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연인’ 노천희씨 출간
<회향의 인간학적 원리–자유와 투쟁>
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l.com

서슬 퍼런 박정희독재정권 시절이었다. 1974년 경북대 의대 본과 2년의 그는 박정희유신독재 철폐운동을 주도하다 제명후 강제징집(强制徵集)돼 혹독한 군생활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제대 4개월을 남기고 폭염에 완전군장을 한채 구보훈련을 하다 쓰러져 유명을 달리 하고 말았다. 현승효. 그에겐 불멸의 사랑이 있었다. 28개월간 수첩에 빽빽이 적어놓은 그립고 애달픈 사연들은 훗날 ‘영원한 연인’ 노천희에 의해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로 탄생했다.
그리고 2021년, 사후 44년만에 놀라운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승효 유고집 <회향의 인간학적 원리 – 자유와 투쟁>(도서출판 모임). 철학과 예술 종교 사상서들을 읽고 자신의 분석과 비판을 더해 완성한 사상서이다. 스물일곱살 청년이 지은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원숙한 깊이를 드러낸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구타와 기합이 일상적인 열악한 시절 사병으로 복무하며 자투리시간에 책을 읽고 수첩에 글을 틈틈이 적은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내 품속엔 항상 책이 간직되어 있어 어디서나 꺼낼 수 있다. 성경도 있고 철학책도 있다. 그래서 군대에서 나의 배는 항상 불룩하다. 변소 갈 때나 어딜 갈 때나 1분의 짬만 있어도 나는 그놈을 꺼내 본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정도의 집념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의 집착이다. 하긴 그런 정신으로 연앨 했지. 딴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얼마나 미울까. 나는 안다. 그러나 나에겐 책을 읽고 생각할 시간이 그토록 절실하니 어쩌랴. 하나님 도와주소.”
“아! 내가 설 땅은 과연 어디냐? 펑펑 울고 싶고 가슴을 찢고 싶은 충동이 자꾸만 인다. 나는 싸우리라 그리고 입술을 악물고 버티리라. 어딜 가도 이 군대란 곳에서 내가 설 자린 없다. 두 놈에게 동시에 책을 본다고 욕을 얻어먹었다. 나의 욕망 때문에 나는 부단히 싸우고 있다. 책, 책이다. 나도 저들처럼 간단히 생각 하고 쉽게 살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그저 권태로우면 귓밥이나 후비면서 지낼 줄 아는 저런 지혜가 있었더라면. 이것은 나에게 형벌이 되어 밀려온다. 느긋한 배짱만이 나를 지켜줄 수 있다. 적어도 여기선 말이다. 마이동풍이 되는 거다.
식기를 닦으며 발이 시려 뛰면서 닦았다. 돌아오면 또 심부름. 승효야! 승효야! 이 새끼야! 이것 가져 와. ~~에 가봐! 밥 가져와! 씨팔 놈들 그러다 신경질이 나면 모포를 널어 버린다. 예의 모포 감시다. 뱃속에 있는 책을 꺼내어 7시간을 떨며 읽었다. 그러다 문득 이 짓을 해서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애써 머리를 털어버렸다.”
“오늘 무덤가에 앉았다가 갑자기 돈오(頓悟)했소. 돈오란 급작스러운 까달음을 말하는 불가(佛家)의 말이오. 어제와 오늘 한가 지씩 깨달았는데 만법일여(萬法一如)란 것이 정말 진리이듯이 모든 생각이 정당한 귀결을 얻었소. 나 자신도 신비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오. 내일부터는 실존철학에서 나의 생각을 비교 검토해 보려고 하고 있소. 지금까지 인식론과 유물론 그리고 기독교 불교에서 흐르는 주류는 모두 나의 생각 속에 포함되는 것이었다오. 이제 예술적 진행과 실존주의만 포섭되면 끝이 나는 것이오, 시간 봐서 동양철학도 검토할 생각이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어떤 때는 망연하여 어쩔 줄을 모를 때가 계속되지만 모든 진리 가 일체임은 파악하게 되었소. 어제 오늘은 큰 수확이 있었고 나의 출발이 정당했음을 확인하게 되었소. 드디어 대망의 변증론과 3단계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었다오.”
“나에게는 하나의 희망이 있다. 이것은 많은 독서와 인생 경험을 토대로 내 나이 30이 되기 전에 하나의 이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책으로 묶고 싶다는 것. 나는 수많은 독서로 영원성 속에서 사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노야와 나는 영원히 살아야 한다. 그것은 인간 정신의 재발견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나는 이 일만은 꼭 성취시키고 싶다. 그것도 20대에 소박하나 꺼지지 않는 정신의 불멸을 남기고 싶다.”
류종열(철학아카데미)은 ‘현승효 그에게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보낸다’ 글에서 “현승효! 그는 75년에서 77년 사이 군대에서 일기를 쓰고 책을 읽었고, 자기 사상을 정리하였다. 인혁당 사건 사형이 알려지고, 긴급조치의 압제와 억압으로 의문사가 횡횡하던 음산한 시절, 강제 징집과 같은 군 생활이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시기에 군대에서 사상을 정리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신념, 그리고 끝없는 열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증표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무려 대학노트 10권에 달하는 현승효의 유고를 수년에 걸쳐 꼼꼼이 정리하고 편집한 홍승용(현대사상연구소)은 ‘인류가 추구할 미래사회’ 글에서 “40여 년 전, 유신 반대 투쟁을 하던 경북대학교 의대 중퇴생이 강제 징집된 후 군대생활을 하면서, 칸트의 선험철학과 헤겔의 변증법, 실존주의와 맑스주의, 기독교와 불교사상 등을 종합하여 인류가 추구할 만한 미래사회의 모습을 체계적으로 구상해냈다면, 이는 주목할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현승효, 그는 꽃다운 나이에 무한한 가능성을 안은 채 유신독재폭력의 희생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해방투쟁에 ‘목숨을 바친 세계의 자유시민’과 ‘독재를 향해 지금도 선전을 포고하는’ ‘자랑스러운 동료들’에게 바친 회향의 인간학적 원리: 자유와 투쟁은 대안질서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읽고 되새길 만한 역작이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현승효 사상의 중심에는 회향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말 ‘회향’은 중의적이다. 한자로는 불교와 유교에서 각각 ‘回向’과 ‘回鄕’으로 달리 쓴다. 그 의미도 세부적으로는 다르다. 그러나 둘 다 근본적으로 자신이 얻은 것을 다시 베푼다는 뜻에서 상통한다. 본서에서 ‘회향’은 말 그대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때 고향은 인류가 오늘날과 같이 갈등과 불행에 빠지기 이전의 상태를 뜻한다. 에덴동산이나 원시공산사회가 그런 상태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현들이다”라고 소개했다.
현승효의 꿈은 44년이 지나 그의 영원한 연인 노천희에 의헤 이루어졌다. 노천희는 ‘이봐요, 당신 책 이제 나온대 44년 걸렸어’라는 글에서 이렇게 회고(回顧)했다.
“나이 30이 되기 전에 하나의 이치를 발견하고 책으로 묶고 싶다더니 생각이 잘 안 풀릴 때는 답답하여 자신의 몸을 찢고 싶도록 괴롭다가 생각이 풀리면 희열에 몸을 떨며 썼다더니. 그 책이 나온다 한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강제징집 되기 전부터 읽고 사유하여 군에서도 온갖 핍박 받으며 계속 하다가 76년 4월에 쓰기 시작하여 77년 5월 말까지 쓰고는 그 몸서리나게 추운 겨울들도 다 보내고 제대 4개월 앞둔 6월 29일 안 가도 될 구보 훈련을 불쌍한 병사들과 함께 뛰겠다며 폭염에 30Kg 완전군장 10km, 거의 골인 지점에 다 와서 오후 4시에 쓰러져 말 한마디 못한 채 30일 새벽 1시에 숨이 멎었단다. 그 해 여름, 찌는 듯한 방 안에 콕 처박혀 원고지에 깨알 같은 글자를 죽을힘을 다해 옮겨 쓰기 시작한 후 44년이 되었다. 원본 노트 1권과 2권, 3권 앞 부문까지 이 꽉 깨물고 독한 마음 내어 200자 원고지 1279매까지 쓰다가 진이 빠져버렸다. 책 출판을 위한 첫 걸음이었다.”
“이봐요, 승효씨! 이 많은 걸 가만히 앉아 그냥 베끼기도 어렵겠구만 어떻게 졸병하면서 다 생각해내고 썼어? 일치, 불일치, 일치 이거 하나는 내가 다부지게 자기가 말 한대로 해서 갈등이 있을 때마다 합일을 이루고 기뻐할 수 있었어. 죽을 때까지 읽어서 회향을 완성할께.”
“내가 온몸과 영혼으로 체험한 현승효라는 남자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과, 그 사랑과, 그 모든 것으로 인해 세월이 흘러갈수록 더 진한 감동을 주는 사람이어서 나는 내 죽는 날까 지 자꾸 말하여 지상에 그 고귀한 사람의 유전자(遺傳子)를 퍼뜨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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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내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2020.5.28.)
노천희씨의30년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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