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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 탄생100주년 ‘을화’ 첫 연극 뉴욕서 올린다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3-10-03 (목) 08:44:38



 

 

사상 처음 연극으로 올려지는 김동리의 대표작 ‘을화(乙火)’가 뉴욕에서 초연될 예정이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김동리(1913-1995)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극단 ‘검은돌’이 창단 공연으로 기획한 ‘을화’는 영화와 뮤지컬로 만들어진 적은 있지만 연극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11월 2일과 3일 오후 3시와 7시 총 4회 뉴욕 퀸즈시어터인더파크에서 공연된다.

 

 



 

 

1936년 발표된 단편소설 ‘무녀도’를 장편으로 개작한 ‘을화’는 1920년대 경주의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무당(을화)의 토속신앙과 아들(영술)의 기독교 신앙과의 충돌과 갈등을 그리고 있다. 동양과 서양의 가치관, 전통적 신비주의와 근대적 합리주의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 삶의 본질과 진정한 가치를 조명, 노벨문학상 후보작으로도 거론된 불후의 명작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대한민국 현대연극사의 개척자로 통하는 이승규 연출가가 10여년만에 일선에 복귀하고 뉴욕에서 활동중인 각 한인극단이 연합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이승규 연출가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1회 졸업생인 이승규 연출가는 ‘마임의 전설’로 불린 연극배우 고 추송웅씨와 동기다. 1966년부터 79년까지 한국 연극계를 이끌어간 극단 ‘가교’를 창단했고 1985년부터 3년간 국립극장 상임연출,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을 맡았다. 약 100여편의 작품을 연출하면서 동아연극상과 서울신문 연극상, 백상예술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출연진의 면면도 화려하다. 을화역에 김은희가 캐스팅된 것을 비롯, 장지호(영술) 박진현(방돌) 박장로(최일훈) 월희(박은영) 정상용(김진) 노마님(김분임) 며느리(신명희) 이성출(임창규) 어머니(김소야) 며느리(박혜숙) 등 미동부의 실력파 연기자들이 총집결했다.

 

 



 

 

 

원로배우 최일훈 씨의 가세는 특기할만 하다. 최일훈 씨는 이승규 연출가와 극단 가교 시절부터 인천시립극단 시절까지 함께 한 평생의 동지이자 후배로 이번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밖에 소리꾼 문옥주 씨가 창을, 이춘승과 뉴욕취타대가 음악반주를 맡아 눈길을 끈다.

 

 



 

 

고영범 작가가 일곱 번이나 각색을 할만큼 공을 들인 이 작품은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다른 신념이 모자간 절대적 사랑의 관계속에서 충돌하는 비극성이 이승규라는 장인(匠人)의 연출로 처절하리만치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극단 ‘검은돌’은 뉴욕한인사회의 공연예술의 활성화를 선도하고 고품격의 문화예술사업을 선보이겠다는 각오로 뉴욕 뉴저지의 연극인들이 힘을 합쳐 창단했다. 이들은 ‘을화’ 공연을 통해 한인사회내 수준높은 정통연극의 전통을 수립하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검은돌’을 후원하는 중앙대 류재길 뉴욕동문회장은 “을화 공연을 계기로 내년부터는 미술과 음악. 국악 등이 어우러진 종합문화예술제로 발전시킨다는 청사진을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근 뉴욕에서는 ‘리타 길들이기’ ‘자화상’ ‘사진신부’ ‘6개월클럽’ 등 연극과 성극뮤지컬 등 다채로운 작품들이 한국연극인들에 의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뉴욕 극단 MAT의 임홍주 연출가는 “요즘 뉴욕은 유례없는 공연열기속에 수준높은 공연이 이어져 마치 대학로를 뉴욕동포사회에 옮겨놓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한국문학사의 거목’ 김동리

김동리는 한국 시에서의 서정주처럼 소설 분야에서 토착적이고 민속적인 소재를 완전한 현대적 소설 미학으로 수용해서 민족 문학의 전통을 확립하고 확대시킨 작가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은 그의 문학 작품 가운데서 신라 때부터 전승되어 온 민족 신화의 정신적인 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한국 문학 가운데 민족 문학의 특색을 강하게 지니면서 세계성을 띈 작품을 말하라고 하면, 우리는 서슴없이 김동리의 단편 <황토기>와 <무녀도>를 언급해야 할 것이다. 비록 대부분의 그의 작품의 배경과 무대는 도시가 아닌 오지인 전원이며 작중 인물들은 인구 밀집 사회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형적인 소재를 사용해서 작품의 주제를 보편화시킴은 물론 민족 문학의 향취와 개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그가 비록 원시적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현대적인 소재를 사용한 다른 어느 작가의 작품 못지 않게 현대적인 감각을 지니게 만든 것은 그의 예술적 재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작품의 소재가 원시적인 것의 범위에 머무르지 않고 원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작을 공부하는 사람은 물론, 진정한 한국 문학을 이해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그의 작품이 모두 사회 문제를 전혀 취급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의 데뷔작인 <화랑의 후예>와 <산화>를 비롯하여 <밀다원 시대>, 그리고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등신불>과 같은 작품 등은 사회성과 역사 의식이 짙은 작품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 문제의 고발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프레임으로 해서 존재론적인 문제와 '인간 정신의 고향'으로부터의 추방과 회귀 문제를 깊이 다루고 있다.

 

 



 

 

김동리는 1913년 민족 정신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경주시 성건리의 김임수씨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장형 김기봉씨는 당시 전국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한학자이자 대선비였다. 그의 나이 여덟 살 때 경주 제일교회 부속학교에 입학했다. 그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기독교 계통 학교인 대구 계성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16세에 그는 서울로 올라와 같은 계통의 학교인 경신 고등 보통학교에 삼학년으로 전학을 했다.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후 발표한 <무녀도>와 <사반의 십자가> 등과 같은 작품에서 기독교적인 이야기를 한 것은 아마 이 때 공부한 지식이리라.

 


▲ 청년시절의 김동리

 

 

그러나 김동리는 경신 고등학교로 전학한 그 다음해에 학교를 중퇴하고 창작 생활에 전념했다. 이 때 김동리는 서울에서 시인 서정주와 문우 관계를 맺으면서 맨 처음 <백조>란 시를 조선일보에 발표해서 입선을 했다. 그러나 그의 문학적인 재능은 시에서보다 소설에 있었다.

 

그래서 일제 때 조국을 잃고 유랑의 길을 걷도 있는 민족주의자들의 운명을 낙원에서부터 추방되어 유랑의 길을 걷고 있는 민족주의자들의 운명을 낙원에서부터 추방되어 유랑의 길을 걷고 있는 비극적인 인간의 운명과 상징적으로 결합시키면서 압축되고 스피디한 문장으로 쓴 <화랑의 후예>와, 압박과 착취로 굶주림에 시달린 민족적 현실을 화전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통해 리얼하게 고발한 <산화(山火)>를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각각 발표해서 그 당시 문단에 놀라운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 후 그의 대표작인 <무녀도>를 《중앙》에, <바위>를 《신동아》에 발표해서 24세의 젊은 나이에 벌써, 탁월한 신예 작가로서 문단의 시선을 한 몸에 모았다. 그 이듬해 그의 나이 25세 때 서정주, 김달진, 제씨들과 시 동인지 《시인부락》을 내어 문학의 본질을 '생명' 그 자체에서 구하자는 문학 운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는 다솔사 전도관을 빌려 광명 학원을 창설하고 불우한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창작 생활에 정열을 태웠다. 유명한 <황토기>란 작품도 이 때 완성한 것이다. 이때 그는 문학의 순수성을 주장하면서 일제하의 어용 문화 단체인 문인 보국회, 국민 문학 연맹 등의 가입을 거부했다.

 

해방 후 그는 문단의 좌우익 투쟁에 개입해서 민족 문학을 옹호하기 위해, 전국 문필가 협회 결성에 가담해서, 서정주, 조연현 씨 등과 함께 한국 청년 문학가 협회를 결성해서 초대 회장에 피선되었다.

 

 


 

 

 

1947년 원산 문학 동맹에서 간행한 시집 《응향(凝香)》에 대한 북한 문예 동맹의 탄압이 가해지자 그들의 비문학적인 행동과 격문을 맹렬히 반박한 <문학의 자유와 옹호>를 《백민(白民)》에 발표하고 그 해 경향신문 문화부장이 되었다.

 

그 후에도 그는 이 나라의 어려운 사회적 환경 속에서 김병달, 김동석 등과 같은 좌익 평론가들과 논쟁을 벌이며 문학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었다.

 

 


 

 

그가 이렇게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의 지조를 끝까지 지킨 결과는 바로 그의 문학 작품에 나타났다. 다시 말하면 그가 인간의 존재 문제를 초월적인 문맥과 연결지워 <등신불>, <까치 소리> 등과 같은 수준 높은 상징적 작품을 계속 쓸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시대적 좌파의 질풍에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그가 42세의 젊은 나이로 학술원 회원이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가 중앙 대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했었던 바와 같이, 우리 나라의 순수 문학을 지키기 위해서 일생을 바친 현대 한국 문학사의 거목이다.

 

<출처 이태동 교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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