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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집에서 이뤄진 37년만의 해후

양원진 선생과 장명자 목사의 애틋한 만남
글쓴이 : 륜광 날짜 : 2026-10-23 (금) 19:39:34

양원진 선생과 장명자 목사의 애틋한 만남

 

Newsroh=륜광輪光 newsroh@gmail.com

 


 

검던 머리에는 흰 서리가 내리고, 힘차던 걸음은 어느새 조심스러워졌다. 그러나 37년의 세월이 흘러도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얼굴이 있다. 살아생전 한 번은 볼 수 있을까. 양원진 선생(97)과 장명자 목사(84). 그리움으로만 남아 있던 두 사람이 10월 21일, 서울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마침내 서로를 마주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처음엔 쑥스러운 웃음만 오갔다. 한때 서로의 삶에 따뜻한 온기를 나누었던 두 사람. 말없이 흐른 세월이 잠시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었지만,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하고 옛 기억을 하나둘 꺼내자 서서히 말문도 열렸다.

 

비전향장기수 양원진 선생과 장명자 목사의 인연은 광주교도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주에서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권사를 거쳐 목회자의 길을 걸은 장 목사는 교도소를 꾸준히 찾아 수감자들에게 선교 봉사를 했다. 양 선생을 비롯해 강담·이광근 선생 등 장기수들을 돕는 후원 활동도 이어졌다. 갇힌 이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따뜻한 손길을 내밀던 시절이었다.



 

1988년 성탄절 특사(特赦)로 출옥한 양 선생은 장 목사의 집에서 다른 장기수 선생들과 함께 1년여를 지냈다. 그곳에서 양 선생은 가족과도 같은 정을 나누었다. 장 목사의 어머니는 양 선생을 정말 아꼈고 딸에게 사위로 맞으면 좋겠다는 뜻까지 내비쳤다.

 

그러나 인연은 뜻하지 않게 멀어졌다. 양 선생이 다친 손목을 치료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면서 연락이 끊겼고,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세월이 흘렀다.


전쟁과 분단이 갈라놓은 삶, 끝내 남은 그리움

 



1929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난 양원진 선생의 삶은 한국전쟁과 분단의 질곡(桎梏) 속에 놓여 있었다. 대학 재학 중 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에 입대했고, 정전 이후 북한에서 생활하다 1959년 대남 공작원으로 남파됐다. 이듬해 체포돼 29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아내와도 헤어졌다. 1966년 수감 중 작성한 강제 전향서는 훗날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의 소망을 가로막는 족쇄가 됐다.

 

그는 2023년 언론 인터뷰에서 전쟁과 분단이 없었다면 어머니를 모시고 자녀 여섯 명쯤 낳아 오순도순 살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려던 소박한 꿈마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멀어져 간 것이다.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살아왔지만, 마음 한편에는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장 목사가 먼저 양 선생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생전에 꼭 한 번 얼굴을 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그 소망을 전해 들은 양심수후원회 관계자들이 뜻을 모았고, 마침내 만남이 성사됐다.



 

고령에 몸이 불편한 장 목사를 광주에서부터 직접 차에 태워 서울까지 모셔온 이는 양심수후원회 박동기 광주소장이었다. 먼 길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그의 동행이 없었다면 이번 해후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날 양심수후원회 측은 환한 꽃다발로 두 사람을 반겼다. 정숙항 운영위원과 염유경 요양보호사는 정갈한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 따뜻한 자리를 보탰다. 만남의 집엔 동료 비전향장기수 양원진·양희철·김영식·김영승 선생을 비롯해 김혜순 회장, 이정태 부회장, 정숙항·김태임 운영위원, 이기묘 AOK 고문도 함께했다.

 



양희철 선생은 광주교도소 시절 장 목사를 여러 차례 만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찾아올 때마다 맛있는 찐빵을 챙겨주었던 고마운 분이었다고 술회했다.

 



두 사람의 재회를 지켜본 이기묘 대표는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서로를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해 오셨다는 사실이 곁에서 지켜보는 저희에게도 참 뭉클하게 다가왔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먼 길을 오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박동기 소장님과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두 분이 앞으로도 건강하게 지내시며 자주 안부를 나누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상 photo by 이기묘


전쟁과 분단은 사람들의 삶을 갈라놓고 수많은 인연(因緣)을 먼 곳에 묶어두었다. 하지만 기억하고 기다리는 마음까지 빼앗지는 못했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두 사람은 ‘만나자 이별’이라며 서로의 건강을 걱정했다. 37년 전 미처 나누지 못했던 말들은 아직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곡 연락하며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 후 두 팔을 벌려 서로를 힘껏 끌어안았다. 이날 만남의 집은 유난히 환했다.

 


photo by 김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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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98세 최고령장기수 할머니의 설날 해후 (2021.2.13.)

낙성대 '만남의집'에 모인 장기수선생들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m0604&wr_id=1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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