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은 온전히 안철수(安哲秀)의 해였다. 한국정치 사상 최대의 드라마틱한 이변으로 남을 ‘안철수 열풍’이었다. ‘컴퓨터의사’ 안철수는 단 4개월만에 한국정치권의 지형도를 바꿔버렸다.
수년간 굳건하던 ‘박근혜 대세론’을 뒤엎었고 한나라당 민주당의 양강 구도를 바꿔버렸다. 8월 24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가 폭풍 드라마의 시작이었다. 안철수는 서울시장 출마설 만으로 과반수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했고 5%의 지지도를 받던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한다는 의사표명만으로 그를 당선시켰다.
‘안철수 현상’은 결국 정치권의 재편을 가져왔다. 여권은 ‘박근혜당’으로의 ‘한나라당 재편’을 앞당겼고 민주당 주도의 야권도 친노세력과 시민사회의 연합체인 ‘혁신과 통합’과 민주당이 합쳐 민주통합당이 출범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국민참여당간의 진보통합도 통합진보당으로 몸을 불렸다.
안철수는 9월 이후 모든 대선주자 양자대결 여론조사에서 박근혜를 압도했다. 이러한 현상은 3개월째 지속되면서 이제는 안철수 대세론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비정치인인 안철수를 어떤 유력 정치인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청년 실업과 사회 양극화, 이념 대립과 정치 불신 등에 대한 절망과 분노의 소산이다. 그는 대한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가 2012년 대선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자못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Newsroh 취재팀
<꼬리뉴스>
한국최초의 백신프로그램 무료제작배포한 컴퓨터의사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1962년 2월 26일 부산에서 출생했다. 198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의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고, 1990년에는 당시 최연소인 만 27세에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학과장을 역임했다.
의대 재학 중에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한국 최초의 백신 프로그램인 V1, V2와 V3를 만들었다. 이후 7년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백신을 무료로 제작·배포했다.
1995년 2월엔 의대 학과장을 그만두고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해 백신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 2005년 3월까지 안철수연구소의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이후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에서 MBA를 취득한 뒤, KAIST 석좌교수로 임용됐다. 2011년에는 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차세대융합기술원장을 맡았다.
2011년부터 안철수의 행보는 정치적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안철수는 2011년 중순부터 최측근으로 알려진 의사 박경철과 함께 전국을 누비는 ‘청춘콘서트’를 했다. 청춘콘서트 일정 도중 안철수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의사를 내비쳤고, 결국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안철수의 등장 이후 한나라당, 민주당 등 정치권은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안철수 영입 의사를 밝혔다. 2012년 대선 출마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1년을 강타한 ‘안철수 현상’이다.
<자료 wwww.ko.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