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밖 품 넓은 느티나무
평상 위 고목처럼 앉아 기다리던
어깨 위로 회한(悔恨)의 시간이 저물고
서울가는 완행열차로 가출했던 아이
느티나무 한쪽 가지 썩어 부러지도록
쌓인 그리움은 수십 년
놓인 그대로였다
철없던 밤기차 도시로 도망치듯
고단한 서울 살이 팍팍했을 세월은
이제 동승한 새벽 어스름을 헤치고
고향 찾아 돌아오는 길
그믐달도 애써 밝히고
다소곳한 아내와 함께 아비가 되어
그들만의 자식이었던 아이들을
할머니 품에 안기고
스무 해 겹겹이 껴안았던 그리움은
여장(旅裝)을 풀었다
닮은 사람들, 닮은 눈으로 나누던 대화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 침묵이 끼어들고
그들은 막연히 함께 살 날을 기대하며
저무는 강을 건너갔다
어머니는 다시 노을 등지고 눈물 훔치며
그리움 묻어 둘 뒷곁으로 나가신다
순천만에서 / 김령
해 질 녘 갈대밭은 바람결 따라 눕는다
모여 앉은 물오리 바람결 따라 몸을 모으고
뻘밭의 숨구멍도 얼굴을 돌린다
바짝 엎드렸다 밀물 밀려들면
몸을 일으켜 다시 하루를 맞는다
바람이 부는 쪽으로 누울 수도 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거센 물살 거슬러 목적지까지
다다르는 것만이 삶이라 믿었다
세찬 강물, 얼굴 내밀어 숨만 쉬고
한 시절 건널 수도 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시 일어서는 법을 몰랐다
온몸 경련 일도록 악물던 이
먼 곳 돌아와 갈대밭 물오리 옆
오므려 앉아 바람을 맞는다
새가 지나간 자리
새의 형상으로 가슴에 구멍 뚫렸다가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메워져 온다
#시집_어떤돌은밤에웃는다
#시인_김령
*
마음에 쏙 들어오는 젊은이를 보면 며느리 또는 사위로 삼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시집에서 '순천만에서' 詩를 읽다가 2009년 순천만에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나 찍었던 사진을 찾았으나 못 찾고, 페북 그룹 <모퉁이돌의 사진이야기>에서 훨씬 멋진 사진들을 찾았기에 시와 짝지어 줍니다.
그때는 알지 못했더라도 이제는 바람이 부는 쪽으로 누울 수도 있다는 걸...
모두 여유롭고 행복한 설 명절 만드시길요~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룡의 횡설수설’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wangl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