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속으로〉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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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한 나라의 헌법이 멈춰 선 날로 기억되고, 어떤 날은 시민들이 빼앗긴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역사의 문을 두드린 날로 남습니다. 10월 17일은 권력의 이름으로 민주주의가 흔들린 순간과, 인간의 지혜로 세상의 경계를 넓혀온 순간이 함께 놓인 날입니다. 역사는 권력(權力)이 무엇을 선언했는지만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 선언 앞에서 무엇이 사라졌고, 무엇이 끝내 살아남았는지도 묻습니다.
[역사속의 주요 장면]
1777년 — 미국 독립전쟁의 전환점, 새러토가의 항복
미국 독립전쟁에서 영국군 장군 존 버고인(John Burgoyne)이 새러토가 전투에서 패배해 항복했습니다. 이 승리는 미국 독립군의 사기를 높였고, 프랑스가 미국을 지원하는 계기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한 전투의 결과가 국제정세를 바꾸고 독립의 가능성을 넓힌 순간이었습니다.
1917년 — 한강을 잇는 새로운 길
서울의 한강인도교가 준공됐습니다. 오늘날 한강대교의 전신(前身)으로, 한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잇는 교통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강은 오랫동안 사람과 마을을 갈라놓았지만, 다리는 서로 다른 삶을 연결하는 통로가 됐습니다.
1969년 — 장기집권의 길을 연 3선 개헌 국민투표
박정희 대통령의 3선 연임을 가능하게 하는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가결됐습니다. 앞서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 속에 변칙적으로 통과된 개헌안은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한 길을 열었습니다. 헌법은 권력을 제한하고 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약속입니다. 그 약속이 권력의 연장을 위해 바뀔 때 민주주의는 중대한 시험대에 오릅니다.
1972년 — 헌정 질서를 뒤흔든 10월 유신
박정희 대통령은 특별선언을 통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으며 정당 활동을 중지시켰습니다. 헌법의 효력이 제한되고 정치적 자유가 크게 위축되면서 이른바 유신체제가 출범했습니다. 권력은 이를 국가 안보와 통일을 위한 조치라고 내세웠지만, 그 결과는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된 장기 독재체제였습니다. 10월 17일은 한국 민주주의가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 날로 기억됩니다.
1978년 — 판문점 인근에서 발견된 제3땅굴
비무장지대 인근에서 북한이 남쪽으로 파 내려온 제3땅굴이 발견됐습니다. 남북 간 군사적 대립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땅속으로 이어진 통로는 전쟁의 위협이 휴전선 위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드러냈습니다. 평화는 선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상대를 향한 불신과 군사적 위협을 줄여 나가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오늘의 탄생인물]
아서 밀러 (Arthur Miller, 1915~2005)
미국의 극작가로, 현대 사회의 양심과 개인의 책임을 무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은 성공과 부를 좇는 사회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그렸고, 《시련》은 집단적 공포와 마녀(魔女)사냥의 위험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개인의 비극을 통해 사회가 감추려는 모순을 밝혀냈습니다. 그의 작품은 시대가 달라져도 권력과 여론 앞에서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묻습니다.
리타 헤이워스 (Rita Hayworth, 1918~1987)
할리우드 황금기를 대표한 배우로, 《길다》 등의 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가 됐습니다. 화려한 스크린의 이미지 뒤에는 여성 배우에게 요구된 외모와 이미지, 사생활에 대한 통제라는 현실도 있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대중이 사랑하는 스타의 모습과 한 인간이 감당해야 했던 고독 사이의 간극을 돌아보게 합니다.
에미넴 (Eminem, 1972~ )
미국의 래퍼이자 작사가로, 거친 언어와 강렬한 자기 고백을 통해 힙합 음악의 표현 영역을 넓혔습니다. 가난과 가족의 갈등, 사회적 편견을 노래로 풀어내며 대중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논란을 불러온 가사도 있었지만, 자신의 상처와 분노를 음악으로 바꾸어낸 그의 작업은 대중문화에서 언어가 지닌 힘을 보여줍니다.
[오늘의 타계인물]
프레데리크 쇼팽 (Frédéric Chopin, 1810~1849)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피아노 음악의 표현 가능성을 한층 넓혔습니다. 녹턴과 발라드, 폴로네즈 등 그의 작품에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섬세한 감정의 결이 스며 있습니다. 조국 폴란드를 떠나 파리에서 활동했지만, 그의 음악은 망명자의 향수(鄕愁)와 민족적 정서(情緖)를 오래도록 간직했습니다. 쇼팽은 1849년 10월 17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푸이 (Puyi, 1906~1967)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가 신해혁명으로 퇴위했습니다. 이후 일본이 세운 만주국의 황제 자리에 올랐으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범으로 구금됐고 훗날 중국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갔습니다. 한 개인의 생애는 제국의 몰락과 혁명, 전쟁과 체제 전환이라는 격동의 역사를 가로질렀습니다. 그는 1967년 10월 17일 베이징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존 리드 (John Reed, 1887~1920)
미국의 언론인이자 혁명운동가로, 러시아혁명을 현장에서 기록한 《세계를 뒤흔든 열흘》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혁명을 멀리서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민중과 권력의 충돌을 기록했습니다. 언론이 역사의 증언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인물이지만, 동시에 혁명의 이상과 현실이 어떻게 충돌하는지도 생각하게 합니다. 그는 1920년 10월 17일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의 한마디]
권력은 때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헌법을 바꾸고, 역사의 흐름을 멈추려 합니다. 그러나 다리는 강을 건너게 하고, 예술은 침묵 속의 진실을 드러내며, 시민의 기억은 지워진 자유를 다시 불러냅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권력을 오래 붙드는 데 있지 않고, 사람의 존엄을 오래 지키는 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누군가의 용기와 희생 위에 서 있음을 기억할 때, 민주주의는 과거의 유산을 넘어 미래의 약속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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