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보존 vs 한국행’ 놓고 공청회 격론
지난 200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대규모로 발견된 미주한인독립운동 유물(遺物)과 사료(史料)들이 11년째 방치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위탁관리를 놓고 대다수 한인들이 강력 반대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LA 한인회관에서는 지난 4일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 이사회(대표 이사장 존 서) 주관으로 미주 한인사회 초기 이민역사와 일제강점기 선조들의 독립운동 활약상을 상세히 기록한 ‘대한인국민회 유물’ 2만점을 조건부 위탁관리 방식으로 한국 독립기념관으로 이전되는 문제를 놓고 공청회가 열렸다.
미주한국일보에 따르면 이 유물들은 남가주 한인사회가 로스앤젤레스 제퍼슨블러바드에 위치한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관’을 대한인국민회 기념관으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2003년 7월 건물 다락방에서 29개 박스들을 건물 다락방에서 무더기로 발견했다.
사료들은 1919년 3월9일 대한인 국민회 중앙총회장 안창호 명의로 발표한 대한독립선언 포고문을 비롯, 1919년 6월21일 상해임시정부 재무총장 최재형이 미주 한인에게 애국세를 부탁한 공문, 한글로 된 이승만의 대한민주국 임시집정관 총재선언서와 1920년 1월 대한인국민회 독립운동결의안 원본 등이 포함됐다.
또한 1900~1970년대까지 독립운동 당시 사용되던 태극기와 일제강점기 서울 전경 사진, 공립신문·신한민보 원본 및 축쇄판, 독립운동 자금 입금대장, 대한인 국민회관 낙성식 휘호, 1920년대 미주한인 호적인 ‘재미동포 인구등록’, 이민초기 한글 교과서, 개인서신 및 사진 등 당시 초기 미주한인들의 삶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유물 발견 직후 국민회관 기념재단은 한국 정부에 유적지 실태 조사단 파견을 요청했으나 전면적인 자료조사는 8년뒤인 2011년 12월24일 독립기념관 소속 사료 전문가 4명이 파견되고서야 이뤄졌다.
건물주인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의 적극 협조아래 2차례 조사를 벌인 실사단의 홍선표 박사는 “대부분 유물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원본’으로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며 “한국 독립운동사·미주 한인 이민역사를 재평가할 귀중한 보고가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6년 USC 대학이 3만달러의 예산을 제시하며 사료 디지털 자료화 사업을 제안했지만 재단 내부 이해관계와 한인사회 반대여론으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물 보존사업이 지지부진(遲遲不進)하자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는 사료가 담긴 29개 박스 등을 교회 내 임시장소에 보관해왔다.
이후 국민회 기념재단은 유물 보존처리의 시급성과 LA 현지 보존시설의 미흡 등을 들어 전시공간 및 수장고 마련, 자료전집 제작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고 2013년 한국 국가보훈처·국민회와 기념재단,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가 ‘조건부 위탁관리’ 방식으로 독립기념관 이전의 뜻을 모았다.
‘독립운동 사료 조건부 위탁관리 협약서’에 따르면 한인사회가 유물의 반환을 요청할 경우, 언제든지 돌려보낸다는 내용이 명시됐으며 사료의 복사본은 대한인국민회 기념관에 전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공청회에서 발언에 나선 대부분의 한인들은 국민회관 유물들을 한인사회가 관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LA 흥사단 최창호 대표는 “이곳에서 생성된 유물은 한인 이민 선조들의 숨결과 정성이 담긴 만큼 원본이 LA에서 보존되야 한다”고 말했다. 서동성 변호사는 “유물의 보존 처리와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모두에게 공개하고 USC, UCLA 등 한국학 연구기관을 활용해 현지에서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대학기관들도 적극 호응하는 모습이었다. USC 동아시아도서관의 켄 클라인 관장은 “USC는 이미 한 차례 국민회 자료의 디지털 작업화를 진행했고 현재 유물의 보존처리도 제안한 바 있다”면서 “기념재단과 교회가 허락한다면 USC의 경험과 예산, 전문 인력을 동원해 유물의 보존처리를 무료로 맡겠다”고 밝혔다.
UCLA 동아시아도서관의 조상훈 한국자료 담당은 “UCLA는 주정부가 관리하는 문화재 수장고가 있고 한인 이민사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기념재단이 UCLA 예산과 시설을 이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상 사진 미주한국일보 제공> 그러나 이미 그러한 제안이 있었음에도 한인사회의 입장이 갈려 진척을 보지 못한 것과 관련, 또다시 무의미한 세월을 보내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독립운동사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조명을 위해선 우선 독립기념관에 보존하고 본국 국민들도 초창기 미주한인들이 얼마나 가열차게 독립운동을 벌였는지 알게 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유물은 미주한인사회가 원할 때는 언제든 돌려받을 수 있다. 한인사회가 특수 보관처리가 가능한 수장고와 보관 주체가 없는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회 기념재단도 유물 보존 및 관리를 담당할 시설과 인력을 갖추면 한국 정부에 반환을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미주한인사회에서는 본국 정부에 유물 관리를 줄기차게 요청했다는 점에서 반대의 여론에 당혹해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와 함께 본국정부가 좀더 일찍 실사작업을 벌이고 적극적인 유물관리방안을 제시했다면 이런 논란은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5년간 이 문제를 취재해온 미주한국일보의 김형재기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료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정보를 일반에 공개하는 것’이다. 독립기념관 실사단이 2차례 와서 목차를 정리해 갔지만 일반인이나 학계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내부의 이해관계가 얽혀 정작 제일 중요한 유물의 보존처리 및 사료의 내용 공개가 11년째 외면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뉴욕=노창현특파원 newsroh@gmail.com
<꼬리뉴스>
“독립운동 산실 보존” 정부가 나서야
대한인 동지회 사태로 본 이민사 유적 현황·문제점(미주한국일보 2011년 8월18일 보도)
http://www.koreatimes.com/article/679593 국민회관 유물 2만점, 이젠 제대로 관리(미주한국일보 2011년 12월17일 보도)
http://www.koreatimes.com/article/70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