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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선의 김재규복권소설
1941년 음력 9월 보름 경기도 평택군 현덕면 도대리 문곡 글갱이에서 이봉헌 이은혜의 셋째로 태어났다. 현덕초등 안중중 동도공고를 거쳐 평택대 감신대에서 수학한후 나사렛대학을 졸업했다. 목사 부흥사로 활동하다가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민목회를 하면서 독자투고를 쓰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써본 “글갱이 사람들”이 단편소설로 당선되는 바람에 얼떨결에 등단작가가 됐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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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형장에서도 놓지 않은 염주

김재규의 유언
글쓴이 : 이계선 날짜 : 2017-06-01 (목) 14:30:03

 

난리통에 3심인 대법원항소심을 접수한 대법원은 1980년 5월 20일 확정판결을 내렸다.

 

“김재규 사형!“

 

원심대로 였다.

 

전원 합의제로 결정하는 12명의 대법원 판사는 아래와 같다.

 

대법원장 이영섭

대법관 주재황 안병수 이일규 김용철 유태흥 양병호 임항준 김윤행 민문기 서윤 홍 정태원

 

그래도 용기있는 대법관들이 있어 소수의견을 낸다.

 

“김재규는 내란목적 살인 아니라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렀을 뿐입니다. 내란목적이라면 세력을 규합하여 오래전에 모의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10.26은 거사 30분전에야 5명의 부하들에게 알렸을 뿐입니다. 민주대의에 흥분하여 저지른 우발적 살인이지요. 우발적 살인은 사형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소수의견을 내고 그해 8월에 쫓겨난다. 군부의 총검 위협에도 소신껏 행동했던 용기 있는 6인의 대법관들.

 

양병호 임항준 김윤행 민문기 서윤홍 정태원

 

아깝다. 1명만 더 있어도 과반을 넘는 건데. 사람들은 유태흥을 아쉬워했다. 10년전 사법파동때 유태흥판사는 정의의 선봉장이었다. 그런 유태흥이 빠졌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유태흥도변한 모양이다. 덕분에 유태흥은 전두환의 눈에 들어 후일 대법원장까지 오른다.

 

“김대중씨 마저 잡아넣었으니 전두환은 겁날게 없겠지? 내가 이 땅을 떠날 시간이 가까워 오는구나”

 

김재규는 중얼거렸다.

 

5월22일. 김재규가 사형당하기 이틀 전 이었다. 가족들이 모친을 모시고 면회를 왔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면회였다. 어머니는 수감이후 첫 면회였다. 어머니는 품속에서 염주를 꺼내 아들에게 주었다. 교도소측은 이 염주가 혹시 있을지 모를 자살기도에 이용될 것을 우려, 압수하려 했다. 김재규는 빼앗듯이 받아 움켜쥐었다.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까지 김재규는 이 염주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국부를 죽인자가 살기를 원하느냐? 마음을 닦아라”

 

곧 죽게 되는 자식 앞에서 어머니는 의연했다.

 

“어머니의 훈계가 사바세계를 떠나게 되는 소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었다. 김재규는 모포위에 어머니를 앉혀드린 후 세번 큰절을 올렸다. 모두들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김재규는 울고있는 부인을 위로했다.

 

“금강경에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했소. 내 이미 마음을 비웠으니 모든 걸 넉넉히 받아드리오. 모쪼록 몸 건강하고 부하들 가족들을 돌봐주시오. 부탁이 하나 더 있어요. 나 죽거들랑 고향선산에 묻되 사육신 묘처럼 6인묘로 만들어 주시오. 내 오른쪽에는 박선호대령묘를 왼족에는 박흥주대령묘를 만들어줘요. 뒤로는 병풍처럼 이기주 유성옥 김태원의 묘를 만들어주고...”

 

김항규가 울먹였다.

 

“형님, 저는 이미 전두환에게 회사와 재산을 모두 빼앗겨 버렸습니다. 형님께서 사형당하시면 장례 지내드리고 그날로 출가하여 산속으로 들어가 중이 되려고 합니다. 10년 정진하여 득도하면 스님이 되어 목탁을 두드리고 염주를 굴리면서 남은여생을 형님과 형님을 따르다 간 부하들의 명복을 빌면서 지내겠습니다”


 

김재규가 해탈한 고승처럼 말했다.

 

“내 자네에게 법명을 하나 지어주겠네. 혜원(慧圓)으로 하게. 원래는 원수를 은혜로 갚는다는 뜻인 혜원(惠怨)인데 득도하여 무공의 경지에 이르러 혜원(慧圓)스님이 되라는 거지. 나와 내 부하들만 위하여 빌지 말고 박정희대통령 차지철경호실장 그리고 10.26에 회생된 모든 영혼들을 위하여 명복을 빌어주게”

 

여동생 김단희도 울며 말했다.

 

“오라버니가 사형당하시면 저는 미국으로 건너가 오라버니의 명예회복운동을 벌이겠습니다. 뉴욕에는 뜻을 같이하는 종친들과 동지들이 꽤 많이 있어요”

 

“죽기전에 어머니를 만나뵈니 난 행복하오. 내 거사가 자랑스럽소. 가족과 역사에 한점 부끄러움도 없구려”

 

면회시간이 끝나자 김재규는 뒤돌아서 감방안으로 들어갔다. 가족들은 그가 들어간 교도소 문을 향해 10여분간 소리없는 합장을 올리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다음날 5월 23일 아침일찍 안동일변호사가 찾아왔다. 안동일은 5.18광주민주항쟁이야기를 꺼냈다.

 

(5.18광주민주항쟁이 비극으로 끝났다. 김재규의 사형집행이 가까웠다. 오늘 면회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안동일은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김재규의 모습은 가벼웠다. 내일 소풍을 떠나는 소년처럼 보였다. 김재규가 꿈 이야기를 꺼냈다.

 

“간밤에 꿈을 꿨습니다. 내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데 무지개를 넘으니

 

꽃밭이 나타나는 거예요. 꽃밭에 내리는데 박정희대통령이 손을 흔들면서 환영합디다.

 

’어서 오게. 내 자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네‘.

 

내가 대통령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형님, 미안합니다. 내가 궁정동에서 형님한테 총질한거 용서해주이소‘ 했더니,

 

“아따, 이사람 별걸 다 기억하네. 자네 유치원 시절에 발가벗고 치고 때린 불알싸 움 한걸 갖고 어른이 돼서 시비하는 사람 봤나? 죽음의 세계에서 보면 세상권세 부귀영화가 다 유치원장난처럼 유치한거야. 죽고 나면 하룻밤 꿈처럼 허무하게 되고 마는데 그걸 해먹겠다고 독재하고 죽이고 싸웠으니...‘

너무 반갑고 고마워서 우리 둘은 서로 부등켜 앉고 엉엉 울었습니다. 한참 울다 깨어보니 꿈 이었어요“

 

(김재규장군이 곧 사형당하여 죽을 꿈을 꿨구나)

 

안동일은 서글펐다. 그런데 김재규는 유쾌하게 말을 이어갔다.

 

“안변호사, 난 죽으면 박정희대통령을 만나 용서를 빌고 형님 아우하면서 옛날 고향시절처럼 지낼겁니다. 안동일변호사께 부탁이 있어요. 김재규의 후손들과 박정희의 후손들이 화해하도록 도와주십시오. 민주화세력과 개발독재세력이 화해하는 겁니다. 서로 충돌하고 싸웠지만 지나고 나면 어쩔수 없는 과정이었습니다. 서로 화해 해야지요. 그래야 민주대국으로 가는 조국의 앞날이 밝아지겠지요”

 

“김장군은 과연 대인이시군요. 해탈한 도승의 원수사랑이십니다“

 

<계속>

 

* '김재규 복권소설'의 소설같은 사연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lks&wr_id=3

 

* 등촌이계선목사는 광야신인문학상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독자들은 등촌을 영혼의 샘물을 퍼 올리는 향토문학가라고 부른다. 저서로 ‘멀고먼 알라바마’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예수쟁이 김삿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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