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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준의 Awesome Club
민족지도자 장준하선생의 3남 장호준 목사는 1999년 다문화목회를 위해 UCC(그리스도연합교회)의 코네티컷 컨퍼런스의 초청으로 미국에 왔다. 유콘(코네티컷대학) 스토어스 교회는 UCC의 회중교회 정치제도에 따라 평신도 목회를 하고 다양성 수용과 정의평화 운동을 기초로 한다. 헌금을 강제하지 않고 예배때 성경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2007년부터 주중엔 초중학교 스쿨버스를 운전하고 주말엔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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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아들로 삽니다’

글쓴이 : 장호준 날짜 : 2018-12-23 (일) 12:41:51

 

 

어려서 동네에서 야구를 했습니다.

모두가 경험 해 보신 적이 있으시겠지만, 신나게 공을 쳤고, 공은 공터를 벗어나 남의 집 담장 너머로 날아 들어갔습니다.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아이들은 일사분란하게 도망 쳤지만 대문을 박차고 뒤쫓아 달려 나온 집주인에게 결국 몇몇 녀석들이 붙잡혔습니다.

 

집주인은 이놈 자식들! 다시 또 여기 와서 야구 하면 그 때는 정말 혼날 줄 알아!”라고 하면서 녀석들의 머리통을 한 대씩 쥐어박고 보내 주었습니다. 하지만 집주인은 나는 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게 말했습니다.

 

넌 재들처럼 놀면 안 돼, 너희 아버님이 어떠신 분이신데, 네가 이렇게 놀면 되겠니?”

    

억울했었습니다.

나도 다른 애들처럼 그냥 한 대 쥐어박고 보내주면 될 것을 꼭 아버지 이름을 꺼내는 것이 싫었습니다. 난 난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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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환갑(還甲)이 된 오늘까지도 나는 아버지의 아들로 삽니다. 아니 아버지의 아들이 되기 위해 삽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더 이상 세상에 계시지 않기에 더욱 어머님, 아버지의 자식이 되기 위해 삽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처럼 아랫물을 보면 윗물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식을 보면 부모를 알 수 있습니다.

방정오의 딸을 보면 방정오를 알 수 있고, 방상훈의 아들을 보면 방상훈을 알 수 있듯, 방일영의 아들을 보면 방일영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잘 살아야 합니다.

 

 

 

내나이도 환갑인데

 

       

1988년부터 1994년까지 싱가폴에 있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흔히 말하는 선교사(宣敎師) 사역을 했었습니다.

 

올림픽 이후 노태우의 관심돌리기용 여행자유화가 시작 되면서 관광객들이 물밀 듯이 빠져나왔지만 당시는 멀리 갈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지라 모두가 동남아시아에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심지어는 신학교 학생들조차 단기선교여행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을 달고 비행기를 탔고 선교사라는 이름 달린 자들이 몇 안 되었던 시절 이었던 덕에 어찌 알았는지 내게 연락을 해서 단기선교신학생 팀을 받아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었습니다.

 

별로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누구 선배, 어느 교회, 아는 장로 등등 이름을 들먹이며 요청을 하는지라 새끼 목사였던 나로서는 딱 잘라 거절 할 수 없었습니다.

 

신학생들이 선교를 목적으로 싱가폴에 도착하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짐 속에 들어있는 음식들을 다 꺼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두어 번 해 보고 나니 대략 어떤 것들을 가지고 왔을지 짐작이 되지 않는 바는 아니었지만 한 번도 내 예상을 벗어났던 적이 없었던 것은 언제나 고추장, , 라면은 빠지지 않고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모두 꺼내 놓게 한 후 나는 이렇게 말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곳에 선교사역을 하기 위해 왔습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사역을 하는 기간 동안은 여러분들은 현지 사람들을 그들과 동일한 문화로 접근해야 하며 그 문화동화의 첫 관문은 음식입니다. 그러므로 사역 기간 동안은 한국 음식을 전혀 먹지 않을 것 입니다. 더하여 여러분들이 가지고 온 이 한국 음식들은 나를 위한 것으로 알고 내가 두고두고 잘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후, 말레이시아, 타일랜드,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을 끌고 다니면서 전혀 한국 음식을 먹이지 않았습니다. 음식문화 적응에 심각한 아이들의 경우는 독특한 향과 맛을 내는 동남아시아 음식에 적응하지 못해 몇 일간 물만 마시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석 주 또는 넉 주간의 사역 기간을 끝내고 돌아 갈 때는 모두들 반짝이는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선교지역과 이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나는 여행전문가도 문화연구가도 아니지만, 여행은 문화와의 동화(同化)라고 생각합니다. 현지 문화와 동화 할 수 없다면 아니 동화되기를 거부 한다면, 방에 앉아 OB 맥주와 주문진 오징어를 먹으며 텔레비전으로 여행을 하면 될 것이지 굳이 시간, , 열정을 쏟아 부으며 현지로 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단순히 해외여행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삶이라는 여행, 시간을 따라가는 여행, 역사를 이어가는 여행 역시 그 시간과 역사의 문화에 동화되지 못 한다고 하면 아니 동화 되기를 거부 한다고 하면 결국 여행을 떠나는 목적도, 떠나야 하는 필요도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많은 사람들이 삶의 여행을 떠나면서 시간과 역사의 문화에 동화하지 못 합니다. 아니 동화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속된 말로 꼰대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한글 낙서를 남기는 이들이나, "국민의 반이 나를 지지한다며 정계복귀를 하겠다는 홍준표나 표면은 다를지 모르지만 내면은 역시 문화동화에 실패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내 나이도 환갑인데, 어찌 해야 꼰대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 해 봅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장호준의 Awesome Club’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jhjac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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