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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의 횡설수설
분단 된 조국, 한반도의 남쪽에 사는 일은 고립된 섬과 같은 무의식으로 늘 외로움의 관성이 있습니다. 평화로 하나 된 한반도를 꿈꾸고, 그 실현을 위한 움직임으로 대륙을 지향하며 세계와 소통하는 일은 의미가 크다고 믿습니다.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의 흔들림에도 한반도 평화의 의미를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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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

글쓴이 : 황룡 날짜 : 2019-10-03 (목) 16:12:15


 

0919-3.jpg

 

춘천 근교 강촌에 가면 구곡폭포를 지나 산 넘어 문배마을이 있다. 마치 큰 산의 분화구 처럼 산정에 우묵하고 넓게 패인 곳에 약 10가구 정도가 있는 마을인데, 집집마다 등산객들을 상대로 음식점을 하고 메뉴는 산채비빔밥과 동동주로 거의 어슷비슷하다.

 

10여 년 전 가을 어느날, 혼자 등산을 하고 이곳에 들렀던 기록이 다음카페에 들어가 추억찾기를 하다 보니 아직 그대로 있기에 그 때를 추억하며 옮겨 본다.

 

산을 오른지 2시간...문배마을 입구는 밤송이가 지키고 있었다. 어느새 여름의 꼬리가 보이고 가을 냄새가 물씬 난다.


0919-1.jpg

 

어쩌려고 혼자 술상을 받았다. 칡부침과 산채비빔밥까지... 검봉을 넘어 가니 나른하고 배도 고팠다... 먼저 좁쌀동동주의 씨언한 맛을 음미하며 기세좋게 한 잔을 들이키고 다음 잔을 채웠다.

 

그 사이에 비빔밥도 깨끗이 비우고 또 한 잔...안주가 남아 또 한 잔...

산을 오른 몸은 달아 있었고 거기에 동동주 석 잔을 비웠을 뿐인데 얼굴은 활활 타 올랐다. 나머지는 생수병에 저장하고 일어섰다.


0919-2.jpg

 

나이 50이 되도록 혼자 어디가서 주전자 채로 술을 시킨 건 분명 처음이었다.

내려 오는 길은 내 눈에 담겨진 저 망태버섯의 빛깔처럼 황홀했다.

구름 위를 걸었고 산 허리를 돌아 물살도 갈랐다.

색이 화려하면 독버섯이라는 속설에 당연히 독버섯일줄 알았는데 망태버섯은 중국에서 고급 요리로 쓰인다고 한다.

 

음식점 기둥에 걸려있는 주전자처럼 사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다. 주전자의 외출같은 하루였다.


0919 주전자.jpg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 / 김승희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

거친 파도가 바위섬을 삼킬 듯이 몰아칠 때

세계의 집에서 지붕들이 고요히 벗겨지고

유리창들이 환상의 격투로 부서질 때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

삶은 거기에서 발레리나, 발뒤꿈치를 힘껏 높여들고

두 팔을 하늘로 쳐들고, 춤추는 발레리나,

관절이 연결된 척추 마디에 삐걱거림의 꽃송이가

벙글어지듯 솟아나고

바알갛게 신음하는 복숭아뼈를 견디며

바닥을 차고 올라가는 하얀 높이로의 힘겨운 이행

발레리나의 춤이 그 연루된 뼈들의 고통을 잊을 때

꽃이 고통의 연루로 피어난다는 것을 잊을 수 있을 때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

목 없는 닭이 어두운 구름을 앞질러 날아가는

새떼들을 쳐다보는 시선으로

주전자 입에서 펄펄 날아가는 흰 김을 바라볼 때

혁명은 힘겨운 척추뼈와 복사뼈 사이의 연루에 있고

목 없는 닭의 떨리는 눈 속에 있고

하얀 김이 펄펄 나며 하늘을 조금 밀어내고 있는

그 공기의 힘겨운 파장 속에 있고

환상이 상심과 더불어 솟구쳐 일어나고

사랑이 한번만 사랑일 때

혁명이 한번만 혁명일 때

주전자 뚜껑이 팔팔 끓어오르는 김의 힘에 밀려

, 하고 저절로 벗겨져 떨어질 때

 

 

 

고구마를 캐며

 

 

 

0923 고구마.jpg

 

 

구순에 가까워진 엄마

고구마 좋아하신다고

보랏빛 각시붓꽃

밤나무 아래 흐드러진 5

고구마를 심었다

하늘도 어여삐 여겨

비도 자주 내려주고

고구마 순도 무성하게 자라

줄기도 볶아먹고 김치도 해먹고

찬바람 불고 어느덧

캘 때가 되었다


0923-1.jpg

 

이제 곧 낙엽 지고 눈 내리면

겨우내 밥에도 넣고

찐 고구마와 동치미를

엄마는 끼니로도 드시는데

어느 날 임플란트하느라

불편한 치아 때문에

내가 끼니로 고구마를 먹으며

엄마는 고구마를 좋아하신 게 아니라

치아가 좋지 않으셔서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신 게 아닐까


 

나이가 들며

몸으로 깨치게 되는 게 삶인지

아니, 불효인지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고구마를 캔다

아마존에서도 대박 났다던

호미로 캐다 고구마 찍고

서툰 호미질에 상처 난 고구마

엄마의 삶처럼 울퉁불퉁한

고구마를 문화재 발굴하듯 캔다

 

 

 

무를 솎다가

 

 

 

0920 무를 솎다가.jpg

 

 

무를 솎다가

어우러져 크고 있는 무를 솎다가

홀로 살아남은 무와

송두리째 뽑힌 무 사이에서

무심코 생각한다

씨 뿌려 같이 살게 할 땐 언제고

더 배불리 먹겠다고

정붙이고 사는 것들 떼어놓아

어느 무는 살리고

어느 무는 죽이고

이 무슨 죄를 짓는가

내 배를 채우려

무의 삶을 파탄내는 건가

얼마나 간절한 몸부림이면

온몸을 꼬아 서로 휘감아

사랑하고 있는 무를 솎다가

무를 솎다가

심을 권리와 뽑아 낼 권리까지

생사여탈권을

혼자 모두 움켜쥐고 있는

나는 검사스러운 게 아닐까

 

 


0920-1.jpg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룡의 횡설수설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wanglong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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