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이 안좋아도 이해하소. 법명은 설산, 영어로 말하면 스노우 마운틴이요.”
6일 뉴욕주 샐리스배리 밀즈의 한국사찰 원각사 큰법당은 박수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원각사 회주이자 한국의 불보사찰 통도사 주지를 역임한 정우 큰스님의 법문을 듣는 200여 불자들은 때로는 박장대소하며,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법문도중 정우 스님은 바로 전날 한 구순(九旬)을 눈앞에 둔 미국인 사업가에게 법명을 지어준 사연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화제의 미국인은 의류기업을 운영하는 해리 두리틀 씨(88). 불교와 특별한 인연이 없었던 그가 한국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게 된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해리 두리틀 씨의 부인은 한국인 박미숙 씨. 이들 부부는 ‘해리 & 미숙 두리틀 파운데이션‘이라는 자선재단을 운영하며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등 공익적인 활동을 벌여 왔다. 특히 부인이 한국인이라는 인연으로 두리틀 씨는 한인사회에 대해 각별한 관심속에 재정이 어려운 비영리단체들을 도와왔다.
두리틀씨 부부는 지난 봄 평소 친분있는 정화섭 씨 부부를 통해 미동부 최초의 한국사찰 원각사의 주지스님과 신도들이 타계한 한 보살의 49제를 정성껏 치르는 모습을 보고 큰 감화를 받게 됐다. 이어 원각사 신도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한국식 대웅전을 건립하는 대작불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지난 4월 무려 100만 달러를 쾌척,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후 부처님 오신날 봉축법회와 대웅전 기공식 등에 초청받는 등 원각사와의 인연을 키워나간 이들 부부가 마침내 회주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는 불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해마다 11월 신도총회를 겸한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에 온 정우 큰스님은 이들 부부의 청을 받고 두리틀 씨에게는 ‘설산(雪山)’이라는 법명을, 박미숙 씨에게는 ‘보리마’라는 법명을 각각 지어주었다.
정우 스님은 “올해 88세로 미수이신 이분에게 만년설을 덮은 히말라야의 산들처럼 ‘설산’이라는 법명을 드리며 영어로 스노우 마운틴이라 했더니 정말 기뻐하더라”고 전해 법당안을 흐뭇한 미소로 채웠다.
원각사(뉴욕 샐리스배리밀즈)=민지영특파원 jymin@newsroh.com
<꼬리뉴스>
네명의 아내를 둔 남자
이날 정우 스님은 법문에서 눈 먼 장님에 관한 두가지 이야기와 네명의 아내를 둔 남자의 이야기를 비유설법으로 소개하며 ‘우리가 보는건 단지 껍데기일뿐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눈을 떠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명의 아내를 둔 남자의 이야기는 <잡아함경>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첫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나깨나 늘 곁에 두고 살아갑니다.
둘째는 아주 힘겹게 얻은 아내입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쟁취한 아내이니 만큼 사랑 또한 극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둘째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성과도 같습니다.
셋째와 그는 특히 마음이 잘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넷째에게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늘 하녀 취급을 받았으며,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했지만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의 뜻에 순종하기만 합니다.
어느 때 그가 머나먼 나라로 떠나게 되어 첫째에게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첫째는 냉정히 거절했습니다. 그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둘째에게 가자고 했지만 둘째 역시 거절했습니다. 첫째도 안 따라가는데 자기가 왜 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셋째에게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셋째는 "성문 밖까지 배웅해 줄 수는 있지만 같이 갈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넷째에게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넷째는 지체없이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넷째 부인만을 데리고 머나먼 나라로 떠나갔습니다.
<잡아함경>에 나오는 이 이야기의 "머나먼 나라"는 저승길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내"들은 "살면서 아내처럼 버릴 수 없는 네 가지"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첫째 아내는 육체를 비유합니다. 육체가 곧 나라고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지만
죽게 되면 우리는 이 육신을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얻은 둘째 아내는 재물을 의미합니다.
든든하기가 성과 같았던 재물도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합니다.
셋째 아내는 일가 친척, 친구들입니다.
마음이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던 이들도 문 밖까지는 따라와 주지만
끝까지 함께 가 줄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를 잊어버릴 것이니까요.
넷째 아내는 바로 마음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별 관심도 보여주지 않고 궂은 일만 도맡아 하게 했지만 죽을 때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마음뿐입니다.
어두운 땅속 밑이든 서방정토든 지옥의 끓는 불 속이던 마음이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살아 생전에 마음이 자주 다니던 길이 음습하고 추잡한 악행의 자갈길이었으면 늘 다니던 그 자갈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고요, 선과 덕을 쌓으며 걸어 다니던 밝고 환한 길이면 늘 다니던 그 환한 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어떤 마음으로 어떤 업을 짓느냐가 죽고 난 뒤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