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동(48) 원장은 오늘도 푸른색 자전거를 타고 맨해튼을 누빈다. 뉴욕총영사관 한국교육원장으로 부임한지 이제 1년여. 그는 초기부터 ‘시티 바이크(Citi Bike)’ 애호가(愛好家)이다. 지난해 5월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이 도입한 시티 바이크는 마치 그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최악의 교통체증(交通滯症)으로 악명높은 맨해튼에서 시티 바이크는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며 뉴욕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다. 센트럴파크 남단 60가 이하의 로워 맨해튼과 브루클린, 스태튼아일랜드 일부까지 3천개의 거치대에 6천여대의 자전거를 비치해 이용과 반납이 대단히 편리하다.
그렇지만 중년의 한국신사가, 그것도 교육원장 신분의 그가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행사장을 방문하는 결심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박희동 원장은 “교통체증도 피하고, 운동도 되고, 맨해튼의 풍광까지 즐기는 일석삼조(一石三鳥)의 시티바이크를 왜 안타겠냐”며 자전거 예찬론을 펼친다. 처음부터 1년 회원권을 끊었다는 그는 날씨가 궂을 때를 제외하고는 늘 시티 바이크와 함께 한다.
한국서 갓 부임한 공직자가 자전거를 타고 행사장에 달려오는 모습에 보수적인 한인사회도 마음의 문을 열었다. 격식을 버리고 발로 뛰겠다는 자세가 읽혀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부임 1년만에 교육분야에 종사하는 많은 한인들과 격의없는 사이가 됐다.
“뉴욕에 가면 한국적이면서도 미국적인 것을 하고 싶다고 지인들에게 말했는데 시티 바이크는 저의 실용적인 로망을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했습니다. 42가 타임스케어를 지날 때 누군가 자전거로 달리는 모습에서 ‘다이나믹 코리아’를 떠올리더군요.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는 뉴요커들 틈에서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 온 공무원도 이렇게 발버둥치며(?) 살고 있습니다.”
지난 1년간 그가 애정을 기울인 것 중 하나는 한국학교였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간직하여 애쓰고 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전초기지(前哨基地)와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뉴저지 버겐필드의 한 한국학교를 방문했을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흐뭇한 미소가 피어난다. 종교단체가 후원하는 이 학교에서 복도에 걸린 학생들 작품도 감상하고 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학교 발전을 위한 지혜도 짜냈다.
11시가 넘어갈 즈음, 식당에선 크림 스파케티와 토마토 스파게티의 냄새가 피어올랐다. 엄마들이 준비한 스파게티는 왜 학생들과 선생님, 학부모가 학교에서 행복해 하는지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학교엔 학생과 선생님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학부모들이 있었습니다. 학교를 떠날 때까지 코끝을 떠나지 않는 스파게티 향기, 그 향기는 엄마의 사랑, 미국에서 봉사로 생을 바친 선생님들의 희망이었어요. 이렇게 바다 건너 동포들은 한국학교를 매개(媒介)로 사랑을 실천하며 한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키우며 살고 있더군요.”
얼마전 박희동 원장은 ‘동포사회에 다가가는 따뜻한 교육’을 모토로 한 재외동포교육 지원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남은 임기 2년간 스스로 8대 과제를 설정해 뉴욕지역에 대한민국 정부의 교육정책이 안정적으로 접목(椄木)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어능력시험을 연 2회로 확대하고, 이중언어교육 프로그램 전파, 한국어 방문연수를 다녀온 교장 교감 장학관 등 교육행정 전문가와의 유대 강화에 힘쓸 예정이다. 한인사회 리더들로 이뤄진 ‘뉴욕 재외동포교육 발전협의회’를 연내 출범시켜 차세대 교육의 방향과 현안문제 해법도 제시하도록 도울 생각이다.
원거리 지역의 한국 학교에 대한 방문조사를 통해 학교경영전문가 그룹 운영, 장학 수요 등을 파악하는 ‘찾아가는 학교 컨설팅’, 재외동포용 교재 개발과 교재 물물교환 장터를 개설하는 아이디어도 눈길을 끈다.
이밖에 “재외동포학생 정체성 함양을 위해 역사교육 연구 시범학교를 지정 운영하고, 독도 동영상 감상문쓰기 대회를 한글날 글짓기 대회와 연계 운영하는 방안도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노창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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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동포사회에 따뜻한 교육으로 다가갈터”
박희동 원장은 일선교사 출신의 교육전문가이다. 1992년 경기도 백신중학교에서 사회교사로 교직에 입문한 그는 2000년 교육연구사로 교육부 근무를 시작해 학교정책실, 대변인실 등에서 초중등교육 관련 정책 입안 및 실행을 위해 노력했다.
뉴욕한국교육원장 부임 직전에는 교육부 인성교육지원팀장을 거쳐 중앙교육연수원에서 교원능력개발부장을 역임하는 등 교육행정 관리자로서의 경험을 축적하기도 했다.
2001년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사회과교육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2007년 텍사스 A&M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행정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초등학교 교사인 부인 정영란씨와 슬하(膝下)에 박소희(대학교 2학년), 박소영(고교 2학년) 두 딸을 두었다.
박희동 원장은 “한국식 교육으로 잘 알려진 할렘의 데모크라시 프렙스쿨의 사례처럼 이제 한국어와 한국식교육은 미국에서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면서 “동포사회에 다가가는 따뜻한 교육으로 뉴욕이 미주지역의 교육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