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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한반도문제 해결못해’

러 통신 한국전쟁 70주년 특집
글쓴이 : 보스톡메디아통… 날짜 : 2020-07-27 (월) 11:54:21

'중국-소련이 북을 지원한 이유'

 

올해는 한국전 발발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한국전은 남북한 간의 내전(內戰)으로 19506월에 시작되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곧 북한 측에서는 소련과 중국이 참전하고 한국 편에서는 미국을 선두로 16개국이 유엔 연합군이라는 명칭으로 참전하여 국제전으로 변모되었다.

 

첫눈에 보아도 아무도 승자가 없는 이 전쟁의 결과로 한반도와 한민족은 여전히 분단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전쟁에는 상기해야 할 중요한 다른 결과가 있다. 한국전은 2차 세계대전 종료 이후 세계 구조에 결정적인 의미를 지녔으며 아시아에서 사회주의 국가동맹이 출현하는 근거를 조성했으며, 중국과 소련이 동맹을 맺으면 새로운 세계적인 전쟁에서 양국이 불패의 존재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한국전쟁은 그 당시 막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이 국제적인 정치적, 군사적 무대에서 현저한 입지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한국전은 한반도에서 3년간의 전쟁에서 양측 중 누구도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대전으로 확대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미국과 연합군 측에 힘의 균형이 실렸는데 이는 특히 새로운 무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로 유엔군 사령관이 된 미국의 마크 클라크 장군은 19527월 휴전 협정에 조인(調印)했는데, 이후 자신의 회고록에서 나는 역사상 최초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휴전협정에 조인한 미군 사령관이라는 달갑지 않은 명칭을 받게 되었다. 나는 실망으로 인한 고통을 느낀다. 나의 전임자들이었던 맥아더와 리지웨이 장군들도 내 처지였다면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쓰디쓰게 회고했다.

 

이 전쟁은 미국에서는 거의 잊혀졌고, 베트남전과 현재의 내정 권력다툼에 묻혀버렸다. 소련도 한국전쟁에 대해 거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현재의 러시아에서도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그런데 중국에서만 오늘날까지 한국전쟁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심지어 해외 참전 인민해방군 70주년기념 메달을 만들기로 결정하기까지 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일원으로 당시 전투에 직접 참가했던 사람들이 메달 수상을 요청할 수 있다. 그들뿐 아니라 당시 후방에서 싸웠던 의료진, 철도기사, 통역, 언론인들과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북한으로 파견되었던 사람들도 이 메달을 받게 될 것이다. 전투가 끝난 후 북한에 남아서 북한의 산업과 경제 재건을 도왔던 사람들에게도 상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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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소련이 북한을 지원한 이유?

 

 

소련에게도 중국에게도 북한을 지원하려고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중국은 얼마 전에 막 일제의 점령에서 해방된 지 5년째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101일 수립되어 당시 중국내 내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지도부는 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첫 번째 시급한 과제는 전쟁으로 파괴된 일상생활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소련도 이제 막 자국 경제를 복구하고 있었고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들이 탄생했던 유럽 쪽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

 

수십 년간 실제적으로 일본 식민지였던 조선이 자유로운 독립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미국, 영국, 소련 정상들이 만난 얄타 정상회담에서 결정되었다. 그리고 19458월 북한은 김일성과 소련군이 진주하여 일본군에서 해방시켰다. 그리고 남한에는 미군이 진주하여 일제에서 해방시켰다. 1948년 소련군은 철수했고, 다음해 미군도 철수했다.

 

남북한의 지도자이던 김일성과 이승만은 통일을 원했지만, 각기 다른 생각과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다. 38선 근처에서는 여러 번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다. 그리고 1950625일 전쟁이 발발했다. 북한군은 신속하게 되어 남한군을 격퇴시키고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10월경에는 한반도 가장 남쪽의 부산 근처까지 진격했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내전이 국제전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해안에서 전투를 벌인 미국 해군과 공군을 계산하지 않더라도 26만 명 이상의 미국군이 남한 편에서 전투를 벌였다. 미국 외에도 다국적 연합군에 15개국 군사들이 참가했다.

 

북한 인민군은 이런 타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 전력의 열세가 확연했다. 북한군의 탱크는 40대뿐이었는데 적군은 500대와 각종 최신식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는 것만 이야기해도 충분할 것이다. 전선은 급격히 뒤로 물러났고 38선을 건너 이미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따라 흐르고 있는 압록강까지 물러났다.

 

전세가 이렇게 악화되었을 때에야 중국 인민해방군이 북한 편에서 참전했고 소련 조종사들은 공중전을 통해 중국 민병대를 지원했다.

 

현재에 와서야 북한을 지원하기로 한 모택동의 결정이 장기적인 안목(眼目)을 지닌 것이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당시 1950년에는 이 결정은 매우 위험하고 부담이 많은 것이었다.

 

현재 중국 언론의 보도자로를 보면 한반도에 인민해방군을 파견할 가치가 있었는지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고 어렵다는 것이 보인다. 새로 탄생한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이는 자국민을 해외 전투에 파견한 첫 번째 전쟁이었다.

 

 

무엇을 위한 희생이었나?

 

 

이 전쟁에서 남한과 북한은 민간인을 포함하여 각각 백만 명씩의 사상자를 냈다. 미군의 사상자는 14만 명으로 이중 54천명이 전사자이다. 연합군 측 사상자는 15천명이다. 중국의 공식적 통계에 의하면 한국전쟁에서 사망한 인민해방군은 197653명이다. 소련 측 전사자는 315명이었다.

 

공군 전체 손실은 유엔군 비행기 3천대 이상, 북한, 중국, 소련의 비행기 약 900대였다. 일부 미국 전문가들은 총 격추된 미국군과 유엔군 전투기는 2834대로 이중 1309대가 소련 조종사와 포병대에 격추되었다고 보고 있다. 1525대의 전투기는 중국 및 북한군 조종사들과 포병대가 비행장에서 계류 중, 또는 착륙 시에 격추시켰다.

 

 

한반도에서 새로운 전쟁을 피할 방법

 

 

한국전쟁은 오래 전에 끝났지만 한반도는 현대 인류 역사에서 여전히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남아있다. 남북한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서로 적대적이며 예전과 똑같이 남한 내에는 외국군 기지가 있다. 현재까지도 휴전협정이 정전협정으로 전환되지 못했고 같은 동족이 서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만이 한국전쟁에서 올바른 교훈을 얻은 것 같다. 러시아와 중국은 계속해서 평화와 사태 악화를 피하기 위해 자제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입장은 남한이 복수(復讐)를 하도록 적극적으로 적대 기조를 지지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과 상반된다. 미국의 장기적인 관심사는 한반도 전체를 자국의 영향력 아래 두려는 것이다. 올해 봄 트럼프 미 정부는 남한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87천만 달러에서 거의 50억달러로 인상하도록 요구했다.

 

한반도 정세는 악화되었다가 개선되었다가 하기를 반복한다. 충돌의 주요 원인들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예전처럼 복잡하고 민감하다. 분명히 말해야 할 것은 전쟁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대화와 협상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글 보스톡메디아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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