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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기획취재 ‘뉴욕 항일 사적지 순례’<下>

유일한의 ‘고려경제회’와 뉴욕한인 구심점 ‘삼일신보’를 찾아서
글쓴이 : 륜광 날짜 : 2020-10-28 (수) 00:34:10

 

Newsroh=륜광輪光 newsroh@gmail.com

       

 

일본제국주의 강점기에 뉴욕은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근대 지식인의 양성기지이자 해외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맨하탄엔 이들 애국지사들이 가열찬 항일 독립운동을 펼친 유적지들이 존재한다. ‘글로벌웹진뉴스로는 항일운동 초기 미주 한인유학생 등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한 사적지를 조명함으로써 한민족의 자긍심(自矜心)을 고취하고 23세 자녀들에게 한민족의 정체성을 고양하고자 2020 ‘뉴욕항일 사적지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사본 -유일한.jpg


 

유일한의 애국경제 '고려경제회'


 

유일한(柳一韓 1895~1971)하면 사람들은 유한양행을 떠올린다. 그는 자본주의 폐해가 심한 한국 풍토에서는 보기드문 양심적인 기업인으로 사람들의 뇌리(腦裏)에 남아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정직한 기업가였던 그는 사람들의 보건을 위해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1971년 별세하면서 손녀딸의 유학자금 1만달러를 제외한 전 재산을 교육사업에 기증한 사실은 사람들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

 

1895년 평양에서 출생한 그는 아마도 우리나라 최초의 조기유학생일 것이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그의 부친(유기연)은 미국 감리교에서 조선인 유학생을 선발한다는 말을 듣고 1904, 9살에 불과한 큰 아들 일한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유일한은 인솔자였던 독립운동가 박용만의 배려로 미국 네브래스카주에서 살던 태프트 자매에게 입양되어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자신의 힘으로 살았다.

 

박용만이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헤이스팅스 소년병학교에 입교해 항일 정신을 길렀던 그는 19193.1운동 직후, 서재필박사가 필라델피아에서 소집한 제1차 한인의회에 참여했고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세계에 선언한 '한인자유대회'에 참석했다. 그의 자취가 서재필박사와 함께 필라델피아에도 깊이 남아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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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경제회가 있던 뉴욕 맨하탄의 거리

 

미시건대학과 스탠포드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26년에 귀국해 종로2가에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우리 민족의 건강유지에 필요한 결핵약을 비롯해 약품을 조달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엔 미국에서 약품을 수입하여 팔았지만 1933년에 진통소염제 안티푸라민을 개발 판매했고 중국계미국인 부인 호미리 여사도 중일전쟁으로 조선내 의약품 부족이 심화될때 소아과 병원을 개업하여 저렴한 가격에 환자들을 치료했다.

 

항상 윤리경영을 실천하고 한국 최초초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한 유일한은 일제가 광란의 전쟁에 빠져든 1943122일 뉴욕에서 10명의 발기자와 함께 고려경제회(Korea Economy Society)를 설립했다. 고려경제회는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독립될 신생 한국의 근대적인 산업과 경제건설을 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고 정기적으로 <Korea Economy Digest>라는 경제잡지를 발행했다.

 

유일한은 이곳에서 경제활동 외에도 재미한족연합위원회와 OSS가 기획한 대일비밀첩보작전 '납코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등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그로부터 8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맨하탄의 최중심인 브로드웨이 1775번지는 역사의 기록말고는 고려경제회의 흔적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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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경제회가 있던 뉴욕 맨하탄의 거리

 

 

취재 무렵 맨하탄은 코비드19 사태와 흑인인권 시위로 주변 건물마다 1층과 현관 등을 나무판자로 막는 등 살풍경한 분위기였다. 이곳에서 누구도 유일한을 기억하는 이들은 없지만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우리 민족의 건강과 조국의 경제부흥에 노심초사(勞心焦思)한 재미동포 영웅 유일한의 이름은 영원할 것이다.

 

 

* 뉴욕한인교민단 기관지 삼일신보 발행지

 

1928629일 뉴욕에서 최초의 국문 신문이 발행됐다. 이름하여 삼일신보(三一新報). 이름에서 연상되듯 삼일신보는 3.1운동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뜻에서 창간됐고 창간일도 192831일로 했다.

 

뉴욕중앙일보 2017년 보도에 따르면 뉴욕의 한인신문 역사는 192212월 첫 발행된 한인학생회보(The Korean Student Bulletin)’가 효시다. 영문으로 발행됐으며 약 20여 년 지속된 이 회보는 뉴욕에 있는 외국학생친선위원회 산하 한인학생부가 월간으로 발행했고 유학생 정보 교류 및 미국인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역할에 치중했다.

 

두번째 매체는 자유한국(The Free Korea)’이다. 19424월에 발행된 자유한국은 한인학생회보에 비해 휠씬 논조가 정치적이었고 한국의 독립을 강조하는 기사가 많았다. 당시로선 꽤 많은 4000부가 배포됐고 대상도 미국 정치인과 외국 대사 언론기관 한인 지도자 등 다양했다. 그러나 재정난으로 창간 2년 만인 19444월 폐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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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보 발행지였던 맨하탄 22가

 

 

 

3호 한인신문으로 탄생한 삼일신보는 당시 이승만 계열의 동지회와 안창호 계열의 흥사단으로 분열(分裂) 양상을 보인 뉴욕 한인사회의 대동단결을 위한다는 취지로 순 한글 신문을 발행하게 되었다.

 

주요 발기인은 허정 장덕수 홍득수 신성구 송세인 이봉수 김양수 윤홍섭 김도연 최순주 서민호 등 컬럼비아대학 유학생을 주축(主軸)으로 구성되었다. 재정마련은 허정 윤홍섭 신성구 등이 담당했고, 신문 제작은 1923년 동아일보 창간의 일원이었던 장덕수가 주관했다. 장덕수는 국문활자를 구하기 위해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에게 부탁하여 우송받았다.

 

삼일신보의 영문제호는 ‘The Korean Nationalist Weekly’로 매주 4면씩 발행되었다. 운영진은 사장에 허정, 재무 홍득수, 서기 윤주관(尹周觀)과 영업부장 안택수(安澤洙)였고, 편집부 김도연(金度演) 김양수 이동제(李東濟) 윤치영(尹致暎)이 참여하고, 고문은 이승만(李承晩) 서재필(徐載弼)이 맡았다.

 

1930228일자(88) <본보의 주의주장>에서는 우리 한민족의 자유독립과 노동대중의 경제적 해방과 세계열민족과의 공존공명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 전민족의 혁명적 세력을 총집중하며, 우리 전민중의 사회생활을 배양·조직하며, 세계 각 민족의 자결에 의한 연맹의 촉성을 기함에 발간 목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기사내용은 미국 한인사회 소식과 재미 한인들의 동정, 국내 각지의 소식을 비롯하여 <삼일논단사설란, 재정 경제 세계동정 연재소설 등의 문예물도 실었다.

 

그러나 창간 주역이었던 허정이 구미위원부 활동을 돕기 위해 워싱턴으로 가면서, 경영책임을 이기붕에게 넘긴데 이어 1929년 장덕수마저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운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이기붕은 재정을 감당하지 못하였고, 창간 2년만인 19306월 폐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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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보 발행지였던 맨하탄 22가

 

삼일신보의 발행지였던 로워맨하탄 2243번지엔 미색의 2층 현대식 건물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아담한 희색 건물엔 Dig Inn이라는 상호가 보였다. 식당 체인점이었다.

 

힘겨운 이민생활속에 십시일반 독립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보내던 한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삼일신보 발행지 역시 아무런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국권을 강탈달한 약소국의 민초들일망정 이역만리에서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모습을 그리니 가슴 한구석이 시큰해진다. 무심한 차량들은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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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기획취재 뉴욕 항일 사적지 순례’ <> (20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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