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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디 갑주 합창단, 함께 가는 은발의 소년소녀들

글쓴이 : 뉴스로 날짜 : 2026-10-21 (수) 22:33:21


몇 년 전 일본의 조선학교를 방문했을 때였다. 학생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보며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학교에서 예술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고, 춤과 노래를 즐기는 일은 늘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언젠간 춤이든 노래든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을 배워 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는 그럴 기회가 전혀 없었다. 가르치는 곳도, 가르쳐 줄 사람도 없고, 어쩌다 개인 레슨 선생님을 만나도 비용이 만만치 않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던 내가 제주에 살면서 이곳의 사람들과 어울려 합창대회에 나갔다. 인생은 60부터라고 하는데, 이제 61살이니 본인이 1학년이라고 생각하고 평생학습관을 다닌다는 바바라를 따라서 '혼디갑주 합창단'의 마지막 단원이 되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내가 실제로 그녀를 따라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것이다.

 


 

2018년에 창단된 '혼디갑주 합창단'은 '함께 가는 합창단'이라는 뜻이다. 합창뿐만 아니라 요양원 방문 공연도 꾸준히 하고 여러 지역 봉사도 해왔던 합창단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모여 각각의 음색을 모아 한 목소리처럼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의 이름으로는 찰떡이고, 처음으로 악보를 받아든 나는 마치 여고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마침 탐라합창제를 앞두고 있어서 단원들은 노래 연습에 집중할 때였다. 40여 명의 합창단이 연습할 수 있는 장소를 섭외하여 주말마다 모여서 연습을 하고 지난 10월 1일엔 성 이시돌 요양원을 찾아가 위로 공연도 했다. 매번 바바라는 운전 중에도 나에게 노래를 연습할 수 있도록 녹음 파일을 틀어 주고, 내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함께 불러 주며 나를 챙겨 주었다. 김세란 총무님과 이정려 단장님은 새내기 신입단원인 내 옆에서 음정과 박자를 맞춰 주고 노래의 부분 부분을 녹화해서 따로 보내 격려해 주었다.

 


#탐라합창제 출연 사진 유기연

 

드디어 지난 11일 제36회 탐라합장체가 제주문화회관에서 열렸다. 13개의 합창단이 경연(競演)을 했고 그중 우린 은퇴자 합창단으로 참가하는 것이다. 중창단뿐만 아니라 남녀 혼성 합창단까지 다양한 합창 경연이 있었다. 아카펠라 합창을 한 제주 굿보이스 콰이어가 대상을 차지했다. 단원들의 목소리만으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고, 김은희 지휘자의 열정적인 지휘는 객석의 집중적인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국합창총연합회 제주특별자치도지회가 주최. 주관한 이번 합창제는 일반부와 학생부로 나누어 열렸다. 제주특별자치도 지방보조금 지원 축제인 탐라 합창제는 많은 합창단의 경연을 넘어 합창을 통한 소통과 화합을 격려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 도민의 일상에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기회를 넓히는 역활을 해왔다.

 


# 장려상 수상 사진 문영임

 

일반 합창단 첫 번째로 경연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예행연습을 하며 서로 화장을 고쳐 주는 단원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흥분이 가득했다. 단원들의 실수도 농담을 섞어 웃으며 바로 잡아주는 고수일 지휘자님과 수없이 반복되는 연습에 묵묵히 반주를 맡아 준 이금춘 반주자님 덕분에 우리 은발의 단원들은 마치 생기발랄한 소년소녀같았다. 김태원 작곡의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와 '진또배기' 두 곡을 준비했다. 우리 앞 순서는 남녀 중창단이 최근 유행하는 랩을 넣은 신나는 댄스곡이었다. 어두운 무대 뒤에서 노래를 듣던 몇몇 단원은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기 시작했고, 긴장한 단원들은 산만하다고 자제를 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한마디로 우리는 통제불능 상태였다. 마침내 조명 아래 무대에 서서 객석이 한눈에 들어오자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첫 음조차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휘자의 손이 올라가 남녀 화음이 엇갈리는 부분과 돌림 부분까지 무사히 마치자 안도감이 느껴졌고, 두 번째 노래인 '진또배기'에서는 한결 자신감이 붙었다. 특히 '진또배기'는 이날 무대에 오른 합창곡 가운데 유일하게 안무(按舞)를 곁들인 공연이었다.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고 내려온 단원들은 모두들 만족스러운 웃음이 가득했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하자"던 지휘자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한 모든 연습보다도 제일 잘했다고 모든 단원들이 흡족해하며 기뻐했다. 단원들의 만족감에도 불구하고 비록 장려상에 머물렀지만 우리에게는 결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장려상이 무색할 정도로 단원들은 "우리가 이렇게 잘할 수가 있었냐!"며 자화자찬으로 단체 카톡방에는 연신 격려글과 찬사가 울렸다. 한 번도 무대에 서서 공개적으로 공연을 해보지 않았던 많은 단원들이 인생 최고의 경험이라며 좋아했고, 경험 많은 분들은 음악적 성취감으로 일취월장(日就月將)하였다고 만족했다. 덕분에 우린 다음 달 7일엔 KCTV 녹화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 성 이시돌 요양원에서의 공연 사진 이정려

 

나이가 들수록 목소리는 잠기고, 무엇 하나 이전처럼 외우는 게 쉽지 않은데도 이번 합창제 덕분에 내 인생에서 노래를 외울 수 있게 된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합창단으로 양로원에 계신 어른들을 찾아가 노래하며 잠시나마 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건 귀한 경험이 되었다. 언젠가 내가 그들처럼 휠체어에 앉아 낯선 방문객이나마 반가울 때가 되면 지금의 내가 생각이 날지 모르겠다. 지난 20년 동안 살아왔던 나와 미래의 20년을 생각해 보면 지금부터 맞이할 미래의 20년은 온전히 내가 만들어 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글 문영임(린다 모) |

 

미국에서의 이민생활을 잠시 접고 고국에서 생활하면서 직접 느끼고 보는 일상을 기록합니다. 더 나은 세상, 더 좋은 이웃의 만남이 더 넓은 세상까지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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