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l.com
89년전 일제(日帝)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학생운동의 뜻을 기리는 집회가 3일 서울 광화문 광장 등 도심 곳곳에서 펼쳐졌다.
6.15남측위원회와 범민련, 민중당 등 애국시민단체들이 서울 광화문 미국대사관 앞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89주년 행사를 개최했다. 참가자들은 한반도 평화염원 문화제를 통해 '주한미군철수' 구호와 함께 성조기를 찢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했다.


6.15남측위 공동대표이자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김재유 '통일교류협력단장’
광주에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장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 89주년 기념식을 첫 국가 주관 행사로 개최했다.
'학생이 지켜온 정의, 그 위대한 역사의 시작'을 주제로 열린 올해 기념식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독립유공자, 유공자 가족, 시민, 학생 등 3000여명이 참여했다.
이날 광화문광장 일대는 총 3만 여 명이 참가하는 집회와 행사 20여 건이 개최돼 도심 곳곳에서 복새통을 이뤘다.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서 '사법 적폐청산 4차 대회'를 통해 사법 농단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과 적폐청산 걸림돌인 자유한국당은 해체하라고 촉구했다.
시민단체 국민주권연대는 이날 서울 종로구 세종로 소공원 앞에서 '11.3 자주독립선언대회'를 열고 “주한미군은 철수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남북관계 발전을 방해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서울 성북구민회관에서 전국민주시민합창축전 '꽃피어라 민주주의야'를 개최했다.
문화예술인들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적폐(積弊) 청산을 위해 블랙리스트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화예술단체 131개로 구성된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촛불혁명을 이룬 주권자들이 명령한 국정과제 1호인 철저한 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책 수립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와 여당, 대통령이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출발해 마포대교, 공덕역, 충정로역, 서대문역, 광화문을 지나 청와대 사랑채 앞까지 행진했다.
한편 한미동맹 강화를 외치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도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마친 뒤 깃발을 들고 행진, 맞불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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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광주학생운동 1929년 일본학생의 한국여학생 희롱 촉발
광주학생독립운동(光州學生獨立運動)또는 광주학생항일운동(光州學生抗日運動)은 1929년 11월 3일부터 광주시내에서 일어난 일본 학생의 한국 여학생 희롱으로 일어난 한국 학생과 일본 학생 간 충돌과 11월 12일 광주지역 학생 대시위운동을 거쳐, 호남지역은 물론 서울을 거쳐 1930년 5월까지 전국으로 확산된 항일운동이다. 12월에는 경성과 평양, 함경도 등지와 같은 국내 지역과 만주벌에 위치한 간도 등으로 확산되었다.
1929년 발생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19년 3·1 운동 이후 국내 최대규모의 대중적 항일 운동으로 꼽힌다. 광주학생운동은 무엇보다 3.1운동 10주년을 맞아 항일의 기세를 높이고자 했던 한국인들이 그해 연말과 그 이듬해인 1930년 초까지 민족의 독립의지를 천명한 사건이었다.
해방 직후 서울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학생들의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의미로 11월 3일을 학생의날로 정했다. 당시 광주학생운동과 더불어 11월 말 신의주 반공의거 기념일을 별도로 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1953년 10월 국회 본회의가 시작되자 윤택중의원은 학생의 날 제정취지를 발표하고 이를 국가적 차원의 기념일로 하자고 제안했다. 학생항일운동기념일, 학생의 날 등의 이름표기를 놓고 짧은 토론이 진행된 후 신익희 국회의장이 회의 안건을 표결해 부치면서 만장일치로 학생의 날이 가결되었다.
학생의 날은 이승만대통령, 윤보선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이 참여할 정도로 국가기념일의 위상을 가지게 되지만 1973년 정부가 53개 정부기념일을 26개로 간소화하는 과정에서 폐지되는 굴곡을 겪었다. 1984년 11월 학생의 날이 부활했으나 전두환 정부는 학생들의 시위를 염려하여 이를 통제하기도 했다. 80년대 말까지도 예전의 위상을 회복하지 못했고, 2006년에는 11월 3일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