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는 해방 후 조선신학교(한신대학)을 졸업 하셨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동경신학을 다니시다가 학병으로 끌려가게 되어 마치지 못한 학업을 마무리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신학을 하셨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나 역시 신학을 하게 되었고 학교를 다니던 때 나를 가르쳐 주신 분이 아버지와 함께 동경에서부터 신학교를 다니셨던 어르신이셨습니다.
내가 신학교에서 그 어르신을 뵌 때는 이미 아버지께서 죽임을 당하신 후였고 동문수학 했던 친구의 아들이 신학생으로 당신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시는 그 어르신의 눈빛은 참으로 형용(形容)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그의 죽음에 대한 분노 그리고 친구의 아들이 신학생으로 당신 앞에 서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것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학교에서 그 어르신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하면서 나는 단 한 번도 성적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다른 과목은 몰라도 그 어르신께서 가르치시는 과목만은 무조건 최고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부 했던 덕이고 또한 그 과목이 신학의 뼈대가 되는 ‘조직신학’이었기에 다른 신학 과목들까지 더하여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던 덕이었습니다.
당시는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친구 분이신 그 어르신께서 가르치시는 과목만은 A+ 가 아니라 A+++ 라도 받아야 한다고 다짐하며 속된 말로 죽기 살기로 공부를 했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 되돌아 보니 그 때 그 어르신께서 나를 가르쳐 주셨던 것이 내게 얼마나 큰 혜택(惠澤)을 받은 것이 되었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혜택은 이런 것입니다.
‘의사고시’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속내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글이 페이스북에 떠돌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씁쓸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저 글이 맞는 이야기라면 의대생 아이들이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악을 쓰며 발버둥 치는 것은 ‘혜택’이 아니라 그저 ‘도둑질’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장호준의 Awesome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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