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서 활동하는 조성모(52) 작가의 설치대작(設置大作) ‘자연과 문명의 대화’가 2013 뉴욕아트엑스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조성모 작가의 작품은 높이 4m, 폭 0.6m 의 기다란 직육면체의 조형물(造形物)이다. 이 작품은 컴퓨터의 CPU와 VGA 카드, 메모리 등 컴퓨터와 TV, 라디오 40대의 부품들로 이뤄진 것이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지난 21일부터 24일까지 맨해튼의 Pier 92전시장에서 열린 제35회 뉴욕아트엑스포는 500개의 갤러리와 150개의 뮤지엄 및 작가들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박람회이다.
2년전 ‘길 시리즈’라는 유화로 호평을 받은 조 작가가 공식적으로는 조각으로 분류된 초대형 설치작품을 출품한 것은 신선한 화제를 모았다. 주최측은 ‘자연과 문명의 대화’를 입구쪽에 배치해 사흘간 전시장을 찾은 모든 이들이 볼 수 있게끔 배려했다.

이 작품은 살아 있는 것처럼 각각 4개의 면이 LED램프처럼 환하게 서로 다른 빛을 발한다. 놀라운 것은 컴퓨터 기판과 디스크가 정상 작동되는 것은 물론, TV모니터에서 동영상이 나오고 라디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시장에 입장한 사람들은 옛 월드트레이드센터를 연상시키는 조형물에서 빛과 소리가 나오자 한결같이 신기해했다.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은 기본이고 작품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등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의사이자 아트콜렉터라고 소개한 마크라는 남성은 “그동안 중국작가의 작품에 관심이 많아 쥬웨이 유쳉유 등의 작품을 많이 모았는데 조성모 작가의 작품은 단연 두드러졌다”면서 두 차례나 전시장을 찾은데 이어 곧 작업실도 방문해 다른 작품도 보기로 약속을 했다.

미술평론가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간 조 작가가 미국화랑가에서 서양화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뉴욕 맨하셋미술협회의 바바라 실버트 회장은 “한마디로 환상적이다. 하단의 세라믹 코너스톤위에 세워진 컴퓨터 부품의 빌딩의 조합은 석기시대(石器時代)의 인간이 문명(文明)의 탑(塔)을 향해 기어 올라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자연과 문명의 대화’에 활용된 소재는 11대의 낡은 컴퓨터를 비롯, TV와 라디오 등 총 40대 분량이다. 이것들을 해체해 1인치 두께의 아크릴판에 정교하게 붙여나가는 작업은 무려 5개월이 소요됐다. 부품들을 오래된 순으로 쌓아(?) 올렸기때문에 노트북 등 최근의 제품들은 상단을 형성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오래된 부품일수록 투명한 빛을 띄어 신비로운 음영(陰影)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작품 내부에 8피트 크기의 형광등을 연결해 빛을 발하도록 했고 한쪽 면은 빨간색으로 ‘LOVE’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왜 빌딩의 이미지를 선택했을까. 그는 빌딩이야말로 문명의 모든 것을 함축(含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2012년 4월 뉴저지 1&9 갤러리 전시장에서
“현대의 첨단 빌딩들을 보세요. 문명의 복잡하고 정밀한 부분들은 감춰진 채 심플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외관을 내세우고 있잖아요. 저는 반대로 부품들을 노출시켜 조형물의 몸체로 둘러서 표현했습니다.” 문명의 숨김없는 속살을 드러내려는 의도이다.
전시를 위한 이동의 편의성을 위해 조 작가는 처음부터 2단으로 분리할 수 있도록 작품을 설계했다. 분리후 조립과정에서 조금만 실수가 있어도 작품이 오작동되거나 훼손(毁損)될 수 있어 늘 긴장을 하게 된다.
때문에 뉴욕주 오렌지카운티의 산중턱에 있는 자택에서 작품을 옮겨오는 것은 고도의 주의가 필요했다. 2개의 파트로 분리해 옮겨서 재조립하기까지 컴퓨터전문가이기도 한 아들 조한얼(27) 씨의 도움이 컸다.

▲ 아들 조한얼씨와 함께
작품이 완성된 것은 지난해 초이지만 받침대를 이루는 기초석은 1995년 제작됐다. ‘자연과 문명의 대화’를 처음 구상한 것은 미국 유학 직전인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먼저 캔버스에 ‘문명의 신호’라는 작품을 그렸다.
언젠가는 이것을 입체로 구현하겠다는 열망을 품고 세라믹 기초석부터 만든 조 작가는 머릿속으로 구상하며 때를 기다렸다. 틈틈이 낡은 컴퓨터와 노트북 등을 모으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2011년 여름 롱아일랜드시티의 한 건물에 새로운 작업공간을 얻으면서 20년의 꿈을 담은 ‘자연과 문명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천정이 정말 높았어요. 제가 꿈꾸던 것을 할 수 있겠다 싶더라구요. 18년간 창고에 넣어둔 세라믹 기초석을 꺼내는데 95년에 한 싸인을 발견하고 가슴이 뭉클하더라구요.”


▲ 2012년 4월 롱아일랜드시티 전시장에서. 오른쪽 코너스톤 하단에 95년 싸인이 보인다
‘자연과 문명의 대화’는 지난해 한인사회에 두 차례 선을 보였지만 주류 화랑가에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성모 작가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을 보여주겠다는 목적이었는데 그 이상의 성과를 얻게 되어 기쁘다”면서 “20여년의 꿈을 이뤘으니 이제 새로운 20년을 시작하겠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croh@newsroh.com

<꼬리뉴스>
‘길’의 작가 조성모 화백 美아트엑스포 전시 <2011년 3월 24일 Newsroh>
서양화가 조성모 화백(50)이 세계 최대의 미술박람회에 작품을 출품해 눈길을 끌고 있다. 뉴욕서 활동하는 조성모 화백은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맨해튼 피어94에서 열리는 제32회 국제아트엑스포에 길 시리즈 3점을 출품(出品)한다.
국제아트엑스포는 세계 20여개국에서 400여명 이상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박람회로 화가는 물론, 아트딜러와 컬렉터, 구매자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앤디 워홀과 로버트 라우셴버그,·키스 헤어링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고 화랑 소속작가들은 물론, 인디 화가들의 솔로전과 그룹전도 열린다.
92년 뉴욕에 온 이후 무려 26회의 개인전을 연 조성모 화백에게 이번 아트 엑스포는 특별한 감회(感懷)로 다가온다. 지난 20년간 천착(穿鑿)한 길 시리즈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생애 첫 참여하는 아트 엑스포를 통해 소개하게 됐기 때문이다.

세편의 작품은 ‘길을 따라서(Along the road)’의 연작형태이다. 각각 ‘안개낀 파크웨이’, ‘자연과 문명의 대화’, ‘사랑의 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그는 왜 길을 추구할까. “길 도(道)가 닦을 도(道)가 같은 한자어를 쓰는 것처럼 우리가 운전하며 길을 갈 때는 온갖 상념에 젖는다. 그런데 미국의 길은 문명의 상징이지만 도회적이기보다는 자연친화적인 이미지를 준다.”
한국에서 활동할 때는 이른바 ‘허상(虛像)’ 시리즈를 파고 들었다. 부와 권력, 명예를 상징하는 문명의 심볼을 큰 빌딩으로 이미지화한 ‘허상’은 <에꼴드 서울> 그룹전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인간의 욕심과 사악함이 종내는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 그의 예감은 2001년 9.11테러로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면서 슬픈 현실이 됐다.
“서울에선 파란 하늘을 보기가 어려웠다. 어느 가을날 남산에서 손에 잡힐듯 파란 하늘 아래 놓인 관악산을 단 한번 보았지만 미국에 와서는 너무도 파란 하늘을 수시로 접한다. 문명에 대한 고발과 계몽의 주제가 어느덧 자연과 문명의 대화로 흐르게 되었다.”

조 화백은 95년부터 독특한 이미지 분할작업을 캔버스에 구현하고 있다. 연결된 두세개의 이미지를 한꺼번에 집어넣는 것이다. “캔버스가 인간의 몸이라면 이미지들은 살면서 경험하는 것이다. 복합된 이미지를 독창화하는 작업이야말로 내 작품의 정체성이다. 예술은 개성이 빠지면 2류, 3류로 전락한다.”
미술평론가 이영상 씨는 조 화백의 작품세계에 대해 “인간과 자연의 이미지를 자연색보다 더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색의 대비를 통한 빛의 시각적인 효과를 잘 나타내고 있다. 화폭에서 배어나오는 순도높은 투명성과 기하학적 패턴의 색면, 이에 대비되는 이에 대비되는 여백의 공간이 한데 어울려 정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시흥을 보이고 있다”고 평한다.
특히 아트 엑스포는 조 화백의 작품에 대해 “눈부신 컬러와 이미지를 피곤에 지친 현대인의 영혼을 위무(慰撫)하는 시각적 은유(隱喩)로 표현하고 있다”며 “길 시리즈는 문명의 충격을 벗어나 고적한 하이웨이를 따라가는 우리네 삶의 연대기”라고 찬사를 보냇다.

아트 엑스포는 개막에 앞서 주목할만한 작가를 소개하는 ‘오늘의 작가’로 조 화백을 선정, 전 세계 화랑과 평론가, 콜렉터들에게 선보이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조 화백은 중앙대 미대 회화과와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에 이주한 후 프랫 대학원을 졸업하고 머시 칼리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도 양성하고 지금은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뉴욕은 물론, 한국과 일본 독일 등지에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온 그는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 중 ‘사랑의 길’이 있다시피 마지막에 깨우쳐야 할 길은 바로 사랑이 아닌가 싶다”며 앞으로의 작품 경향을 시사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newsro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