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百年前) 오늘 신문<22>
Newsroh=륜광輪光 newsroh@gmail.com
‘토착왜구(土着倭寇)’라는 표현은 언제부터 쓰인 것일까. 1908년 11월 26일 대한매일신보는 '순검총원(巡撿叢寃)’ 제하의 기사에서 “먹고 살아야 하여, 일본인 종놈이라 비난받고, 일인 경찰에게 차별당하고, 백성에게 무시당하고, 토왜라 불려도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순경 이야기를 실었다. 대한매일신보는 1910년에도 ‘토왜천지(土倭天地)’라는 글에서 토왜를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인종(人種)’으로 규정했다. 한마디로 토왜는 친일반민족행위자다.
1910년 일제의 강제합병으로 국권을 잃자 토착왜구들은 도처에서 공공연히 출몰했던 모양이다. 1924년 3월 2일 동아일보는 ‘그러지 말고 아주 일본에 건너가지’라는 기사에서 ”전라에서 출생해 일본 명치대학을 졸업한 서모씨가 간도에서 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일본말 강연을 하다 청중의 반발로 망신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4월 3일엔 서울시내 3곳에 공설 빨래터를 운영한다는 소식이 눈길을 끈다. 동아일보는 청계천 상류와 사복개천의 상류인 삼청동 등 3곳에 불원간 빨래터를 착수한다면서 “물이 흐르는 똘(구거溝渠; 개골창)은 『소라』 모양으로 하여 물도 천천히 흐르고 여럿이 앉아서 빨래하기에도 편리하도록 하였고 수용할 사람은 한 곳에 80명으로부터 100명쯤이나 된다”고 알렸다.
이밖에 40대 여인이 70대 남편을 상대로 한 기괴한 이혼 사건과 보험금을 탈 목적으로 멀쩡한 여자를 죽었다고 신고한 허위 사망 신고 등 저자거리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들이 보도되었다. 동아일보는 1923년 9월 발생한 관동대지진으로 억울하게 죽은 조선인 희생자들 가족에게 일본정부가 배상금을 자국인의 150분의 1에 지나지 않는 푼돈을 지급했다며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아카이빙 전문매체 근대뉴스(http://www.19c.co.kr/) 가 제공하는 해당 기사들과 번역문을 소개한다.
☯ 그러지 말고 아주 일본에 건너 가지 (1924.04.02.) 동아일보

전라 출생으로 명치(明治)대학까지 졸업하였다는 서모(徐某)라는 자는 무엇을 얻어 먹으려고 간도까지 가서 그곳 영사관 경찰서의 후원을 얻어 가지고, 일선융화(日鮮融和)에 대한 강연을 하다가 청중의 반대로 끝까지 하지 못하고 흐지부지하였다 한다. 일선융화를 하려고 뱃속에서부터 일본말만 배워 가지고 나왔든지 400여 명의 조선인 관객이 앉은 자리에서 일본말로 강연을 하였다고. 그러지 말고 아주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인에게 융화 연설을 하는 것이 철저하지 아니한가. 이로 인하여 북간도 용정촌에서 한 소문거리가 생겼다고.
☯ 세 곳의 공동 빨래터 (1924.04.03.) 동아일보
경성부의 새해 새 사업
누하동 근처와 삼청동은 확정
또 한 곳은 미정

경성부에서 새해의 새 사업으로 세 군데의 공설빨래터를 설비한다 함은 여러 번 보도한 바이어니와, 두 군데는 벌써 장소까지도 대략 작정되어
◊ 한 군데는 청계천의 상류인 누상동(樓上洞)이나 누하동(樓下洞) 부근이며
◊ 한 군데는 경복궁 동쪽으로 흐르는 사복개천의 상류인 삼청동이나 팔판동 부근이며
또 한 군데는 장충단 부근으로 할는지 공업전문학교 부근으로 할는지 아직 결정하지 못 하였다는데, 모두 불원간에 착수하여 한창 당철에 알맞게 할 터이라더라.
설비와 수용
세 가지의 설비로 80명 이상 수용
◊ 물 웅덩이는 물이 넉넉할 때는 별로 필요가 없으나 물이 부족할 때에는 흐르지 못하게 물을 저축하여 항상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 빨래터는 정말 빨래를 하는 곳을 물이 흐르는 똘(구거(溝渠; 개골창))은 『소라』 모양으로 하여 물도 천천히 흐르고 여럿이 앉아서 빨래하기에도 편리하도록 하였으며
◊ 침전지는 빨래터의 밑에다가 설비하여 위에서 흐르는 더러운 물은 전부 이곳을 거치게 하였으며, 이곳을 거치는 동안에 찌꺼기 등 더러운 물건은 이곳에 가라앉고 물만 흘르 가도록 하려는 것인데, 수용할 사람은 한 곳에 80명으로부터 100명쯤이나 되며 이에 대한 경비는 9,000원이라더라.
☯ 인천에서 생긴 기괴한 이혼 사건 (1924.04.03.) 동아일보
40대 부인이 70대 노부(老夫)를 유기(遺棄)한다고
남편이 설유원 제출

결혼 제도의 결함으로 이혼하는 풍조는 자꾸 밀려들어 청년으로부터 중년에, 중년으로부터 환갑 진갑 다 지난 노년에까지 밀려든다. 인천부 우각리 13번지 손인수(孫仁守·66)와 인천부 내 율목리 정화서(鄭和西)의 집에 있는 도씨(都氏·44)사이에 일어난 사실이라. 도씨는 작년 5월에 손인수와 짝을 지어 해를 바꾸어 지내왔나 아무 취미가 없을 뿐 아니라, 자기의 40여 세 나이가 죽음의 길이 멀지 않은 60여 세의 노인과 함께 세상을 보낸다 함은 어디로 보든지 맛없는 생활이라 하여, 지난달에 자기의 정부(情夫)를 골라 정화서(鄭和西)에게 몸을 허락하였다. 그러므로 손인수는 “나의 잘못은 없습니다. 다시 살도록 해 주시오. 만약 정 아니 살겠거든 작년에 꾸어 쓴 20원이나 주오. 그래야 살겠소”하는 하소연을 관할 인천 경찰서에 제출하였다. 그리하여 그 경찰서에서는 피설유자(被說諭者)읜 도씨를 불러서 설유를 하였더니, “60살이 넘은 노인과 같이 운명을 지을 수는 없으니까 이혼은 당연한 처사이며, 20원은 반씩 나누어 내가 10원을 주겠소.” 하였다더라.
☯ 진귀한 보험금 사취 미수 (1924.04.03.) 동아일보
허위의 사망 신고로
멀쩡한 여자를 죽었다고 신고
피고는 모두 3년 이하의 징역

병들어 죽게 된 여자를 기화(奇貨)로 여겨 금전을 사기하려 한 근래에 드문 진귀한 사건이 잇다. 시내 냉동 135번지에 사는 조내덕(趙乃德·40)과 수원군 음덕면 신남리에 사는 정진구(鄭鎭九·40)와 같은 동리에 사는 송기만(宋起萬·27) 등 세 사람은 공모해 가지고 엉터리 없는 돈을 사취할 작정으로, 작년 4월 13일에 수원군 마도면 슬수리 571번지에 사는 이기성(李基性)의 처 김계년(金季年)이 병으로 죽게 된 것을 보고, 그 여자의 이름으로 이부귀(李富貴)라는 신체 건강한 다른 여자를 데리고 시내 황금정에 있는 유린(有隣)생명보험 회사에 가서, 50세 만기로 5,000원의 보험을 부치고 김기년이라는 여자가 죽으면 그 보험금을 사기하고자 하였으나, 그 여자가 도무지 죽지 아니 하므로 그들은 속이 타서 야단을 하다가 필경은 하루라도 속히 보험금을 사기하려는 목적으로써 김계년의 거짓 사망신고를 관할 면사무소에 제출하고 그 증명을 맡으려 하던 바, 필경은 사실이 탄로되어 그들은 관할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고 경성지방법원으로 넘어와 사실의 심리를 받은 후, 그제 1일 오후에 영도(永島) 판사의 손으로 조내덕은 징역 3년, 정진구와 송기만은 각각 징역 1년 반의 판결 언도가 있었다더라.
☯ 위자료 200원과 30,000원의 차이 (1924.04.03.) 동아일보

동경 지진통에 조선인들이 죄없이 학살을 당한 사실은 세계의 이목(耳目)이 다 공인하는 바이요. 흰옷 입은 사람의 가슴에 말할 수 없는 아픔을 주었는데 그 후 당국에서는 위자금(慰藉金)이라는 명의로 돈 200원씩을 가족에게 주었다. 천하를 다 주어도 생명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데, 위자금 200원을 받는 가족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으랴. 그런데 근일 그때에 조선인으로 잘못 알고 참살을 당한 일본 사람 3명이 그때의 소위 자경단(自警團)을 걸어 3만 원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죽은 동포의 영혼을 위로할 길이 없는 우리에게는 3만 원을 청구하는 그들의 처지와 200원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처지를 비교하고 뼈가 저린 감회가 더욱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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