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계리 은행나무 수령 800~1000년
고작 60여 년 삶의 生을 축하한다고 날 데리고 온 곳엔 천 년의 삶을 딛고 서 있는 은행나무가 있었다.

그와 멀지 않은 곳엔 6백 년 수령(樹齡)의 향나무, 참나무도 있었다. 여생을 겸손하게 살자는 뜻이었겠지.

신륵사 향나무 수령 600년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나무는 그토록 오랜 세월을 뭔 생각으로 어찌 견디고 살아 왔는지...
몸 둔 곳 마다하고 천방지축 호시탐탐 낯선 곳만 동경하는 삶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내 나무를 좋아하고 자칭 나무에 비유하지만 난 움직여 돌아쳐야 살아 있음을 느끼는 나무라네.
무튼, 이 가을 천 년의 생을 노랗게 물들이고 늘어 서 있을 저 은행나무는 꼭 다시 찾아 봐야겠다.

걷는다는, 복된 일
마음이 울적하거나 시끄러울 땐 숲에 들어 하염없이 걷는 게 약이었다. 선자령 가을 길을 따라나서 책을 읽듯 같은 방향을 보며 더불어 함께 걸었다. 힘겹던 삶의 굽이를 어쩌다 돌아보면 희미하게 옅어진 것처럼 끈덕지던 지난여름도 이젠 마른 갈잎이 되어 있었다.

진정한 답사의 고수는 폐사지를 찾아간다고 하던데, 굴산사 터를 찾은 건 그래서였을까?
바로 그 굴산사 터엔 웅장한 고요와 침묵이 오래된 친구처럼 반겼고, 흥망성쇠의 덧없는 과거를 지키는 당간지주(幢竿支柱)는 문지기 초병 같았다.

절이 흥興했던 신라부터 성盛했던 고려까지의 역사를 전해 들었을 오백 년 수령의 소나무 한 그루, 고작 육십갑자 한 바퀴 돌아온 가소로운 이놈의 삶은 위풍당당 신령한 기운을 품고 서 있는 그 나무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었다.
걷는다는 건 행복한 일이기에 오늘도 감사하다. 잠시라도 걸을 수 없었던 사람은 언제라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함께 인문학적 의미를 나누고 교감하며 걷는 것이 바로 '걷는 독서', 복된 삶 읽기가 아니겠는가.

"목적지는 저 먼 어딘가가 아니다.
그곳에 이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목적지다.
죽는 날까지 자기 안에" -박노해, <걷는 독서> 中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룡의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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