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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북한에 보내주오” NYT

북송요구하는 탈북자 권철남씨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7-08-06 (일) 03:05:01


Newsroh=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권철남.jpg

 

뉴욕타임스가 한 탈북 남성이 북한에 보내줄 것을 공개 요구하는 사연을 보도해 관심을 끈다.

 

뉴욕타임스는 6일 인터넷판에 탈북한 권철남씨가 청와대 앞에서 북환 송환(送還)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는 등 북한에 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북한에서 이혼후 돈도 없었던 권철남씨는 2014년 국경의 강을 가로질러 중국에 건너가 라오스의 정글과 태국을 거쳐 남한에 정착(定着)했다.

 

그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적응하려고 노력했지만 남한은 내게 맞지 않았다. 다시 북에가서 아내와 16살 아들과 합치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은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억압(抑壓)하는 나라중 하나이지만 자본주의 남한에 대한 환상이 깨진 권씨는 개의치 않는다. 그는 남한에서는 자신을 이등시민으로 취급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내 이름을 마구 부르고 바보 취급을 한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일을 해도 탈북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임금을 주지 않았다.”

 

그는 북한에 돌아가기 위해 언론의 힘도 빌리고 유엔 사무소에 청원도 냈으며 한국 정부 건물 앞에서 1인시위도 했다.

 

현재 한국엔 1990년대 이후 기근(飢饉)을 피해 국경을 넘은 3만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살고 있다. 기이하게도 지난 5년간 25명의 탈북자들이 북한에 돌아가려고 시도했다.

 

한국 정부는 탈북자들을 중국에 오도록 유도한후 북한으로 납치해 남한을 생지옥으로 묘사하는 선전도구(propaganda boon)로 쓰여진다고 생각한다. 지난 6월 북한의 방송은 남조선이라는 지옥에서 더 이상 살수 없는 우리 공민 권철남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제로 남조선에 잡혀있는 수많은 우리 공민들이 고향에 돌아오기를 열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권씨는 북한에 돌아가려고 애쓰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몇 달간 감옥 신세까지 졌다. 탈북자들이 남한에 정착하면 한국 국민이 되기 때문에 정부 허가 없이 북한을 방문할 수 없다. 이제 그가 택한 방법은 공개적으로 북한으로 송환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권씨외에도 탈북여성 김련희씨도 지난 2015년이후 북한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1953년이후 휴전상태인 남북한은 국경을 넘는 것은 물론, 서신교환조차 불가능하다. 권씨처럼 남한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탈북자들은 북한에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법적으로 가능한 방법이 없다.

 

유엔의 북한인권담당 특별보고관 토마스 퀸타나는 권씨의 케이스는 70년간 계속된 남북이산가족의 문제들을 더욱 복잡하고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권철남 인터뷰.jpg

이상 주권방송 캡처


올해 44세인 권철남씨는 2014년 중국 국경과 가까운 지역의 약초상점에서 일하다 알게 된 한 여성으로부터 중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국경을 넘었다. 그러나 중국의 사정은 달랐다. 그 여성이 사라진 후 그는 2500달러만 주면 남한에 가게 해주겠다는 인신매매단을 통해 한달간의 힘겨운 과정을 거쳐 그해 11월 한국에 왔고 울산에 정착했다.

 

하지만 여느 탈북자들처럼 그는 고도의 통제된 전체주의 사회 북한에서 빠르고 초경쟁적인 자본주의 사회 남한에서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통일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탈북자의 63%가 남한에서 차별을 겪었다고 답했다.)

 

권씨는 농장과 건설공사장을 떠돌며 남한에서 일상적으로 통하는 영어단어들을 이해하지 못해 웃음거리가 되었다. 키가 150cm를 겨우 넘는 작은 체구로는 노동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었다.

 

더욱 힘든 것은 두고 온 아들 등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는 4500달러를 모아 중개인을 통해 전 부인에게 보냈고 다시 합치고 싶다는 아내의 소망을 전해 들었다. 탈북후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양심의 가책도 느꼈다. 그와중에 자신을 한국에 보낸 브로커가 경비를 받지 못했다고 울산지법에 고소하는 시련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5월 권씨는 건설공사장에서 임금을 받지 못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사장 편을 드는 것을 보고 북한에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는 남한에서 여권을 신청해 중국에 건너가 북한으로 돌아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중국에 떠나기에 앞서 친한 경찰관에게 여기서 살기가 너무나 힘들어 외국에 간다고 작별 문자메시지를 남긴게 화근(禍根)이었다. 지난해 622일 경찰의 급습으로 북한에 탈출모의를 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재판에서 7년형을 받은 그는 1년의 집행유예를 받고 지난해 9월 풀려났다.

 

그뒤로 일을 쉬게 됐고 동료 탈북자들도 그를 피했다. 지난 3월 서울에 올라온 그는 홈리스 쉼터에서 지내다 처지를 딱하게 여긴 기독교 목사들의 도움으로 한달 30만원짜리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를 돕는 문대골 목사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가장 큰 본능이다. 고향에 돌려보내지 않는 나라는 짐승만도 못한 국가다고 비판했다.

 

권씨는 최근 청와대 앞에서 나는 조선민주주의공화국 공민이다. 고향가고 싶다는 배너를 들고 1인시위를 벌였다. 일부에선 그의 행위가 무모하다고 하지만 그는 북한에서 처벌받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북핵에 대해 긍지를 느끼며 북한의 인권유린(人權蹂躪) 등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았다, 끝까지 충성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마음이 진심인지, 북한에 잘 보이기 위한 노력인지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가 경제적으로 잘사는 남한보다 자신이 태어난 북한의 단순한 생활을 더 원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권씨는 북에선 난 부자가 아니었지만 주변 사람들과 잘 지냈다. 하지만 남에서는 나를 먼지만도 못한 존재로 대한다고 말했다.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

 

<꼬리뉴스>

 

North Korean Defector, ‘Treated Like Dirt’ in South, Fights to Return (NY Times)

 

https://www.nytimes.com/2017/08/05/world/asia/north-korea-defector-south-korea.html?hpw&rref=world&action=click&pgtype=Homepage&clickSource=story-heading&module=region&region=region&WT.nav=region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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