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평화집회..일부 상점 약탈
“쏘지 마라.” “경찰은 악당이다.”
지난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관의 강압적 체포 과정에서 숨진 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여러 대도시에서 계속되고 있다. 서부의 로스앤젤레스에서는 29일부터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었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막고 밤늦게까지 시위는 계속되었고, 경찰은 500명이 넘는 시위 참여자를 체포했다.
주말인 30일의 시위에는 더 많은 참석자들이 모였다. 낮 12시경 LA의 랜드마크인 그로브 쇼핑몰 근처의 공원에서 집회가 시작되었다. 만 여명의 시위대는 집회를 가진 뒤 경찰이 차량 통제를 해주는 3가 길을 따라 베버리힐스 쇼핑센터까지 도보로 행진을 했다. 시위 참석자는 10대에서 30대까지의 젊은 유색인종이 많았지만, LA의 진보단체들이 대거 참여한 연대시위 형태였다.
집회와 행진은 평화롭게 진행되었고, 길가의 시민들은 구호를 같이 외치며 동조하였다. LA지역에서 부의 상징으로 꼽히는 그로브 쇼핑몰과 베버리힐스 쇼핑센터 두 곳을 집회의 시작과 마무리 장소로 정한 것은 의미심장한 바가 있었다.
시위가 격화(激化)되기 시작한 것은 오후 3시경, 'Black Lives Matter, Los Angeles' 등이 주도한 공식집회가 마무리된 후였다. 경찰은 여전히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하는 시위대를 분산시키기 위해 패어팩스 길을 중심으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해산을 종용했고, 이에 시위대는 경찰차를 부수고 방화하는 등 폭력으로 대응했다. 경찰은 폭력을 쓰는 일부 시위대에 고무탄과 최루탄을 쏘며 대응했지만, 대치가 이루어진 여러 곳에서 대부분의 시위는 폭력을 자제(自制)하는 평화시위였다.
시위대는 경찰과 대치하며 '쏘지마라 (Don't shoot)' '모든 경찰은 악당이다 (ACAB/All cops are Bastard)'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 (No Justice, No Peace)'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경찰 저지선을 뚫자고 시위대를 선동하는 사람에게 평화시위를 해야한다고 설득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고, 간혹 상점의 유리창이 깨진 곳에서는 시위대가 경비를 서는 모습도 보였다.
시위 양상이 다시 급변한 것은 오후 6시경. 이 때부터 그로브몰과 베버리힐스의 로데오 거리의 명품상점들이 약탈을 당하기 시작했다. 그로브몰 내 노스트롬 백화점과 애플 스토어, 래이밴 가게 등에 약탈자들이 난입하여 물건을 무단으로 가지고 나갔고, 그로브몰에는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기도 했다. 패어팩스 근처의 상점 여러 곳이 약탈을 당했지만, 경찰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베버리힐스 로데오 거리의 명품 상점들은 대부분 미리 상점 유리창을 커다란 나무판자로 막는 공사를 해둔 상태여서 약탈의 피해를 크게 입지는 않았다.
약탈자는 시위대와는 다른 그룹이었다. 약탈을 목적으로 한 사람들은 자동차로 이동하며 적당한 상점을 물색하다가 가져온 야구방망이나 골프채로 상점의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물건을 실어날랐다. 일단 약탈이 시작되면 시위에 참가했던 일부도 약탈에 동참하는 양상을 보이긴 했지만, 주류 언론이 보도하는 것처럼 시위대가 약탈자로 돌변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한편, 에릭 가세티 LA시장이 오후 4시경, 밤 8시부터 일요일 새벽 5시까지 통행금지를 명령한 것을 시작으로 베러리힐스, 산타모니카, 컬버시티 등 LA인근의 여러 도시들도 통행금지를 명령했다. 특히 LA시장은 저녁부터 상황이 격화되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게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게 700명의 주 방위군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1992년 4.29 흑인 '폭동' 당시 많은 재산피해를 입었던 한인들은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많다. 또한 흑인 인권이 무시된 상황을 항의하는 시위가 차량을 불태우고 상점 약탈로 이어진 것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많았다.
한 흑인 시위 참석자가 시위현장에서 ABC뉴스와 인터뷰하면서 던진 말이 여전히 귓전을 맴돈다.
"오늘의 피해는 불가피한 것이다. 왜인 줄 아는가? 지금 당신이 겪는 당혹감과 공포는, 우리가 매일 길을 걸으며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아름다운 빌딩들은 볼 여유가 없다."
글 사진 LA 이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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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