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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지도자 장준하선생의 3남 장호준 목사는 1999년 다문화목회를 위해 UCC(그리스도연합교회)의 코네티컷 컨퍼런스의 초청으로 미국에 왔다. 유콘(코네티컷대학) 스토어스 교회는 UCC의 회중교회 정치제도에 따라 평신도 목회를 하고 다양성 수용과 정의평화 운동을 기초로 한다. 헌금을 강제하지 않고 예배때 성경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2007년부터 주중엔 초중학교 스쿨버스를 운전하고 주말엔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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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기에 더 사랑해야 하는 우리민족

글쓴이 : 장호준 날짜 : 2020-06-21 (일) 07: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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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글을 올립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민족 상황이 너무도 아프기 때문입니다.

 

조국에 계시는 동포여러분,

 

아프기에 더욱 사랑해야 하는, 사랑하기에 더욱 아픈 우리 민족이기에 결코 통일을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맙시다.

 

한민족은 하나의 민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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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제 린저는 그녀의 방북기에서 북한을 또 하나의 조국이라고 불렀지만 내게 있어 북한은 아무런 수식어가 필요치 않은 조국이었다.

 

센양(심양) 공항의 활주로를 따라 서서히 움직이던 비행기가 활주로를 떠나 하늘로 치솟아 올라 내가 가야 할 조국 땅을 향해 기수(機首)를 잡으면서 나는 지난 삼십여년 가까이 접어두었던 꿈의 한 귀퉁이를 조심스럽게 펼쳐 보았다.

 

그 꿈이 시작되던 때는 내가 남한의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민족의 허리를 잘라버린 휴전선에 도착한 밤이었다. 그 밤은 입으로 내뿜은 숨이 고드름이 되어 눈썹에 매달리게 하는 겨울의 한 복판이었다. 새벽부터 달려온 행군이 이제는 더 이상 나갈 곳이 없다는 아니 나갈 수가 없다는 절망으로 멈추어 선 곳, 그곳에서 나는 끝없이 펼쳐진 철조망과 그 위를 비치고 있는 얼어붙은 조명의 불빛들이 마치 멈추어 버린 시간의 정지화면인양 엄습(掩襲)하는 두려움으로 가로 막고 있는 것을 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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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비행기는 지금 압록강을 건너가고 있습네다

 

꿈의 한 귀퉁이를 조심스레 펼치고 있던 내게 들려온 고려항공 승무원의 북한 억양 안내 방송은 삼십여년이라는 시공을 넘어 지금 내 앞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는 현실의 자리로 나를 되돌려 놓았다.

 

나는 조선 로동당 창건 60돌을 축하하기 위한 재미동포 축하단의 일원으로 북 조선을 방문하였었다. 이번 방북은 내게는 첫 번째 북조선 방문이었으며 북조선 해외동포 원호위원회의 극진한 접대아래 조선 로동당 창건 60돌을 기념하기 위한 모든 공식 행사에 초청되는 귀한 자리였다.

 

평양 순안 공항에서부터 시작된 북조선 해외동포원호위원회의 각별한 환영은 비록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사람들 오히려 북과 남이 갈라져 서로가 서로의 가슴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이제는 검은 보자기에 싸여 유물 창고의 한 구석에나 버려져야 할 이념전쟁으로 원수(怨讎)가 되었었고 또 원수와 적으로 교육되었었던 사람들에 대한 사죄와 용서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곳에서 떠나는 사람을 보내며 오는 사람을 맞이하는 공항으로서의 평양 순안 공항이 이념과 불신의 감정을 떠내 보내고 민족과 신뢰의 미래를 맞아들이는 곳이 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게 숙소로 정해진 초대소에서 만난 봉사원 아주머니 동무의 눈길은 실로 북한이라는 상상 저편의 낮선 곳에 첫 발을 내디딘 내게 오히려 오랜 여행 끝에 집에 돌아온 듯 한 편안함을 안겨 주었었다. 내가 가지고 간 과자를 건넬 때 일 없습네다라고 거듭 사양하던 봉사원 동무와 마주 앉아 과자를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나눈 살아가는 이야기는 민족이나 분단 또는 이념이나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군에 간 둘째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또 한편으로 아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여느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그 곳을 떠나던 날 아침 마당 밖까지 배웅하면서 내 아내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하고 던 그 봉사원 동무의 젖은 눈망울은 마침내 내게 핏줄, 민족, 겨레, 이념, 분단 등과 같은 단어조각으로 만들어진 퍼즐을 맞추는 열쇠가 되었다.

 

나는 이번 방북이 결정 된 이후 결코 내가 북 조선을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 라는 화두를 가져 본적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북조선이 가진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하는 것으로 고민했었다, 그것은 나를 알기 위해 내 시각으로 나를 돌아 봐야 하는 것처럼 그들을 알기 위해 그들의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봐야 한다는 확신에 근거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내 고민은 만경대 고향집에서 만난 찌그러진 오지 항아리와 말아 놓은 멍석을 통해 아버지로서의 수령과 어머니로서의 당이 어우러져 한 뒤주의 쌀을 함께 먹으며 살아가는 한 가정이라는 북 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의 시각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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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각의 전환은 나와 함께 아리랑공연을 관람하던 참사동무들이 나도 학생 시절에 저곳에서 저 동무들처럼 공연을 했다고 내게 귀띔 하면서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통해서 북 조선 인민들이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그들의 삶을 공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주었으며 조국과 민족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 일구어 졌는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일군 사랑으로 그들은 이미 하나가 되어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내가 만난 북조선 인민들은 다만 지나쳐 가는 그곳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으로 내게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내게 있어 그들은 내 나라의 푸른 하늘공연이 끝나고 관람객들이 모두 퇴장한 무대에 걸터앉아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다리를 주무르며 떠들고 있는 모습에서 친구로 다가왔으며, 판문각에서 내가 건넨 초코렛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기뻐하던 초병의 모습에서 형제로 다가왔고, ‘다시 만나요를 부르며 손을 잡아주던 봉사원 동무들의 눈길에서 사랑하는 사람으로 또한 지하철에서 건너편에 앉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을 통해서 이웃으로 그리고 피붙이로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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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군인들, 부모의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아이들, 성불사(成佛寺)에서 만난 소풍을 나온 마을 사람들, 인민대학습당에서 만난 공부에 여념이 없는 젊은이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만난 어린 학생들, 지하철역에서 근무하는 여성 동무, 개성 성균관에서 안내를 맡은 함흥 출신의 안내원 동무, 그들은 모두 나뉠 수 없는 한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나 역시 그들과 한 가족으로 초대받았음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평양을 떠나면서 나는 아직도 끝없이 펼쳐진 철조망과 그 위를 비취고 있는 얼어붙은 조명의 불빛들이 마치 멈추어 버린 시간의 정지화면인양 가로 막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정지화면이 내게 두려움이 될 수는 없었다.

 

센양 공항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노을을 보았을 때 나는 그 노을이 모든 수식어를 떼어낸 내 조국의 하늘도 붉게 물들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곳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그것은 내 삶의 한 부분이 아직도 그곳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며 그것은 남과 북, 북과 남이 하나의 민족, 한 몸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장호준의 Awesome Club’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jhj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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