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김원일 칼럼니스트
제72회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은 칸 영화제 최고의 작품들로 여겨지던 영화들 중의 하나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돌아갔다. 그리고 이 결정은 전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상들과 調和(조화)를 이루고 있다.
‘기생충’에서 칸 영화제의 장르별 구성 요소는 정점에 이른다. 포룸보이우, 하우스너, 타란티노 등 경쟁작 감독들이 장르 내에서만 자기 작품을 표현하고 있을 때 봉준호 감독은 장르의 멱살을 잡고, 장르의 테두리를 벗겨 폭발할 위험이 있는 상태까지 가열시킨 다음 현대 영화에서 유례없는 스타일과 의미의 정점에까지 작품을 올려놓고 있다.
두 한국인 가정의 치명적인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기생충에는 가난하고 눈치가 빠른 한 가정과 현실과는 동떨어져 사는 두 번째 부자 가정이 등장한다. 봉준호 감독은 이 작품을 블랙코미디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러한 정의로 이 영화의 장르를 넘나드는 縱橫無盡(종횡무진)한 전개와 감추어진 여러 의미를 다 표현할 수는 없다. 여러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투명하고 가벼운 영화의 구조는 영화의 장면들이 전개되는 현대적인 디자인의 건물인 두 번째 가정의 집과 유사하다.
1층에는 마스크를 쓴 코미디와 상황들이 전개되지만, 다른 층에는 계층간의 갈등에 대한 아주 명민한 諷刺(풍자)가 있고, 또 다른 층에는 위로할 수 없는 가정의 비극이 있다. 또 다른 비밀스럽기까지 한 중간 층도 있지만 봉준호 감독은, 타란티노 감독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시사회 전에 기자들에게 부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층에 대해서는 미리 말하지 말고 함구해 줄 것을 기자들에게 부탁했다.
'기생충' 한 장면
봉준호 감독은 이 층들 사이를 우아하게 빠르지 않은 속도로 거침없이 빠져나가지만 절대로 의미있는 상황들을 歪曲(왜곡)하지 않는다. 감독의 ‘기생충’ 작품 지휘법은 거의 오페라와 같은 규모로 펼쳐지며, 인간 의식을 초월한 행동들이 각기 다른 층에서, 집의 각기 다른 구석에서 일어나며, 인물들의 몸짓과 이동, 그들의 비상과 낙하가 전체 합창으로 구성된다.
‘기생충’은 실제로 2019년 칸 영화제에서 가장 예견하기 어렵고 역설적인 영화 중의 하나이다. 이 영화는 한 번 보고 난 후 바로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영화이다. 이 영화야 말로 장르와 저자가 거만 떨지 않으면서도 내내 가장 예측을 잘하고 주도면밀한 관객보다도 더 영리하여, 모든 뜻을 한꺼번에 파악할 수가 없고 숨은 이야기도 다 알 수가 없어 다시 한 번 보면 볼수록 더욱 더 영화 감상의 즐거움이 자라나는 아주 흔하지 않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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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유 (러 이즈베스티야)
칸에서 제72회 칸 영화제가 종료되었다. 최종 시상식에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우리는 우리가 선호하는 것을 여러분에게 소개하지만, 시간이 흘러 미래가 되면 작품들은 서로 자기 자리를 찾아 잡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작품들이 미래에 어떻게 자리를 잡을 것인가는 물론 추측해 볼 도리 밖에 없다. 지금으로서는 심사위원들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부터 추측해 보아야 한다.
황금종려상은 한국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받았다. 이는 심사위원들이 일반적인 慣行(관행)을 따르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이에 대해 몇몇 비평가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경험있는 눈으로 보면 정확하고 분명하게 영화의 리듬과 편집이 정확하지 않을 것을 가려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점이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게 된 사실은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실이 있다. 즉 한국 영화가(동남아시아 전체로) 살아있으며, 생동력을 가지고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한국 영화는 생명력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며 관객과 접촉하고 호흡할 줄 안다. 종종 칸에 제출되는 대작들, 칸을 방문하고 칸이 선호하는 巨匠(거장)들이 관객과의 접촉이 없이 동떨어진 자신들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올해 제일 먼저 수여되는 프랑스독립상영관협회가 선정하는 아트하우스시네마상을 수상한 것도 이 영화라는 점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칸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