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에서 ‘민족통신’ 창간 통일운동 헌신
Newsroh=로담爐談 newsroh@gmail.com
평생을 통일운동에 힘쓴 재미언론인 노길남 박사가 25일 별세(別世)했다. 향년 76세.
노길남 박사는 지난 한달여 동안 코로나19 증세로 그렌델지역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회복하지 못하고 유명(幽明)을 달리 했다. 장례식은 따로하지 않고 추모 모임만 가족 위주로 갖기로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노경숙 여사와 슬하에 두 딸 진, 영과 3명의 손자 손녀가 있다.
1973년 도미, 텍사스주립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일보 미주지사 기자, 코리안스트릿저널 편집장, 뿌리지 편집장, 라디오코리아 앵커 등 언론분야에 종사하다 1980년 광주항쟁시기부터 미국 동포사회에서 한국민주화운동에 본격적으로 가담했다.
1987년 민족문제연구 민족지도자 양성후원단체인 한민족연구회를 조직하고, 1999년 민족통신을 창간한 노길남 박사는 남과 북을 하나의 조국으로 간주하고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편집방향으로 운영하는 자주언론의 대표 겸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결성에 참여하여 재미본부위원, 6.15 해외측위원회 발족에 참여하였고 특히 북녘을 75회 방문 취재하는 등 ‘북 바로알리기 운동’의 원조와도 같은 존재였다. 오늘날 많은 언론이 분단적폐의 놀음에 갇혀 있지만 고인은 민족민주운동과 조국통일을 위해 일생을 헌신(獻身)한 참된 언론인이었다.
노길남 박사의 별세에 SNS에서는 미주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동포들의 애도와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장준하선생의 3남으로 잘 알려진 장호준목사(코네티컷 유콘스토어스 한인교회)는 페이스북 추모글을 통해 남다른 소회를 아래와 같이 떠올렸다.
이상 민족통신 제공
“내가 노길남 박사님을 처음 뵌 것은 2005년 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노 박사님과 평양에서 함께 보냈던 한 주간을 통해 언제나 유쾌한 웃음으로 농담을 던지시는 그 환한 모습 속에 화산처럼 터져 솟구치는 민족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담겨 있는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 온 후 노 박사님의 초대로 ‘민족통신’과 인연을 맺으며 ‘재미동포전국연합’에서 함께 했던 적도 있었고 내가 엘에이에서 강연회를 할 때면 언제나 찾아 오셔서 이것 밖에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시며 백 달라 한 장을 주머니에 집어넣어 주시던 분이셨습니다.
북조선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시면 밝은 목소리로 다녀왔다고 전화를 주시며 북조선 소식을 전해 주시곤 하셨는데 이제는 노 박사님의 그 환한 음성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먹먹한 심정이지만,
당신의 많은 것들을 희생하시기까지,
진정 그 무엇보다도 민족을 사랑하셨던 노길남 박사님.
박사님을 뵐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박사님과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분단의 아픔은 이 땅에 남겨 두시고,
분단 없는 평화의 하늘에서 민족통일의 길을 밝혀 주시옵소서.
영전에 두 무릎 꿇고 절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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