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속으로〉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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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문이 닫히면 역사는 다른 문을 찾습니다. 1907년 헤이그에서 조국의 독립을 호소했던 이준 열사(烈士)의 유해가 5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고, 1981년 서울은 세계의 축제인 올림픽 개최도시가 됐습니다. 1990년에는 냉전의 반대편에 있던 소련과도 외교관계를 맺었습니다. 한때 세계로부터 고립(孤立)됐던 나라가 세계에 말을 걸고, 세계의 무대에 서며, 닫혀 있던 외교의 문을 하나씩 열어간 과정입니다. 그러나 세계사의 다른 한편에서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합의가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역사속의 주요 장면]
1938년 — 뮌헨협정, 평화를 위한 타협의 그림자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가 뮌헨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 지역을 독일에 넘기는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전쟁을 피하기 위한 외교적 타협이었지만, 체코슬로바키아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영토가 결정됐고 이듬해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으로 이어졌습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협상이 언제나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역사적 교훈을 남겼습니다.
1949년 — 베를린 공수작전, 하늘로 이어진 생명의 길
소련의 베를린 봉쇄에 맞서 미국과 영국 등이 15개월 동안 서베를린에 식량과 석탄 등 생필품을 항공기로 실어 날랐습니다. 9월 30일 마지막 비행기가 베를린에 착륙하면서 대규모 공수작전(空輸作戰)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육로가 막힌 도시를 하늘길로 연결한 이 작전은 냉전 초기 국제정세를 상징하는 사건이 됐습니다.
1963년 — 이준 열사의 유해, 56년 만에 고국으로
1907년 고종의 특사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됐던 이준 열사의 유해가 네덜란드에서 5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준은 이상설·이위종과 함께 을사늑약(乙巳勒約)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려 했지만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했고, 헤이그에서 순국했습니다. 그의 유해가 김포공항에 도착한 날은 한 독립운동가의 긴 귀환이자, 역사가 잊지 않은 한 사람의 이름이 다시 고국 땅을 밟은 날이었습니다.
1981년 — 서울, 1988년 올림픽 개최도시로 결정되다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서울이 1988년 하계올림픽 개최도시로 선정됐습니다. 전쟁의 폐허에서 불과 30여 년 만에 세계 최대의 스포츠 무대를 유치하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서울올림픽은 이후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무대가 됐습니다.
1990년 — 한국과 소련, 냉전의 벽을 넘어 수교하다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국과 소련 외무장관이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오랫동안 적대적 관계에 있던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은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냉전질서가 변화하는 가운데 한국의 외교 지평이 크게 넓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오늘의 탄생인물]
잘랄루딘 루미(Jalal al-Din Rumi, 1207~1273)
페르시아의 시인이자 이슬람 신비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입니다. 《마스나비》를 비롯한 수많은 시를 통해 사랑과 영혼, 인간과 신의 관계를 탐구했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권에서도 오랫동안 읽혀온 그의 시는 인간을 가르는 경계보다 서로를 연결하는 마음에 주목했습니다.
트루먼 커포티(Truman Capote, 1924~1984)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인 콜드 블러드》로 유명한 미국 작가입니다. 특히 《인 콜드 블러드》는 실제 살인사건을 취재해 문학적 서술로 재구성하며 이른바 ‘논픽션 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적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세밀한 문장으로 포착한 작가였습니다.
엘리 비젤(Elie Wiesel, 1928~2016)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자 작가, 평화운동가입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가족과 수많은 동족이 희생되는 비극을 겪었고, 그 경험을 《밤》에 기록했습니다. 이후 자신의 기억을 개인의 고통에 머물게 하지 않고 인류가 다시는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억과 증언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198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타계인물]
제임스 딘(James Dean, 1931~1955)
《에덴의 동쪽》, 《이유 없는 반항》 등으로 청춘의 불안과 반항을 상징한 미국 배우입니다. 불과 24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짧은 영화 경력은 이후 세대의 대중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자유와 고독, 방황하는 청춘의 이미지로 오래 기억되는 배우입니다.
찰스 리히터(Charles F. Richter, 1900~1985)
지진(地震)의 규모를 수치로 나타내는 리히터 규모를 개발한 미국의 지진학자입니다. 지진을 단순히 ‘크다’ 또는 ‘작다’고 표현하는 데서 벗어나 객관적인 수치로 비교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지진을 이해하고 대비하는 현대 과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남겼습니다.
시몬 시뇨레(Simone Signoret, 1921~1985)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황금 투구》, 《항구의 부두》 등에서 강렬하면서도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고, 1959년 《길고 긴 일요일》이 아니라 《계단》으로 알려진 작품이 아니라 《계단》(Les Diaboliques)과 같은 혼동을 피해야 할 만큼 작품 목록이 복잡한 배우이므로, 여기서는 그녀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황금 투구》와 《군중 속의 얼굴》 등을 중심으로 기억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프랑스 영화의 전후 시대를 대표한 배우로 남았습니다.
[오늘의 한마디]
역사의 문은 저절로 열리지 않습니다. 누군가 먼저 두드리고, 누군가는 먼 길을 돌아 그 문을 찾아가야 합니다. 헤이그에서 조국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려 했던 이준의 길은 56년 뒤 고국으로 돌아왔고, 서울은 세계의 무대가 됐으며, 1990년에는 냉전의 벽 너머 소련과 외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베를린 공수작전은 반대로 닫힌 길 앞에서도 사람을 살리는 길을 찾아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9월의 마지막 날, 우리가 열어야 할 문은 더 넓은 세계로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는 사람과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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