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는 아직도 발전하는 선수다. 난 그게 무섭다.”
‘침묵의 암살자’는 ‘살아있는 전설’도 두렵게 만들었다. 세계여자골프의 레전드 아니카 소렌스탐이 박인비를 극찬했다.
지난 30일 US오픈 우승으로 63년만에 시즌 개막후 3개메이저 대회 석권의 금자탑을 세운 박인비는 라운드 내내 특별한 인물의 주시(注視)를 받고 있었다. ‘골프여제’ 아니카 소렌스탐(43)이었다.
1993년 데뷔해 2008년 은퇴할때까지 통산 75승을 올리며 무려 5번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고 LPGA사상 세 번째 연속 4대회 우승, 커리어그랜드슬램, 여자최초로 60타벽을 깬 주인공이 소렌스탐이다. 천하의 박세리가 전성기에도 2인자에 만족했던 것은 바로 그녀때문이었다.
소렌스탐은 뉴욕주 사우샘프턴 세보낵GC에서 US오픈이 벌어지는 나흘 내내 골프채널의 해설자를 맡았다.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그녀는 박인비를 위한 찬사를 거두지 않았다. 박인비가 우승 트로피를 번쩍 든 후에 남긴 사실상의 마지막 멘트는 “박인비는 여러 면에서 여전히 발전하고 있다”며 “그것이 정말 겁난다(that’s a scary thought)”는 탄식이었다.
박인비의 아버지가 지난달 29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는 딸에게 “지금 전성기냐?”고 물었다가 “전성기라니요. 이제 시작인데”라고 말했다는 일화(逸話)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대목이다.
박인비는 베테랑들조차 질리게 할만큼 엄청난 굴곡으로 ‘마법의 그린’이라는 평가를 받은 서보낵GC의 그린을 지배한 유일한 선수였다. 내로라하는 골퍼들이 이곳에서 박인비를 포함. 단 세명만이 언더파를 기록했다. 박인비는 1~3라운드에서 연속 언더파를 기록한 유일한 선수였다. 특히 3라운드 14번홀에서 극심한 경사도의 34피트짜리 버디퍼팅은 마술과도 같은 곡선을 그리며 홀컵에 떨어져 경탄(驚歎)을 자아냈다.
2007년 개장한 서보낵GC는 잭 니클라우스와 톰 도우크가 공동으로 설계한 곳이다. 니클라우스는 벙커를, 도우크는 페어웨이와 그린을 맡았다. 코스만 난이도가 높았던게 아니다. 그레이트 패코닉베이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닷바람과 폭염과 소나기, 급작스러운 안개 등으로 선수들은 컨디션을 유지하기가 힘이 들었다.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이틀째 17번홀에서 경기를 포기한 미셸 위와 캐디와의 의견충돌로 경기중 해고한 제시카 코르다의 해프닝도 세보낵GC의 까다로운 코스와 변덕스런 날씨가 사실상 원인이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박인비 진정한 메이저챔피언” 뉴욕타임스
뉴욕타임스는 1일 “박인비는 열아홉살의 나이에 US오픈에서 데뷔 첫승을 거둔후 쏟아지는 매스컴과 주위의 관심에 따른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졌지만 일본투어를 통해 재기에 성공한 후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소개했다.
2012년 여름 에비앙 마스터스 우승으로 3년여 공백을 깬 그녀는 지난 24개 대회중 8번을 우승했고 5번을 준우승했다. 이제 박인비는 소렌스탐과 로레나 오초아, 쳉야니와 나란히 하는 진정한 챔피언으로 인정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