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차 접어든 산중생활이 되었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이렇게 시간이 흐른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한 3년은 인정할만한데 2년 정돈 그냥 기억에서 지워져버린 것 같아 아쉬워, 어디로 같지? 언제 이렇게 5년이 흐른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지워진 2년 정도를 머리속에서 끄집어 낼 수가 없다.
나머지 2년은 아마 천당에 있지 않았나 싶다. (법정스님 글중에 - …천당은 살아있는 지금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가 살면서 즐겁고 행복하면 여기가 천당이고, 살면서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면 거기가 지옥이라네…)
밤낮으로 주위를 정리하며 그림 그리는 일이 여기에서의 일과였는데, 주위에 너무 빼곡히 나무로 가려진 집에 햇볕을 들게하려고 죽은 나무 등을 베고 60여 그루의 과실수와 관상목, 화초를 심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집에 놀러간 어느날. 텃밭에 내 키만큼 자란(아마 또래에 비해 키가 작았던 모양이다) 도라지 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뇌의 영상 자료실에 먼지가 수북히 쌓인채 있던 풍경을 되살려 도시의 집보다 좀 넓은 주위에 씨를 뿌리기도, 심기도 했다.
또 주위에 조그만 텃밭을 만들어 밤에 노곤한 몸을 누이며 내일의 할 일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니 천당에 있지 않았을까? 5년차에 접어든 집 주변은 산장분위기의 환경을 갖추었고, 1937년에 지어진 터라 주변이 많이 낡아 사는데 약간의 불편을 주는 요소만 수리하고, 새로 짓기전까진 경제적 낭비를 하지 않기로 했다.(스캇 니어링의 말을 빌리자면 어설프게 헌집을 고쳐보려는 비용이 새로 짓는 비용과 맞먹게 된다.)
2014년 5월 20일 개울건너 나무를 정리 할때 아주 바르게 자란 나무 두개를 후에 국기대로 쓰려고 산에 잘 모셔두었다가 힘겹게 집 입구까지 옮겨 깃대를 세우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걸었다.
산속에 나 밖에 없는 아주 조용한 분위기에서 두 국기를 향해 거수경례(擧手敬禮)를 했다. 어딘지 모르게 마음 깊은곳에서 두 나라에서 여태 내 삶을 보낸 시간들이 주마등(走馬燈) 같이 흐르며 지금 현재 이곳에 있게해 준 하느님께 감사했다.
산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늘 동경하던 환경을 갖게 되었으니 안그러하겠는가. 고국에서도 미국에 오기전까진 도봉산 근방에 둥지를 틀었고 가끔은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도봉산 중간 자락까지 오르내리곤 했다.
<下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