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53)
아, 고마우신 내 님의 친구 영보 씨, 영보 씨가 같이 가겠다 하셔서 우리는 김천
으로 해서 서울로 가며 오장육부를 다 헤집어 놓는 내 님의 편지를 읽다가 가
슴에 끌어 안았다가 하며 식구들이 다 모여있는 누나 집에 갔습니다
만기제대를 앞두고 원래 소속부대인 박격포 부대로 돌아가서 제대하는 거라
더니 폭염에 구보훈련은 하지 말라는 사단장의 명령도 어기고 중대장이 과잉충성으로 완전군장에 구보를 시켜 내 님은 마지막까지 뛰다 골인점에서 쓰러져서 그대로 비명도 없이 갔다 하는군요. 이럴 수가!
영보 씨는 아버님의 무릎에 엎드려 마음껏 통곡을 하는데 나는 혹 내 님이 애착
에 떠나지 못하고 객귀가 되어 불쌍하게 구천을 떠돌게 될까봐 죽을 힘을 다해 울음을 참았습니다.
당신, 내가 편하게 있으면 당신은 다 잊고 훨훨 날아갈 수있지, 그지?
아버님은 좀 전에 설핏 잠이 드셨는데 바로 저 창가에 목에는 신부님들이 하는 하얀 로만 칼라를 하고 커다란 새의 날개를 단 승효씨가 웃으며 앉아 있다 푸르르 날아 갔다 하시며 싱글벙글한 얼굴로 종이와 연필을 가져와 그 모습을 그려 보여 주십니다. 아, 아버님!
내 님이 끔찍이 사랑하던 조카들을 데리고 학교 운동장에 가서 그네도 태워주고 시이소도 태워주고 했습니다. 누구야? 어린 사내 조카는 자꾸 나에게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작은 형하고 두 매형과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데 가다가 어느 길 모퉁이에 시커먼 군앰불런스가 한 대 서 있습디다.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 듯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습니다. 뒷문을 열어주어 들어가니 대패질도 하지 않은 거칠고 허름한 관 하나가 복판에 덜렁 있는데, 내 님이 내 님이 저 안에 있다니, 갑자기 숨이 막혀 헉헉 거렸습니다.
보름 전에 딴딴한 내 남자의 허벅지가 신기하여 눌러보고 만져보고 콕콕 쑤셔보며 둘이 깔깔 웃고 재미있어 했는데 이럴 수가!
아무렇게나 쾅쾅 못이 쳐진 허름한 관에 넣어져 내 님은 화장터로 가고 있었습니다
벽제에서 화장하는 동안 거기 있던 스님의 목탁을 뺏어들고 염불을 하염없이 하였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봐요, 다 내려놓고 편안히 가요, 응?
사악한 독재자가 없는 곳
불의한 국가권력이 당신을 쫒지 않는 곳으로
정의로운 항거를 한다고 불안 초조 공포에 피말릴 일이 없는 곳으로
마침내 조그만 상자에 담긴 그를 내 품에 안겨주는데 참 따뜻하더군요.
날 안으면 품안에 쏙 들어와 좋다 하더니 이제는 자기가 내 품안에 쏙 들어 오는군요.
원 없이 사랑했고 원 없이 사랑받으며 함께 한 세월, 평화로울 때는 너무 좋아하다가 안 좋은 일이 있을까봐, 불안한 상황이 덮칠 때는 무슨 일이
있을까봐 이래 저래 참 불안 초조한 날들이었지만 제대를 코 앞에 두고
마지막 휴가를 와서는 온갖 시련을 다 이겨 냈다는 뿌듯함으로 그지없이 편안하고 행복했는데 죽었다 하네요.
군 앰불란스에 앉아 조그만 상자에 든 그를 가슴에 꼭 안고 병참부로 가는데
그 복잡한 러쉬아워 큰길에서 용케 휴가 나왔는지 군복을 정성드려 다려
입은 어려 보이는 병사 하나가 어지럽게 출렁거리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정지하여 우리가 탄 앰블란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경례를 하고 서있더군요.
죽은 동료 군인에게 최대의 예를 다하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한 번은 군인은 죽어서도 6종이라 하며 국가의 것이라 일단 병참부 창고에 보관한다 하며 웃더니 이제 자신이 6종으로 보관되어 집니다. 그가 말한 대로 병참부 창고는 산마루에 있었습니다.
아, 보름 전 내 앞에서 생명력이 펄펄하던 장부가 한 웅큼의 재가 되어!
음산한 창고 속, 선반에 잿봉다리를 얹어두고 나와서 얼마 전 자기 손으로
정성을 다하여 닦아서 저 세상으로 보낸 죽은 병사의 명복을 빌며 앉아 있었
을 언덕에 앉아 있는데
모교 선배인 같은 사단 군의관은 주선생님이 자기를 찾아가라며 그에게 편지를
써주셨는데도 찾아온 적 없었다며 원망하는 말을 하며 안타까와 하고 있고.....
그를 창고 속에 두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터져 나오는 오열을 더 이상 막을
수 없어 몸부림을 쳤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신 자리라 마음놓고 무너졌습니다.
그날 밤, 어머님이 그의 유품이라고 받아 오신 것을 주시는데 그 중에 기적같
이 제 손 반만한 <작은 수첩>이 있었습니다. 수첩 속에는 정말 깨알같은 글자, 한 자 한 자를 혼신을 다해 저를 위해 1977.6.20일부터 27일까지 피를 토하
듯 노야를 부르는 연가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천희,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nbnh&wr_id=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