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자 무’
‘일치→불일치→일치’의 도식은 ‘유이자 무’→‘유 또는 무’→‘유이자 무’로도 표현할 수 있다. 이때 인간의 경우 유는 삶을, 무는 죽음을 뜻한다. 전체 과정에서 볼 때, 무와 유 각각은 우리의 전 존재 자체의 일부다. 무는 유에 의해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유이자 무’인 회향에서만 극복될 수 있다. 유는 언제나 무를 배경으로만 성립한다. 유와 무의 일자적 통일을 향한 전진이 아닌 영원한 분리는 영원한 불일치일 뿐이다.
따라서 무를 ‘유이자 무’로 안내하는 전진적 유만이 무를 극복할 수 있다. 이러한 유는 본질적으로 투쟁적 유다. 따라서 존재의 최고형태는 투쟁적 존재다. 그것은 인간이다.
인간에게 최대의 공포는 절대 공허로서의 죽음이다. 자기로 하여금 자기가 되게 하는 일체의 존재가 그 속에서 자취를 감추고 마는 심연으로서의 절대 공허야말로, 투쟁적 존재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공포가 된다. 공허를 한정하고, 공허를 충실히 함으로써 공허의 부정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투쟁적 존재인 인간에게 절대 공허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인간의 본성에 뿌리박은 가장 근원적인 정념이다. 이때 본래적 ‘유이자 무’ 혹은 잃어버린 우리의 고향은 언제나 인간의 현존재와 무관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현실의 우리에게 동경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말세에 등장할 ‘유이자 무’는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으로도, 낙원으로도 될 수 있다.
그것은 말세가 현실과 연관을 지니기 때문이다. 즉 현실적 무에 대한 충실한 혹은 불충실한 투쟁의 결과로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충실한 현존재는 안분 속에서 말세를 보나, 나쁜 현존재는 더욱 강열한 공포 속에서 말세를 맞이한다. 그것은 타협 속에서 무마된 현실의 무가 소멸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죽음을 본질적으로 두려워한다는 것은 존재 자체가 결코 무의 해결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현존재에게 죽음은 언제나 외계에 있고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현존 재는 죽음을 알 수 없다. 이 점에서 인간에게 삶은 영원히 삶이다. 인간이 영원히 존재하더라도 아마 무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고향인 ‘유이자 무’에 대한 부정, 곧 일치에 대한 부정으로서 상정하는 불일치는 순수한 형태의 자연이다. 이 불일치에 대한 관계에서 유, 그 가운데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은 불일치에 대해 전적으로 상반된 두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하나는 자기 훼손을 통해 순수 불일치인 자연목적에 굴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창조로서의 승화에 의한 탈자연적 자기완성으로 가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목적이란 무에 직면해 유를 지속적으로 보존하는 것이다. 그것은 순환과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유의 평형적 유지이다. 인간 존재는 언제나 자연목적과 일치하는 시발점에서 각 방향으로 자기경신을 시작한다.
자기훼손에서는 자연목적을 기점으로 하향으로, 자기창조에서는 자연목적과의 일치점에서 나아간다. 이와 같이 인간은 언제나 자연목적과의 일치점에서 시작하는데, 그것이 그의 좌표다. 이런 사정은 다음 도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불일치 심화=자기훼손←자연목적=현 존재⟶불일치 해소=자기창조’.
여기서 인간의 도덕과 가치, 즉 자기존재 자체로 나아가야 하는 소명은 전자의 경우 금지로, 후자의 경우 고양으로 나타난다. 자연목적이라는 기점의 중심선에서 금지와 고양이 결정된다. 자기훼손으로서의 무화를 자연목적과 대비하여 우리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기본적인 도덕률을 정립할 수 있다. 이때의 도덕률은 무화에 대립하는 자기보존으로서의 유화다. 순수 자연목적이 순수 유화 내지 자기보존이라면, 이 자연목적에 대한 부정인 자기복귀는 유의 소멸인 무화가 아니라 ‘유이자 무’다. 인간이 실향으로 추락하느냐 회향으로 전진하느냐는 언제나 자연목적과 현존재의 일치 기점에서의 운동 방향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인간은 언제나 자연목적과의 관계에서가장 근원적으로 도덕률을 정립한다.
무와 ‘유이자 무’는 존재론적 고찰이 아니라 가치론에서 명확히 판명된다. 예컨대 육욕에 의한 자기파멸이나 정결과 금욕에 의한 자기완성은 존재적 측면에서는 비존재로서 동일 하지만 가치에서는 전혀 상반되는 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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