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ROTC 동기의 단톡방 글

고국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접하는 곳은 형제와, 몇몇 작가분들, 77학번 미술과 동기들, 대학 R.O.T.C. 동기, 특전사(공수부대) 동기들의 단톡방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은 나보다도 더 자세히 기억해준 동기의 글이 20대초 팔팔한 조성모의 청춘(靑春)을 끌어내는 바람에 입술에 미소를 계속 머물게 했다.

긴 여름 방학을 동안 R.O.T.C. 소위 무관 임관식을 갖기전까지 대학 3, 4 학년 두차례 성남 훈련소에서 빡세게 여름을 보낸다. 여느 대학생들은 봉사활동, 가사돕기, 여행 등 많은 계획들을 실행하는 동안 R.O.T.C.후보생들은 젤 더운 기온 아래 흙먼지와 땀으로 뒤범벅되는 훈련을 받는다. 비오듯 흐르는 땀으로 탈수(脫水)를 방지하기 위해 식후 1숟갈씩 소금을 먹곤하며 그 뜨거운 여름의 훈장으로 구릿빛 살갖을 갖고 동기들이 훈련장을 나올땐 그 동안 만나지 못한 애인들이 훈련소 정문에서 맞아준다.
하숙하던 나는, 그림 그릴 공간이 필요한 댓가로 자취를 택했다, 대학 1학년 2학기 부터 흑석동에 유난히 많은 일본식집(적산가옥) 2층을 얻어 작업실로 썼다. 일본식 집은 창문이 많고 다다미가 그 시절에도 깔려 있었다.

첫번째 작업실로 얻은 일식집 2층. (1977년 6월 크기: 2호, Oil on Canvas)
이 이야기의 장소인 세번째 일식집은 다다미가 닳아 그 위에 장판이 있었다. 일식집은 2층은 여름엔 시원하지만 겨울엔 밖에서 자는거와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다. 그 증거가 될만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따뜻한 물로 세수 하고 싶어 작업실 중앙에 놓인 연탄 난로에 세숫대야에 물 받아 올려 놓았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연탄불은 언제 꺼졌는지 세숫대야 물은 얼어 있고...침대에 전기 장판을 깔아 등은 따뜻한데 이마는 언다. 그만큼 우풍이 센거다. (PS. 2018년 고국 방문시 그 추억의 작업실을 찾아보니 돌로 된 담장 높이가 약 5m 여기저기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밖의 세계와 등지는 모습의 위압감을 주어 초인종을 누를 생각 조차 들지 않았다.)

세번째 작업실로 얻은 일식집 2층.(1979년 겨울.크기 약 8호, Oil on Acid Print Paper) 이 작업실 오른쪽 담을 돌아 약 10~15m만 가면
제1한강교와 용산이 내려다 보인다. 12.12 사태 현장, 예광탄이 날라다니고, 총성이 들리고, 그 역사의 순간이 차가운 한강 건너, 여기서 난 그 날밤 목격했다.
긴 여름방학, 훈련으로 잃은, 없는 시간을 보충해야 가을에 있을 전국 대학 미전 준비가 되는데...당연 보충 방법은 잠을 줄이는 방법 밖에, 밤 늦게까지...아니 밤샘하다 보면 새벽 잠깐 눈 붙인다는 것이 훈련 시간을 까먹는다.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학교 연병장에서 내 작업실까지 달려와 날 부를 때는 이미 기진맥진된 에너지 고갈과 은근 치밀어 오는 화(😕)가 결합된 동기들의 고함으로 변질(😅), 여름이라 활짝 젖혀진 창문을 통과해 오는 소리는 흑석동에 메아리 친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어 태어난 작품이 바로 '책(Books)'이다. 그 작품이 60이 훌쩍 넘은 동기들의 뇌리에 남아 이렇게 뒷 이야기를 남긴다.
다시 한 번 미안하구먼 동기들아...내가 연병장에 도착했을땐 교관의 구령에 모두 일어나 되레 늦은 나에게 24시 안쏘니 퀸의 미소(🙄)와 함께 박수를 보내고 난 얼차례 받고...🤣

대학 시절 문교부 장관상을 받은 작품 '책(Books)', Oil on Canvas, 50호(91X116.8cm), 1980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조성모의 Along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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