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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의 횡설수설
분단 된 조국, 한반도의 남쪽에 사는 일은 고립된 섬과 같은 무의식으로 늘 외로움의 관성이 있습니다. 평화로 하나 된 한반도를 꿈꾸고, 그 실현을 위한 움직임으로 대륙을 지향하며 세계와 소통하는 일은 의미가 크다고 믿습니다.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의 흔들림에도 한반도 평화의 의미를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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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동

글쓴이 : 황룡 날짜 : 2020-05-20 (수) 08:2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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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가을, 3도어 빨간 프라이드를 몰고 운전을 시작한지 석 달도 안된 초보가 사소한 여행 욕심에 목숨을 건 친구와 둘이 전국일주를 떠났다.

 

춘천을 출발해 정선 사북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친구를 태우고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 경주, 부산을 들러 광주에 갔다. 5.18이 있었던 1980년으로부터 11년이나 지나 망월동에 꼭 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1997년 지금의 5.18민주묘역이 완공되기 전에는 그냥 망월동 묘지었다.

 

당시엔 네비가 없던 때라 조수석의 친구가 지도를 보고 네비 역할을 했는데, 망월동 묘지를 지도 보고는 찾기가 쉽지 않아 헤매다가 근처를 지나던 분들께 망월동 가는 길을 물었다.

 

강원도에서 왔다는 얘기를 듣고는 설명이 쉽지 않다며 차를 타고 직접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두 분은 40대와 30대 초반 나이의 광주카톨릭대학병원 간호사들이었다. 5.18의 비극을 최 일선에서 직접 겪었던 산증인이었기에 망월동을 찾아와 줘 고맙다고까지 하며 직접 안내했던 것이다.

 

당시 망월동 묘역은 계획적으로 조성되지 않은 허름한 공동묘지였고 무덤은 산만하게 흩어져 있었다. 산화한 주검들의 혼령 앞에서 군데 군데 무너져 있는 비탈처럼 가슴도 무너졌었다.

 

1980.5. 18, 대학 2학년의 피 끓던 청춘으로 그 한복판을 지나왔고, 주변의 선배와 친구들과 함께 전두환 악마정권하에서 고난(苦難)을 겪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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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동에서 한참 침묵과 묵념의 시간을 보낸 뒤 두 분이 저녁식사를 대접해야 한다며 무등산에 있는 보리밥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망월동 안내에 대한 감사로 우리가 대접해야 된다는 것을 끝내 마다하고 우리를 손님이라며 그건 경우가 아니라고 했다.

 

식사 후 나른하기도 하고 그냥 보리밥집에서 자면 좋겠다 농담했더니 주인께 자고 가도 된다는 허락까지 얻어줬다. 두 분의 천사와는 그렇게 헤어졌고 우리는 그렇게 자고 아침에 무등산 등산까지 하고 광주를 떠났다.

 

당시 난 결혼 4년차였는데, 친구는 총각이었다. 친구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였으면 연락처를 물어봤을 거다. 넌 그래서 장가를 못가는 거야"라고 했었다. 두 간호사 중 한 분은 처녀였었다. 그 때 왜 두 분의 연락처를 묻지 않았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해마다 5.18이 돌아오면 비애(悲哀)의 한 켠에 있는 그 분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추억하게 된다. 지금은 그 흔한 사진도 한 장 없는 것이 그 때를 추억하기에 아쉽기도 하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룡의 횡설수설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wang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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