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파리 : 서울 :   시작페이지로 설정 즐겨찾기 추가하기
 
 
 
꼬리뉴스 l 뉴욕필진 l 미국필진 l 한국필진 l 세계필진 l 사진필진 l Kor-Eng    
 
꼬리뉴스
·꼬리뉴스 (11427)
·뉴스로 창(窓) (273)
·뉴스로TV (127)
꼬리뉴스
육하원칙(六何原則)?역(逆)피라미드 형식의 스트레이트 뉴스? 정형화, 제도화된 뉴스만 뉴스가 아니다. 뉴스뒤의 뉴스, 뉴스속의 뉴스를 읽자. 뉴스로에선 "꼬리뉴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일선에서 취재한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뒷 이야기, 기감 없는 에피소드, 촌철살인의 한마디까지, 뉴스로 독자들은 정규뉴스 바로 뒤에 물리는 꼬리뉴스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틀에 박힌 뉴스는 거부합니다. 오직 뉴스로만이 가능한 꼬리뉴스에서 뉴스의 새로운 멋과 맛을 느끼십시오.

총 게시물 11,427건, 최근 3 건 안내 글쓰기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사신(死神)의 저주 받은 한강 철교’

백년전(百年前) 오늘 신문<43>
글쓴이 : 륜광 날짜 : 2024-05-25 (토) 15:22:44

백년전(百年前) 오늘 신문<43>

 

한강에 처음 교량이 세워진 것은 19007월이었다.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경인선 부설 이권을 얻어낸 미국인 모스(J. Morse)에 의해 18973월에 공사가 착공되었으나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경인선 부설이권은 일본으로 넘어갔다. 당초 대한제국 정부는 보행자를 위해 길 한쪽 또는 양쪽에 보도 시설을 조건으로 허가했으나 일본은 공사비를 절감한다는 이유로 철교로 완공했다. 한강에 인도교가 준공된 것은 1917년 지금은 한강대교 자리다. 차도는 4.5m, 좌우 보도는 각각 1.6m였다. 사람들이 걸어서 다리를 건너게 되면서 한강 인도교는 서울의 새로운 명물이 되었다. 그런 한편으로 뜻하지 않은 역기능이 생겼다. 비관자살하는 사람들의 투신때문이었다.

 

백년전 오늘 신문’ 31(봄은 왔건만 봄이 아니로구나)에서 한강 철교에서 투신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보도를 인용한 바 있다. 1924421일 동아일보는 세상의 무정(無情)을 원망하는 사람, 먹고 살 길이 없는 사람, 사랑의 파멸을 당한 사람, 이러한 여러 가지의 사람들은 모두 한강 철교로 모여 들어 그들의 끝없는 원한을 시퍼런 그 물결에 풀어버리고 영원한 죽음에 잠기고자 하니, 한강 인도교는 철교가 아니라 원한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는 자살장(自殺場)이 되고 알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로부터 두달후 매일신보(517)사신(死神)의 저주를 받은 한강 철교’(큰 제목) ‘여자의 자살하는 수가 해마다 점점 늘어간다’(작은 제목) 기사를 통해 자살자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한강 철교는 조선 안에서 자살하는 곳으로 결정이 된 모양이다. 넓고 긴 다리 아래로 양양히 흘러가는 물결은 무심히 보면 역시 보통의 강물이나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물결이 둔하게 흐르는 것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그 속에는 반드시 사람의 영혼을 이끄는 악마의 유혹이 있는 듯하다. 이것이 아마 생사의 기로에 선 생존경쟁의 패잔자(敗殘者)가 최후의 결심을 정하는 장소로 선택이 되는 한 조건인 듯하다.”

 

자살자는 조선인만 있는게 아니었다. 당시 조선엔 일본인들도 20만명 이상 거주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숫자도 등장한다.

 

최근 수삼 년 사이의 자살한 자의 상태를 보면 1922년도에 남자가 15명 여자가 1명이며, 1923년도에는 조선 남자가 18명 여자가 2명이요 일본인 남자가 1명 여자가 2명이며, 금년에 들어와서 조선인 남자가 7명이요 자살미수자는 1922년도에 남자가 9명 여자가 18명이요, 1923년도에는 남자가 9명 여자가 28명이요 금년에 들어가서는 조선인 남자가 15명 여자가 6명이요 일본인 남자가 1명인데, 이 숫자로 보아도 최근에 이르러 여자의 자살자가 점차로 증가되어 가는 것을 알 것이다.”

 

이 때문에 다리 주변에 철망을 쳐서 자살을 막는 방법도 고려되었지만 이미 죽고자 결심한 자면 장소가 없어서 죽지 못할 것은 아니라 하여 차라리 자살하고자 하는 자를 이곳으로 인도하여 간곡히 권유하여 돌려보내는 것만 같지 못하므로, 철교에 망을 칠 계획은 중지하였다고 전했다.

 

용산경찰서 모 형사에 따르면 어떠한 시골 여자는 무슨 이유로 한강 철교를 택하였느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 ‘산골에서 소문을 들었다고 대답했다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한강 철교는 조선 내의 대표적 자살 장소로 사람 사람의 뇌수에 인상이 박힌 모양이다. 한양의 명소인 한강 철교가 조선 대표적 자살 장소가 될 줄이야 누가 뜻하였으랴. 검푸른 처창(悽愴)한 빛을 띈 물결은 모든 비밀을 감추어 가지고 고금(古今)을 일관(一貫)하여 무심히 흘러갈 따름이다.”

 

한편으로 한강은 월색(月色)이 명랑한 밤에 음악과 뱃놀이를 즐기는 낭만어린 곳’(517일 조선일보)이기도 했다. “도회지를 등진 아래에 봉산유원을 곁하고 한강을 안고 있는 시외 노량진에는 밤낮을 불구하고 내인거객(來人去客)의 자취가 빈번하게 되었는데, 과연 산 있고 물 흐르고 달 밝은 노량진에서 이때에 음악회가 열린다 하면 그 취미가 얼마나 아름답겠으며 흥미가 얼마나 진진할까. 이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것임에, 이 음악회를 구경하는 사람은 가히 춤이라도 출 것이며 구경치 못하는 사람은 오금이 쑤실 것이 아니랴!”


조선일보는 같은날 유두분면(油頭粉面)의 참담한 인육(人肉)의 시()’ 보도에서 경성시내에 화류계 여성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며 사회에 해독을 많이 미친다는 사창(私娼)의 수효만 일본인과 조선인 합하여 600명의 다수가 된다는데, 그들을 요리집 기타 음식점에 고용 노릇을 하며 소위 몸값과 주인에게 진 빚 즉 전차금(前借金)이라는 것은 일생을 고용하더라도 한 푼도 갚지 못하고 고통의 구렁이요 인생의 지옥에서 몸을 빼지 못하고 영구한 번민으로 마치고 마는 신세라고 심각성을 알렸다.

 

518일 조선일보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헌칠한 외모의 청년 독립운동가 최윤동(崔胤東) 의사(28)를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최윤동 의사는 대구를 중심으로 하여 삼남 지방에 비밀결사를 조직한 경북 중대 사건의 9명 중 수령으로 큰 뜻을 품고 1916년 중국 북경에 들어가서 육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의 군직(軍職)을 버리고 상해 임시정부에 참가하고 다시 간도로 가서 길림군정서에 가입하는 등 독립운동가로 적극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카이빙 전문매체 근대뉴스(http://www.19c.co.kr/) 제공으로 백년전 해당 기사를 소개한다. 


사신(死神)의 저주를 받은 한강 철교 (1924.05.17.) 매일신보

여자의 자살하는 수가

해마다 점점 늘어간다

 


한강 철교는 조선 안에서 자살하는 곳으로 결정이 된 모양이다. 넓고 긴 다리 아래로 양양히 흘러가는 물결은 무심히 보면 역시 보통의 강물이나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물결이 둔하게 흐르는 것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그 속에는 반드시 사람의 영혼을 이끄는 악마의 유혹이 있는 듯하다. 이것이 아마 생사의 기로에 선 생존경쟁의 패잔자(敗殘者)가 최후의 결심을 정하는 장소로 선택이 되는 한 조건인 듯하다. 최근 수삼 년 사이의 자살한 자의 상태를 보면 뜻과 같이 목적을 달성하고 사체(死體)가 물 위로 떠 오른 것이 1922년도에 남자가 15명 여자가 1명이며, 1923년도에는 조선 남자가 18명 여자가 2명이요 일본인 남자가 1명 여자가 2명이며, 금년에 들어와서 조선인 남자가 7명이요 자살미수자는 1922년도에 남자가 9명 여자가 18명이요, 1923년도에는 남자가 9명 여자가 28명이요 금년에 들어가서는 조선인 남자가 15명 여자가 6명이요 일본인 남자가 1명인데, 이 숫자로 보아도 최근에 이르러 여자의 자살자가 점차로 증가되어 가는 것을 알 것이다. 그중에는 자살하는 것 같이 보여 일부러 경관의 눈에 띄려고 하여 일종의 희극을 연출하는 자도 있는데 자살을 하고도 시체가 발각되지 않은 것과 자살하려고 갔다가 중도에 돌아가는 자를 합하면 그 수효가 실로 많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한강 철교에서 자살하는 자가 가장 많으므로 이를 구제하고자 다리 위에 철망을 치고자 계획한 일도 있었으나, 이미 죽고자 결심한 자면 장소가 없어서 죽지 못할 것은 아니라 하여 차라리 자살하고자 하는 자를 이곳으로 인도하여 간곡히 권유하여 돌려보내는 것만 같지 못하므로, 철교에 망을 칠 계획은 중지하였다. 용산 경찰서 모() 형사의 말을 듣건대 자살하고자 하는 사람은 대개 밤 사이에는 오후 10시경이며 새벽에 이르러서는 대개 오전 3시경이요, 밤을 새면 하나도 없다는데 이 점으로 추축해 보더라도 자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개 심리가 통일되는 점이 있는 모양이며 또한 자살하고자 하는 사람은 대개 활발하게 뛰어 내리지 아니 하고 모두 난간에 허리를 걸치고 시름없이 슬그머니 미끄러져 떨어지는 모양이다. 지난번 용산 경찰서에서 붙잡은 어떠한 시골 여자는 무슨 이유로 한강 철교를 택하였느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 ”산골에서 소문을 들었다고 대답했다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한강 철교는 조선 내의 대표적 자살 장소로 사람 사람의 뇌수에 인상이 박힌 모양이다. 한양의 명소인 한강 철교가 조선 대표적 자살 장소가 될 줄이야 누가 뜻하였으랴. 검푸른 처창(悽愴)한 빛을 띈 물결은 모든 비밀을 감추어 가지고 고금(古今)을 일관(一貫)하여 무심히 흘러갈 따름이다.

 

☯ 유두분면(油頭粉面)의 참담한 인육(人肉)의 시()!! (1924.05.17.) 조선일보

경성부 내에 사창(私娼수가 600

이생의 지옥에서 고통과 번민

 



이 사회에서 행복이 무엇인지 안락이 무엇인지 모두 다 남에게 맡기고 이 세상을 원망과 저주로 지내는 가련한 동포가 그 종류가 얼마나 많으며 그 수효가 또한 얼마나 많으랴 마는남자 만능인 이 세상에 여자로 태어나서 그중에도 돈 없고 지혜 없고 권세 없는 여자들이 한번 발을 잘못 디뎌서 정조를 팔고 육신을 팔아서 마치 말하기를 안 되었지마는관에서 고기 달아 팔 듯이 몇십 원 몇백 원에 몸이 팔려 이러 저리로 끌려다니는 소위 화류계의 여자로 말하면 어떠한 문명국에라도 있는 세상이라듣는 사람이 별로 놀라지도 않을 만큼 되었지마는경성에도 인구가 늘어가는데 따라서 매음하는 여자의 수효도 연년히 늘어서 창기와 같은 공창(公娼)은 차치하고 그중에도 사회에 해독을 많이 미친다는 사창(私娼)의 수효만 일본인과 조선인 합하여 600명의 다수가 된다는데그들을 요리집 기타 음식점에 고용 노릇을 하며 소위 몸값과 주인에게 진 빚 즉 전차금(前借金)이라는 것은 일생을 고용하더라도 한 푼도 갚지 못하고 고통의 구렁이요 인생의 지옥에서 몸을 빼지 못하고 영구한 번민으로 마치고 마는 신세인데이에 대하여 시내 각 경찰서 관내에 있는 수효와 소위 고용계약이라는 것을 보면 대개 그들을 형상을 짐작하겠더라

 



오라! 한강변으로 (1924.05.17.) 조선일보

월색(月色)이 명랑한 밤에 음악을 들으려거든

재미있는 이어(鯉魚; 잉어) 추첨과 뱃놀이를 하려면

노량진 교외 음악회는 오늘 밤 8시부터

 



때는 정히 초여름을 당하여 원근 각지의 산은 모두 부드럽고 새로운 빛을 띈 나뭇잎으로 단장을 하고, 넓고 좁은 각지의 강은 맑은 바람에 잔잔한 물결이 움직임에 따뜻한 낮에 산을 찾는 시인(詩人)과 달 밝은 밤에 강을 찾는 가객(歌客)이 점차 늘어 감에 따라, 대 도회지를 등진 아래에 봉산유원을 곁하고 한강을 안고 있는 시외 노량진에는 밤낮을 불구하고 내인거객(來人去客)의 자취가 빈번하게 되었는데, 과연 산 있고 물 흐르고 달 밝은 노량진에서 이때에 음악회가 열린다 하면 그 취미가 얼마나 아름답겠으며 흥미가 얼마나 진진할까. 이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것임에, 이 음악회를 구경하는 사람은 가히 춤이라도 출 것이며 구경치 못하는 사람은 오금이 쑤실 것이 아니랴! 이에 은로(恩露)학교 주최와 연악회(硏樂會) 및 조선일보사의 후원으로 오늘 17일부터 18일까지 이틀 동안 매일 오후 8시부터 노량진 은로학교 전원(前園)에서 열리는 교외 음악회에는, 신사 숙녀, 남학생, 여학생 등 어는 사회를 물론하고 구름같이 모여들어 대 성황을 이룰 것은 보지 아니 하여도 가히 알 수 있으려니와 선경(仙境) 같은 회장(會場)에서 일류 남녀 악사의 청아한 곡조가 울려 나올 때에 취할 듯 미칠듯한 관중의 갈채하는 광경은 장차 어찌나 전개될는지, 조선일보사와 은로학교에 입장권을 사고자 혹은 전화 혹은 일부러 오는 사람이 자못 복잡한 중에 있다.

 

회장(會場)과 장식(裝飾)

오색 탑과 송문(松門)이 오는 손을 맞는 듯

대 성황을 예기(豫期)하는 교외 음악회장인 은로학교 정원에는 들어가는 어구에 기린 삐루(맥주)상점인 명치옥(明治屋)에서 세운 오색이 영롱한 탑이 그윽이 손님을 기다리는 듯하며, 조금 더 들어간 곳에 은로학교에서 세운 송문(松門)은 웃음소리가 높은 행락지 임을 은연히 자랑하고 있는데, 오늘 오후 8시가 되면 정각이 됨은 표시하기 위하여 봉산유원 위에서 한강 일대를 움직일 만한 폭죽을 터트리게 딘 것도 음악회로는 이채(異彩)라 하겠더라.

 

유선(遊船)5

입장권에 붙어 있는 할인권만 가져 오면

오늘 오후 8시에 약 한 시간쯤 전에 구경오는 사람의 편리를 돕고자 신용산 행 전차를 더 운전할 뿐만 아니라 신용산 전차 종점에 이르면 한영자동차부에서 오는 손님을 회장(會場)까지 무료로 운반할 터인데, 일반 손님을 다 태우자면 여간 복잡하지 아니 하겠으므로 12등 입장권을 가진 사람에 한하여 제공하되 미리 표를 사지 못한 사람은 전차 종점에 설비해 놓은 입장권 판매소에서도 살 수가 있다는 바 입장료는 2, 1, 50전 세 종류라 하며, 입장권을 산 사람들은 입장권에 붙어 있는 선유임(船遊賃) 5할 할인권을 가지고 창창한 한강에서 재미있는 뱃놀이도 할 수 있다더라.

 

재미있는 추첨

펄펄 뛰는 이어(鯉魚; 잉어)를 준다

이번 교외 음악회에서 관객의 편의를 돕기 위하여 여러 가지의 무료 수응(酬應)이 있는 것은 별항과 같거니와 그 중에 재미있는 추첨 한 가지가 또 있는데, 이어(鯉魚) 20마리를 사 들인 후 관객에게 추첨권 한 장씩을 주어서 개표한 결과 당선된 사람에게 한 마리씩을 줄 터이라 한 즉, 이날은 실로 구경 잘하고 고기잡는 놀음이라 하겠더라.

 

각종 음악

명악가(名樂家)는 다 나온다

경치 좋고 재미 있는 추첨도 있는 교외 음악회에서 또한 관중에게 만족한 음악을 들여 줄 악사와 순서는 어떠한가 기록하면 아래와 같더라.

1부 취주악(吹奏樂)

-. 취주악(吹奏樂) : 경성악대

-. 피아노 독탄(獨彈) : 김영환(金永煥)

-. 보음(保音) 독창 : 윤기성(尹基誠)

-. 빠이올린 독주 : 홍난파(洪蘭坡)

-. 양금(洋琴), 단소(短簫) 합주 : 정만기(鄭萬基), 홍재유(洪載裕)

2부 현악 합주

-. 연악회(硏樂會) 회원

-. 고음(高音) 독창 : 윤심덕(尹心悳)

-. 빠이올린 독주 : 홍난파(洪蘭坡)

-. 2인 합창 : 윤심덕(尹心悳), 윤기성(尹基誠)

-. 피아노 독탄(獨彈) : 김영환(金永煥)

-. 취주악(吹奏樂) : 경성악대

 

부산에서 호읍(號泣)하는 노동 동포의 참상 (1924.05.17.) 조선일보

일본 갈 여비를 부산에서 다 쓰고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울고 있다.

 



근일 부산 각 하숙에는 각처로부터 남부여대(男負女戴)로 일본으로 가고자 와서 일본에는 건너가지도 못하고 가지와 왔던 여비가 떨어져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비참한 경우에 빠진 사람이 여간 백천(百千)의 수에 그치지 아니하였는데, 이제 그 자세한 내용을 들어 말하려면 한이 없지마는 그 대개는 근일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 되어 있는 미국에서 일어난 일본인 배척과 일본 정부의 군비 축소와 작년 9월 일본 관동 지방의 큰 진재로 말미암아 일본에 실업자가 많아진 까닭에, 내무성에서는 조선인 노동자가 들어가는 것을 반갑게 여기지 않는 것은 천하 사람이 다 알고 있는 바인데, 만약 조선인 노동자로서 일본에 가려면 구주(九州) 탄광으로 보내 주는 부산노동공제회를 경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일본 내무성과 특약이 있고 또 조선 총독부 경무국에서 특별한 양해가 있다는 상애회(相愛會) 회원이 되어 가지고 들어가는 수가 있다는데, 그것도 무제한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경무국의 명령으로 하루에 노동공제회에서는 30명씩 또 상애회에서는 50명씩밖에 보내 주지를 않는데, 그것을 모르고 일본을 가기만 하면 무슨 큰 수나 생길 줄 알고 부산까지 와서 본 즉 일본을 건너가기는 여간 어렵지가 않은 고로 서로 들어가려고 애를 쓰는 판이라, 노동자 일본 도항에 대하여 전권을 쥐고 있는 공제회와 상애회에서는 자기네가 절대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기화(奇貨)로 하여 가끔 부당이익을 취한다는 말을 지금 부산뿐 아니라 조선 사회에 큰 여론이 되어 있다더라.

 

최윤동(崔胤東)은 중국 장교 (1924.05.18.) 조선일보

중국 군인으로 근무하다가

3.1운동 때부터 활동 개시

 




대구를 중심으로 하여 삼남 지방에 비밀결사를 조직한 경북 중대 사건의 9명 중 수령 최윤동(崔胤東)은 당연 28세의 청년으로 일찍이 큰 뜻을 품고 1916년 경에 중국 북경에 들어가서 독립단 배천택(裴天澤)과 그 외의 여러 동지와 서로 상종한 후에, 그 해 가을이 되어 운남성으로 내려가서 그곳 무관학교에 입학하여 두 해 동안 전문으로 군사 무술을 연습하고 그 다음에 운남성 대리(大理) 2사단 본부에서 육군 중위로 근무하던 중에,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의 군직(軍職)을 사면하고 곧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에 참가하고 다시 간도로 가서 길림군정서에 가입한 후에, 김응섭(金應燮)의 동지들과 여러 가지 획책을 해 가지고 그 해 10월에 가만이 경성에 들어와서 그때에 이수영(李遂榮), 이원식(李元植), 박중화(朴重華), 이경희(李慶熙), 이원혁(李源爀)의 여러 동지와 누차 회합하여, 조선 내지와 국외의 연락을 취하기로 약속하고 본 고향인 대구에 돌아와 있다가, 19216월경에 배천택으로부터 통지를 받고 군사통일회의에 출석하기 위하여 다시 북경으로 갔었다가 그 이듬해 9월경에 북경으로부터 돌아와, 표면으로 대구에서 곡물상을 경영하면서 경성으로 자주 왕래하여 시내 인사동 장안여관을 근거지로 하여 여러 동지와 독립 운동을 계속 하였다더라.


불평(不平) / 우물틀 고치오 (1924.05.18.) 동아일보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뉴스로를말한다 l 뉴스로 주인되기 l뉴스로회원약관  l광고문의 기사제보 : newsroh@gmail.com l제호 : 뉴스로 l발행인 : 延義順 l편집인 : 閔丙玉 l청소년보호책임자 : 閔丙玉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기아50133 l창간일 : 2010.06.05. l미국 : 6 Brookside Trail Monroe NY 11950  한국 :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10 / 전화 : 031)918-1942
뉴스로 세상의 창을 연다! 칼럼을 읽으면 뉴스가 보인다!
Copyright(c) 2010 www.newsroh.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