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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북한’이란 나라는 없다

글쓴이 : 김중산 날짜 : 2021-06-09 (수) 03:50:35


   

우리가 관계 맺으려 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상대방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쓴 <갈라진 마음들> 분단의 사회심리학(창비)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제가 중국에서 북조선 식당을 찾아가 여기 북한 식당 맞죠라고 묻자 아무도 대답을 안 하더라고요. 30~40초 정도 침묵이 흘렀을까. ‘여기는 북조선 식당입니다.’라고 답하더군요. 망치로 얻어맞은 거 같았죠. 우리가 관계 맺으려 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상대방을 제대로 불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1011일자 경향신문이 보도한 기사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사실 지구상에 북한이란 공식 국호를 가진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국가의 정통성과 연관된 존엄한 남의 나라 이름을 멋대로 지어 부르는 지극히 무례하고 몰상식한 짓을 저질러 왔던 것이다. 솔직히 나는 칼럼을 쓸 때마다 북에 대한 호칭을 두고 내심 갈등하고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의 관례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북한이라 표기해 온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비록 만시지탄(晩時之歎)이나 향후 북에 대한 호칭을 제대로 표기할 것을 다짐한다. 이제 더이상 내 사전에 북한이란 나라는 없다.

 

한국 정부는 물론 역대 미국 정부도 북조선을 North Korea (북한)라고 불러 왔다. 미국 정부가 북한을 DPRK(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라고 쓴 전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제네바 기본합의(10/21/1994)와 싱가포르 공동성명(06/12/2018)DPRK로 공식 명기된 바 있다. 그랬던 것을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까지 역대 미국 정부가 North Korea라고 불러온 영문 명칭을 DPRK로 정리하자 로동신문은 즉각 우리의 국호는 인민의 영원한 긍지이고 높은 영예라면서 국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환영의 뜻을 시사했다.

 

앞으로도 미국이 지속적으로 북한을 북조선으로 호칭할지 아니면 혼용할지 여부는 미지수지만 한국 정부는 그와 상관없이 북한 대신 반드시 북조선으로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설령 다른 나라가 북조선을 북한이라고 부르더라도 한국 만큼은 솔선해 북조선이라 부름으로써 북조선 인민의 긍지와 영예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이 규정했듯 정식 국호를 불러주는 건 상대를 정식 국가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뜻이라면 그렇게 불러주는 데 망설이거나 주저할 이유가 없다.

 

<영국 외교관 아내가 본 평양> 실제로 북조선에서 2년간 거주한 영국 외교관 부인 린지 밀러란 여인이 귀국해 낸 책이다. 린지 밀러는 책에 이렇게 썼다. “비록 국경은 닫혔지만 북조선에 대한 마음까지 닫아서는 안 된다. 지금도 북조선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어 북조선 인민들은 아주 친절하고 예의도 발랐다.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여전히 그립다고 말했다. 그녀가 말한 북녘 그곳에 살고 있는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은 바로 다름아닌 우리 동포 형제 자매들이다. 미국의 오랜 비인도적인 제재와 압박으로 북조선 인민들이 비록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그들의 심성만큼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선량하고 순박하다고 들었다. 북조선 인민들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본 린지 밀러가 여전히 그립다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중국 심양에서 접한 나 역시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

 

예기치 못한 트럼프 대통령의 북조선 여행금지령으로 인해 20179월 말 우리 일행은 예정된 북조선 방문을 포기하고 중국 동북 3성 일대를 여행했다. 심양을 출발해 단둥을 지나 압록강과 두만강변을 따라 연변을 거쳐 하얼빈역까지 들렀다. 장백산(우리 측 백두산) 천지에 올랐고 민족시인 윤동주 생가도 찾았다. 김좌진 등이 이끈 청산리대첩 전적지와 잔영만 남은 김일성 항일유격대 사령부도 방문했다. 하얼빈 역사(驛舍)는 마침 재건축 수준의 리모델링 공사 중이라 아쉽게도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찾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심양에서 체류하는 동안 우리 일행은 서탑 명주호텔에 머물면서 바로 근처에 있는 북조선 묘향산식당에 가서 주로 식사를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기침을 몹시 심하게 했다. 내가 우리 일행과 다른 손님들에게 폐를 끼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여성 봉사원이 생강차를 다려다 주었다. 그 다음날에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또 생강차를 내왔다. 그녀들은 생강차가 기침 해소에 좋다는 걸 어찌 알았을까. 아무튼 나는 생강차 덕에 더이상 기침을 하지 않게 됐다. 식당에 와서 밥 먹고 밥값만 잘 내고 가면 그만이지 손님이 기침을 심하게 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손님을 가족처럼 여기지 않고는 그럴 수 없다. 나는 그때 물보다 진한 피붙이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서둘러 떠나왔다. 그 때를 되돌아 볼수록 그저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런 마음과 함께 지금도 나는 청초하고 순박한 손녀뻘 봉사원들의 모습과 이름만은 오롯이 기억하고 있다. 순선, 선경, 금희, 혜경, 충심, 혜성, 효심. 머지 않아 우리 다시 만날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중산의 LA 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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