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속으로〉 10월 8일

AI 생성 이미지
우리 민족사에서 10월 8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 아래 일본군과 공사관원, 영사경찰, 일본인 낭인 등이 경복궁을 습격해 조선의 왕비를 살해했습니다. 훗날 명성황후로 추존된 왕후 민씨를 궁궐 한복판에서 시해한 을미사변(乙未事變)입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이 노골화되던 시기에 벌어진 이 참혹한 사건은 우리 민족에게 지울 수 없는 치욕과 분노를 남겼고, 전국적인 항일 의병운동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날의 비극만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총성이 울리던 땅에서 훗날 판문점에 대화의 자리가 만들어졌고, 박경리는 한 시대의 상처와 민중의 삶을 《토지》라는 거대한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10월 8일은 그래서 기억해야 할 역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기억을 어떻게 미래로 이어갈 것인지 묻는 날입니다.
[역사속의 주요 장면]
1895년 —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을 짓밟다, 을미사변
새벽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楼)의 지휘 아래 일본군 수비대와 일본 공사관원·영사경찰·낭인 등이 경복궁에 난입했습니다. 조선의 정궁을 무력으로 장악한 이들은 왕후 민씨를 찾아내 살해했고, 시신(屍身)을 궁궐 밖으로 옮겨 불태웠습니다. 사건 직후 일본 측은 책임을 은폐하고 왜곡하려 했으며, 일본에서 열린 재판에서도 관련자들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풀려났습니다. 을미사변은 단순한 궁중 암살이 아니라 일본의 조선 침략 과정에서 벌어진 국가적 성격의 폭력 사건으로 우리 근대사의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1912년 — 제1차 발칸전쟁 발발
몬테네그로가 오스만제국에 선전포고하면서 제1차 발칸전쟁이 시작됐습니다. 곧 세르비아·불가리아·그리스 등이 참전하면서 발칸반도 전체가 전쟁터가 됐습니다. 민족과 영토, 제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한 이 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유럽의 불안정성을 더욱 키웠습니다.
1950년 — 유엔군, 38선을 넘어 북으로
전세가 뒤집힌 한국전쟁에서 한국군은 이미 10월 1일 38선을 넘어 북진(北進)하고 있었습니다. 10월 7일 유엔총회가 한반도의 통일·독립·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결의를 채택하면서 유엔군의 북진이 본격화됐고, 다음 날인 10월 8일 중국 지도부는 한국전쟁 참전을 공식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의 방향이 다시 크게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1951년 — 판문점, 전쟁 속 대화의 장소가 되다
휴전회담은 처음 개성에서 시작됐지만 회담장소의 중립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새로운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10월 7일 공산군 측이 널문리 주막마을을 제안했고, 10월 8일 유엔군 측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판문점이 새로운 회담장소로 결정됐습니다. 훗날 판문점은 정전협정뿐 아니라 남북대화와 만남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94년 — 박경리, 《토지》를 완간하다
박경리는 1969년 연재를 시작한 대하소설 《토지》를 26년에 걸친 집필 끝에 완성했습니다. 경남 하동 평사리에서 간도와 서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물의 삶을 통해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의 격동(激動)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한 작가의 오랜 집념이 한민족의 삶과 역사를 거대한 문학적 기록으로 남긴 순간이었습니다.
[오늘의 탄생인물]
나인협(1872~1951)
천도교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로,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습니다. 동학에서 출발해 민중 계몽과 포교에 힘썼으며, 독립선언에 참여한 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追敍)됐습니다.
후안 페론(Juan Perón, 1895~1974)
아르헨티나의 군인 출신 정치가이자 대통령으로, 노동자 계층을 기반으로 한 페론주의를 형성했습니다. 아르헨티나 현대 정치에 강력한 흔적을 남긴 인물로, 그의 정치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토 바르부르크(Otto Warburg, 1883~1970)
독일의 생화학자이자 의사로 세포의 호흡과 에너지 대사를 연구해 193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암세포의 대사에 관한 연구는 현대 생명과학과 암 연구의 중요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타계인물]
명성황후(1851~1895)
조선 제26대 왕 고종의 왕비로, 개항 이후 격변하던 국제정세 속에서 조선 왕실과 국가의 생존을 둘러싼 정치적 선택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1895년 10월 8일 경복궁에서 일본군과 낭인 등에 의해 시해(弑害)됐으며, 훗날 대한제국 수립과 함께 명성황후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을미사변은 한국 근대사의 대표적인 국권침탈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클레멘트 애틀리(Clement Attlee, 1883~1967)
영국 노동당 정치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총리를 지냈습니다. 전후 영국에서 국민보건서비스(NHS)를 비롯한 복지국가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전쟁 이후 국가가 국민의 삶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라는 문제에 큰 흔적을 남겼습니다.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
서독 총리로 재임하며 동방정책(Ostpolitik)을 추진해 동서독과 동유럽 사이의 화해와 관계 개선에 힘썼습니다. 197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그는 냉전의 벽 앞에서 대결보다 대화를 선택한 정치인으로 기억됩니다. 그의 정치가 훗날 독일 통일로 이어지는 화해의 토대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오늘의 한마디]
10월 8일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1895년 이날, 일본의 군인과 공사관 관계자, 낭인들이 경복궁을 짓밟고 조선의 왕비를 살해했습니다. 한 나라의 궁궐이 외세의 폭력에 유린(蹂躪)당했고, 국권을 빼앗겨가던 민족의 분노는 전국으로 번져갔습니다. 그 기억은 을미의병으로 이어졌고, 훗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역사의 한 줄기가 되었습니다.
치욕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는 그런 역사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잊지 않는 것이 역사의 시작이라면, 그 기억을 평화와 자주, 그리고 더 나은 미래로 이어가는 것이 역사의 책임입니다.
10월 8일, 우리는 경복궁에서 쓰러진 한 사람을 기억하는 동시에 그날 짓밟힌 우리 민족의 자존과 국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어느 나라의 궁궐도, 어느 민족의 존엄도 외세의 총칼 앞에 무너지지 않는 세상을 생각합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