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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운동가 이행우선생 추도식

글쓴이 : 뉴스로 날짜 : 2021-11-03 (수) 22:26:58

Newsroh=륜광輪光 newsroh@gmail.com



 

photo by 이기묘 AOK한국 상임대표

 

한국과 미국에서 조국의 민주화와 평화, 통일을 위해 평생 헌신(獻身)한 이행우 선생 추도식이 3일 한국 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렸다.


지난 10월 16일 향년 90세로 별세한 이행우 선생 추도식은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의 주최로 많은 통일운동가들이 자리한 가운데 경건한 분위기속에 진행됐다. 이창복 6.15남측위상임대표의장과 신필영 6.15미국위대표위원장의 추도사가 있었고 6.15남측위 이연희 대변인이 고인의 약력을 전했다

 

또한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프랭크 자누치 맨스필드재단 대표, 김홍인 서울종교친우회 퀘이커모임 서기, 척 에써 필라델피아퀘이커 평화운동가, 서혁교 미주동포전국협(NAKA) 회장, 이해학 겨레살림공동체 이사장이 추도사를 했고 윤선애 가수의 추모공연으로 끝을 맺었다.


 


전북 익산 태생의 선생은 서울대 문리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와 한양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1968년 유학차 도미했다. 2013년 귀국할 때까지 45년간 미국에서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몸을 바쳤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핍박받는 양심수들을 구조하기 위해 결성한 ‘한국수난자가족돕기회’에 참여한 선생은 전두환정권 시기인 1981~87년 제7~12대 회장으로 봉사했다.

 

선생은 1960년 함석헌 선생 등과 함께 ‘퀘이커 서울모임’을 창립한 이래 줄곧 퀘이커 평화주의를 실천해왔다. 미국퀘이커봉사회(AFSC)에 가입한 선생은 1982년부터 40여 차례 북을 방문하며 동포사회와의 협력과 연대, 북미 관계 개선에 앞장섰다. 1993년에는 ‘고난의 행군’ 중이던 ‘미국퀘이커봉사회 프로그램’을 통해 북녘 농업 지원과 인적 교류를 추진했으며 이 프로그램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는 광복회가 ‘8·15’ 75돌을 기념해 제정한 ‘제1회 광복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신필영 6.15미국위 대표위원장은 이날 정연진 AOK상임대표가 대독한 추도사(追悼辭)에서 선생과의 첫 만남을 회고하며 “1985년 10월 통일모임에서 만난 것을 인연으로 미국 워싱턴을 중심으로 서울로 평양으로 거침없이 훨훨 나르며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조국의 하나 됨을 위해 호형호제(呼兄呼弟) 하며 손에 손잡고 뛰고 또 뛰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숨 가쁘게 뛰었던 그 길, 또 많은 후배들이 혼신 다해 뛰고 있으니 반드시 그 날이 올 터입니다. 그 날까지 그곳에서 편히 쉬십시오”라고 애도했다.


 


이해학 목사(겨레살림공동체 이사장)는 추도말씀에서 “태평양은 선생님의 강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의 후유증으로 극심한 가난과 혼란의 시절, 공병우 타자기 하나 덜렁 들고 태평양을 건너가시어 미국에서 컴퓨터 전문 프로그래머로 45년을 살다 연어처럼 고국으로 돌아와 이제는 영원한 은하수의 강을 건너셨습니다. 선생님은 다른 운동가들과는 결이 다른 삶을 사셨습니다. 주변에 숱한 활동가들이 민주화와 통일에 열정을 쏟다가 지치고 타락해버리나 선생님은 물 흐르듯 꾸준한 일관성으로, 퀘이커인으로서 중심을 잃지 않고 열정을 다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이행우 선생님! 별들을 밟으며 은하수의 강을 건너 신나게 가십시오. 저희들도 늘 선생님을 기억하며 오늘을 기쁘게 살겠습니다”고 애도해 심금을 울렸다.



 

재불평화운동가 김정희 민족의집 대표는 “이행우선생님은 2014년부터 저의 멘토이셨다. 당신께서 미국에 가시게 된일, 민주화운동때 하신일 그리고 통일운동 하시면서 느끼신일 저와 세대는 다르지만 우리민족 하나되기에 열정을 쏟아부으신 많은 활동을 직접 들었다”고 돌이켰다.

 

정연진 AOK 상임대표는 “미국의 퀘이커봉사회는 지난 40년간 대북활동 인도적 교류,ᆞ 농업지원등 줄기찬 활동을 했고 AOK도 창립멤버인 코리아 피스 네트워크의 주요단체로 재미평화 활동을 해왔다. 퀘이커봉사회의 대북활동이 故 이행우 선생님 작품이라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고 머리를 숙였다.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

 

 

<꼬리뉴스>

 

신필영 6.15미국위 대표위원장 추도사

 

제가 이행우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85년 10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가을, 生面不知(생면부지)인 이행우 선생의 招請狀(초청장)을 받아 본 날이기도 합니다.

초청장 내용은 함석헌 선생의 基調演說(기조연설)로 시작되는 統一(통일)에 관련한 모임이었습니다.

북을 다녀 온 政治學者(정치학자)들이 중심이 된 討論 形式(토론 형식)으로, 2박 3일 일정의 모임이었습니다.

이 행사는 퀘이커 財團 後援(재단 후원)으로 이행우 선생님이 마련한 것이라는 것을 후에 알았습니다.

워싱턴의 노광욱 박사님의 推薦(추천)으로 이행우 선생과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가을에 만나서, 이 가을에 헤어져야 하는 이행우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만나서 헤어져야 하는 긴긴 歲月(세월)을 함께한 事緣(사연)을 어찌 다 이야기하겠습니까.

 

미국 워싱턴을 중심으로 하여 서울로 평양으로 거침없이 훨훨 나르니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조국의 하나 됨을 위해 呼兄呼弟(호형호제) 하며 손에 손잡고 뛰고 또 뛰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숨 가쁘게 뛰었던 그 길,

또 많은 후배들이 혼신 다해 뛰고 있으니 반드시 그 날이 올 터입니다.

 

그 날까지 그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삼가 冥福(명복)을 비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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