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한국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어요.”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2012 바스켓볼 커리어컨퍼런스에 참가한 손성원씨(27)는 22일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와의 인터뷰에서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매년 NBA 서머리그가 열리는 7월 라스베가스에선 미 최대의 농구컨퍼런스가 개최된다. 스포츠매니지먼트 교육기관인 SMWW가 주최하는 이 행사엔 스포츠에이전트와 마케터, 언론인, 농구업계 종사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농구산업전문가들 양성과 네트워크의 장이 되고 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200여명중 아시안은 단 두명이었다. 그중 한명은 중국계 대학원생이었고 나머지 한명이 바로 손성원씨였다.
지난해 2월 동국대(사회체육학/국제통상학)을 졸업한 손씨는 국제적인 스포츠마케팅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미국 캘리포니아로 유학을 왔다. 스포츠에듀케이션 마스터과정을 1년만에 수료한 그는 지난해 4월 미국친구로부터 스포츠매니지먼트 월드와이드(SMWW)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컨퍼런스도 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해 11월 텍사스 댈라스에서 열린 베이스볼 커리어컨퍼런스에 참여했을때 한국인은 물론, 아시안이 거의 없었기때문에 이번 행사에서 같은 한국인을 만날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스포츠매니지먼트의 역사가 일천(日淺)한 한국과는 달리 다양하고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과 인적네트워크 구축이 큰 자산이 되고 있다는 그는 젊은이다운 패기와 도전정신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에 오자마자 한국의 야구선수들을 미국 마이너리그에 진출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는가하면 SMWW와 같은 과학적인 스포츠매니지먼트 프로그램을 도입할 생각도 한다. 또 엘리트선수들이 아닌 보통의 학생들이 주인공이 된 국제적인 UNICEF`농구자선경기도 연다는 야무진 계획도 갖고 있다.
손성원씨는 고2때 길거리 농구선수에서 엘리트 선수로 변신한 범상치 않은 스포츠 이력도 있다. 울산 출신인 그는 동아리팀 선수로 활약한 형(손성민)의 영향으로 초등학교때부터 농구선수의 꿈을 품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신정고 2학년이던 2001년 가을 대한농구협회 홈페이지 게시판(신문고)에 농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사연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경북 상주의 상산전공의 신대철 감독으로부터 테스트를 받게 됐다.
작은아들의 소망을 위해 경찰공무원인 아버지 손해광씨(57)와 어머니 장순경(53)씨는 상주까지 동행해 테스트를 받게 했다. “김현수 코치님이 ‘다른건 몰라도 드리블 하나는 잘하네’ 하시더라구요. 사실은 운이 좋았어요 제 키가 지금도 175cm로 농구선수로는 단신이지만 그때는 더 작았거든요. 그런데 고2에 정식 선수가 됐다면 사람들이 믿질 않더라구요.”
당시 상산전공은 선수숫자가 9명으로 줄어 긴급보충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팀에 합류한 그는 비록 출장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2년간 정규 대회 코트를 밟아보는 기쁨을 누렸다.
동국대 진학후 더 이상 선수생활은 가능하지 않았지만 그에겐 또다른 꿈이 움트고 있었다. 바로 국제적인 스포츠마케터였다. 병역을 마치고 복학후 영어공부에 매달렸다. 2008년엔 1년간 코네티컷에서 어학연수도 하는 등 미국 유학을 위한 기초(基礎)를 쌓았다.
덕분에 SMWW의 스포츠매니지먼트 온라인 프로그램은 물론, 스포츠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적잖은 도움이 됐다. 그는 올 가을 일단 귀국해 MBA 준비를 할 계획이다.
“내년에 다시 미국에 와서 학위를 따고 NBA 구단의 첫 한국출신 프런트가 되고 싶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스포츠산업을 연결짓는 가교역할도 하고 싶구요. 언젠가는 구단주가 되어 스포츠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 마지막 소망입니다.”
라스베가스=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성공은 꿈꾸는 자의 몫”
손성원씨가 처음 농구에 매료(魅了)된 시기는 초등학교 6학년때인 프로출범 직전인 96농구대잔치를 우연히 TV로 시청할 때였다.
연세대와 고려대의 경기에서 연대의 ‘슈퍼골리앗’으로 불린 서장훈이 극적인 버저비터 3점포를 작렬하는 것을 보고 농구의 매력에 푹 빠졌단다.
외삼촌이 사준 농구공을 벗삼아 선수의 꿈을 꿨지만 일찌감치 학교팀에 들어가지 않으면 선수가 될 수 없었던 한국 학원스포츠의 현실로 길거리농구로 만족해야 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진로에 고민하던 그는 대한농구협회 신문고 게시판에 자기소개와 함께 간절한 선수의 꿈을 전했고 이를 본 상산전공 졸업생(이준호)이 신대철 감독의 연락처를 전해주면서 극적인 기회를 잡게 됐다.
막상 선수가 되었지만 밖에서 생각한 것과 현실은 달랐다. 대학진학과 함께 선수보다는 농구와 관련한 전문직업이 더 좋겠다고 판단한 그는 1학년을 마치고 군복무를 하면서 장래 희망을 스포츠 마케터로 굳혔다고 한다.
동국대 오현옥 교수의 추천으로 국비지원프로그램을 이용해 미국에 유학온 손성원씨는 스포츠마케팅 회사인 ISG 코리아(대표 박정근 교수)의 현지 프런트로도 활약했다.
그가 마이너리그에 소개하려고 시도한 선수는 롯데 자이언츠 2군에서 선수생활을 한 이창석이었다. 역시 국비지원프로그램으로 같은 학교에서 만난 그를 마이너리그측에 소개하기 위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했다.
“제가 아무것도 연결되는 사람들이 없잖아요. 훈련장을 찾기도 어렵고 코치도 필요하고, 백방으로 수소문하면 찾다가 제가 사는 인근 코튼시에서 우연히 퍼블릭 야구장의 매니저인 피트 코치를 알게 됐어요. 그의 호의로 연습도 무상으로 하는 등 많은 도움을 받았지요.”
이창석은 그후 개인사정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손성원씨는 얻은 것도 적지 않았다. 미국의 야구인들을 알게 되었고 SMWW와 같은 스포츠매니지먼트 교육기관을 통해 많은 전문가들과 네트워킹을 맺게 되었기 때문이다.
손성원씨의 가장 큰 지지자는 누구나 그렇듯이 부모님이다. 평생 경찰공무원으로 헌신한 아버지와 매일같이 부처님전에 1천배를 올리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콧등이 시큰해진다.
“아직까지 이렇다할 결실을 맺은 건 없지만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성공은 꿈꾸는 자의 몫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