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식사랑방’ 위원들 추모

존경하옵는 박한식 교수님,
교수님께서 그토록 아끼시던 '사랑방' 식구들도 어제 전한 슬픈 소식에 유럽에서, 한국에서, 미전역에서 교수님을 그리워하며 사모님께로 돌아가시는 교수님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교수님의 삶은 그 자체로 거대한 한 폭의 평화를 향한 여정(旅程)입니다. 하얼빈에서 시작해 평양과 대구를 거쳐 미국에 이르기까지, 교수님의 발걸음은 또한 늘 경계를 허물고 다리를 놓는 여정이었습니다.
하얼빈에서 2살쯤 되었을 때에 못 먹어서 영양 실조로 죽었다고 거적에 말아 지게에 지고 공동묘지로 가다가 목숨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얘기하셨습니다. 그래서 교수님의 삶은 여벌(extra life)이라고 농담을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등소평을 만나고 아버님의 유언을 실현한 기적 같은 얘기를 기억합니다.
중국에서 시작한 이산가족 찾아주기 운동이 한국과 평양으로 확대되어 많은 분들의 한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카터와 클린턴, 그 거물들이 평양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던 것은 박한식이라는 단단하고 신뢰 깊은 평화의 다리가 있었기 때문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민족의 참화를 막아 낸 것입니다.
작년 사모님을 먼저 여의시고 텅 빈 자리를 힘 겨워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평생 평화를 외쳤지만, 정작 내 곁의 평화인 아내를 잃으니 참으로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그 인간적인 아픔을 저희들도 모두 아파하며 지켜보았습니다.
그 큰 상실감 속에서도 선생님을 버티게 한 것은 매월 만나는 사랑방 손님들이었습니다. 새벽 서너 시까지 잠을 잊고 줌 화면에 앉아 경청(敬聽) 하던 유럽의 손님들, 퇴근길 바쁜 걸음을 재촉하여 줌 시간에 맞춰 들어오던 미주 손님들 또 저 멀리 한국 일본 중국의 사랑방 손님들을 생각하며 선생님은 다시 "준비해야 해, 그들이 기다리고 있어" 하시었습니다.
교수님은 참으로 강인하게 사셨고, 승리하셨습니다. 평생을 바친 한반도 평화의 씨앗은 5대양 6대주에 펼쳐 있는 코리언들의 가슴 속에서 '사랑방'의 이름으로 계속해서 자라날 것입니다.
이제는 무거운 짐 다 내려놓으시고,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사모님 곁에서 평온히 쉬십시오. 두 분이 손잡고 저 높은 하늘나라에서 그렇게 원하셨던 자주적이고 평화로운 통일된 한반도의 탄생을 지켜봐 주시고 격려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존경하는 박한식 교수님, 당신의 제자여서 저희들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고이 잠드소서.
2026년 1월 23일
박한식사랑방 준비위원 일동 두손 모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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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박한식사랑방’ 시즌2 강연 개막 (2022.11.10.)
'세계화, 축복인가 혹은 저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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