이 올라타고 있고 강물의 끝간 데가 하늘 끝에 머물러 있다오. 구름 조각

들이 안으면 안길 것 처럼 가까이 누워 있구려.

이곳 이름없는 山城의 흩어진 돌조각 하나하나에 가늘게 떠는 내 손끝을 대

면 그 옛날 먼 그 옛날 함성소리, 그리고 돌에 징을 박던 그 전설같던 소리

가 내 손끝에 가늘게 느껴지는구려. 아직도 무너진 성벽이 파란 이끼를 띠고

강을 내려다 보며 하늘에 뜬 구름과 얘길하며 긴 시간을 돌만이 알고 있는 사연들을 간직한 채 묵묵히 서 있구려. 마치 그날의 애절한 사연과 고통이

나의 핏속에 녹아드는 것 같아 기와를 쥔 내 손이 자꾸만 떨리는구려.

흩어진 성터엔 갈대가 한길이 넘도록 자라있고 그 속으로 난 오솔길을 걷노

라니 수염이 하얀 농부가 하나 구름처럼 걷고 있더오. 언젠가 꼭 저런 모습

을 한 우리의 어른들이 이곳을 오르내리고 웃고 울고 했으리라. 나는 가만히

그대의 이름을 성벽에 대고 불러 봤다오. 그대의 얼굴이 의 얼굴이 되어

치렁치렁 댕기 딴 모습으로 쪽도리를 쓴 모습으로......

일기를 쓸 거리가 없어 오늘 억지로 싸리비를 가는 팀에 자원 따라 나와서

높은 산에 올랐다. 아직도 군데 군데 성터의 벽이 남아있고 산마루엔 펀펀

한 빈터가 엷게 퍼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사각으로 정연한 주춧돌이 옛

날의 모습을 시간 위에 지우고 있었다. 그 주춧돌에 걸터앉아 멀리 흐르는

남한강, 산 산 산들을 보며 넋이 빠진 것 처럼 한참 앉아 있었다. 을 생

각하고 끊임없는 內省과 절대자를 생각하고 앉아 있었다.

허공에 대고 노얄 부르니 밑에서 싸릴 하는 동료들이 화답을 한다. 그렇게

넋을 잃고 앉았다가 싸리를 적게 해서 찜빠 먹었다. 민가에 맡긴 쌀로 밥을 해 포식하고 땅을 뒤져 고구마를 캤다. 즐거운 하루였다. 높은 산마루에서 하

늘을 베고 누워 노야를 생각하다. 등허리의 잔디가 몹시 폭신폭신하다. 이렇

게 하늘만 있고 여린 바람만 있고, 찬란한 태양만이 내려보는 이런 곳에서

노야와 살고 싶다.

어제 일을 오랫동안 유추하다. 좀 미운 놈 꼴보기 싫은 놈이 치료를 하러

왔기에 대충 치료한 것이 갑자기 악화되어 버렸다. 좀 오래되었고 잘 나아

가기에 잊어버렸던 것이 어제 갑자기 화농하기 시작한거다. 수없는 자책과

나의 심성과 양심에 대해 회의하다. 괴로운 하루였다. 그리고 수없이 마음

속으로 사죄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거다. 나의 한가닥 남은 양심과 지성을 걸고 나는

맹세했다. 나의 원수일지라도 그가 환자로 내 앞에 있을 때는 나는 최선을

다 하리라고. 그 괴로운 심정이 나를 억지로 이곳으로 따라오게 한거다.

그래서 어제 밤엔 남몰래 주사를 놓아 주었다. 제발 잘 나아다오. 너는 나

에게 의사의 양심이란 것을 가르쳐준 사람이다. 나는 너를 오랫동안 기억할거다.

119일 일, 1975

그 친구가 아주 많이 나았다. 주사가 주효했나 보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도 나에게 한없이 감사해 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일이라 교회에 갔다.

곧 지대로 나갈 것 같다. 책을 2권 빌려 왔다. 사르트르와 야스퍼스 책이다.

나는 두번 째의 야스퍼스의 글을 읽고 먼저 읽은 그의 책에서 해석되지 않던

많은 것이 이해되어 기뻤다.

그것은 포괄자의 해석이었다. 모든 존재의 근본양식은 주관 객관 분열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객관은 주관이 그것을 해석하고 그것에 존재의식을 부

여할 때 그것은 비로서 대상이 된다. 옳은 말이다. 동시에 주관이 있기 이전

에 객관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이 주관이 객관적 대상에 향할 때 비로서 자기자신의 존재의식이 감지된다. 옳은 말!

 

그러면 이 양자(주관 & 객관)의 통일체로서의 一者, 一者란 무엇이냐.

것은 포괄자라 한다. 이 포괄자란 객관이 아니기에 우리의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그러한 거다. 따라서 이 포괄자란 분열 속에 존재한다. 옳은 말.

리고 이 포괄자의 양상은 생명 일반의식, 현존재, 세계, 초월자들의 다양한 모습으로 현현된다고 한다. 오랜 만에 좋은 글을 읽어 기뻤다.

이제 내일이면 월요일이고 지대로 나갈 날이 하루 당겨졌다. 요샌 밤마다

노야 꿈을 꾼다. 매일 그녀를 포옹하고 키스하곤 한다. 노야가 날 무척 그리워하나 보다. 안녕 잘 자요, 나의 천사.

 

1110일 월, 1975

드디어 지대로 출발하는 날이다. 나는 종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다 인사계

가 가라고 하자 기뻤다. 이 더럽고 추악한 무리들이 사는 곳을 떠날 수 있

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후에 월급을 130원 받고 jeep에 실

려 이곳 1대대로 오다. 가슴에 기쁨이 충만한다. 인원은 7명 다 나가고 4

만 있다. 점호도 없다.

 

내가 떠날 때 모두들 부러움으로 나를 보다. 미안하다. 그러나 나에겐 할 일

이 있으니까. 대신을 지날 때 노야를 생각하다. 그리고 고향을 생각하고 그

리운 이들을 그려본다. 처음 이곳에 double bag을 짊어지고 양평으로 왔을

때의 그 참담함, 지금은 여유를 가지고 볼 수 있다. 얼마나 뼈아프게 나는

읽고 느꼈던가. 이제야 비로서 군인이 된 것 같다.

노야, 보고싶다. 지금은 안개구름이 시야를 무척 포근하게 가리고 있다.

제 겨울이 오면 내 널 만나리라. 밤에 그럭저럭 있다가 자다. 아침 630

분에 기상. 이제 이곳에서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려고 한다. 산도 물도

그리고 하늘도 다 틀린다. 중대에 있을 땐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였는데 이곳에선 모든게 수평으로 보인다. 하늘이 무척 넓고 멀리 보기흉한 산들이 질펀히 누워있다.

 

이곳 생활은 모든게 small size라 시간이 별로 안 걸린다. 식기도 5, 청소구역도 조금. 규칙적인 생활도 없다. 이젠 노얄 생각할 시간도 많아졌다. 노야, 안녕 잘 자요. 이제 며칠 있으면 RCT 훈련을 떠난다.

 

1111일 화, 1975

날씨 쾌청. 해가 뜨니 무척 따사롭다. 오전은 책을 조금 읽고 오후엔 RCT

련에 쓸 위장풀을 하러 Double bag을 가지고 내까지 세명이 나가다. 민가에

서 낫을 빌려 종일 풀을 베다. 풀이 없어 온 산을 헤매다. 위장풀이란 그냥

풀이 아니라 꼭 음모처럼 생긴 풀이다. 연하고 그렇게 길지도 않다. 움켜질

땐 이상스러운 느낌이 나는 매끄럽고 탐스러운 풀이다.

밤에 돌아 와 내 천사와 시복이에게 편질 쓰다. 밤 열시가 되었다. 노야 안

녕 이제 잘 시간이 되었다. 좋은 꿈 꾸어요.

 

1112일 수, 1975

620분 쯤 막 기상하는데 누가 문을 세차게 찬다. 나가 보니 주변 사령

이다. 늦게 일어 났다고 취침복장 그대로 연병장을 돌라고 한다. 예전에 없

던 일이라 모두들 멍청해 진다. 2바퀴 돌고 나니까 들어가라 한다. 하기야

남들은 다 6시에 일어나니 할말도 없다. 내일부턴 늦잠을 못 자게 생겼다.

그리고 4명이서 불침반도 서라고 한다. 편하러 왔다 혹이 늘은 꼴이 되었다. 그러나 그건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닐까. 동일한 일의 반복 속에서 사물과 대

상에 대한 인식과 체험이 심화된다.그게 바로 철저히 사는 사람들의 생활

철학이다. 아침을 먹고 또 위장풀을 하러 나갔다. 오늘은 종일 해야 한다.

오전은 이산 저산을 마구 넘었다. 내 모습을 노야에게 그리고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낫을 들고 바보처럼 촌놈처럼 망태를 지고 다닌다. 이름없

는 길을 간다. 여기서 보는 시골 사람들 가난에 찌들고 마치 수천년을 그렇

게 살아온 듯한 저 무표정하고 멍청한 시골 사람들.

 

오늘 정말 가난이란 게 어떤 것이라는 걸 느꼈다. 60이 넘은 할머니가 혼자

사는 움막에서 라면을 삶아 먹으면서 그 기어들어 가는 방 그리고 벽에 보물 단지처럼 간수된 깨어진 사기종지 몇개. 허리굽은 할머니, 자식도 없는지 그

리고 저 표정, 가슴이 답답해 온다.

종일 흙을 손으로 뒤져 손톱에 피가 맺혔다. 아리고 쓰리다. 해가 져서 돌아 오다. 반창고로 손을 싸맨다. 그저 황량하기만한 이 물려받은 산하 인기척도 없는 시골길을 터덜터덜 걷는다. 냇물이 흐른다. 내가 가 본 어느 곳보다도 이곳은 황폐하다. 오직 우리의 얼굴빛 같은 황토에 매달려 살아 온 우리들의 조상들, 애틋한 비감이 가슴에 넘실댄다.

돌아와서 밥먹고 바보같은 병사가 똥을 못 누어 손으로 항문을 뚫어주다. 이곳으로 노야의 편지가 와 있다. 중대로 보낸 것을 이리로 온 모양이다. 여전히 사랑스럽고 정결한 체취를 맡을 수 있다. 오늘 밤엔 너의 꿈을 꾸리라. 모든 게 잘 되어가길 하나님께 기도하자. 아버님 어머님 편안하세요.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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