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닷없이 주어진 며칠의 시간, 낯선 서해에 가려고 길을 나섰으나 장마철 날씨 닮은 내 변덕으로 익숙한 동해로 서울에서 U턴했다.
우선 강릉에 있는 '명주상회'를 네비에 찍었고, 네비는 습관처럼 고속도로 경로를 안내했지만 탐색 경로를 국도로 바꿨다.
강릉은 주로 고속도로로 양양을 경유해 가는데 터널 속으로 반은 가는 것 같다. 그것도 싫고, 차량 흐름이 100km/h 이상이라 속도의 긴장을 안고 왠지 끌려가는 느낌이 오늘은 더 싫었다.
국도로 가면 평균 60km/h로 풍경도 읽을 수 있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춰 사진도 찍는 자유로운 쉼과 여유가 있어 좋다. 시간 부자가 그나마 누릴 수 있는 특권인가?
종일 저녁 7시 같은 분위기의 날씨라 다니기엔 그만이었고 과습으로 찌는 날씨지만 대관령은 바람이 쎄고 시원했다.
완만한 능선(稜線)은 보는 이에겐 편안함을 주지만, 고냉지 드넓은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지루하고 막막할 것 같았다..
농사가 자본의 집중과 도박처럼 변해 그 옛날 교과서에 있던 플랜테이션의 향기가 짙고, 이국적인 집 주인들은 아마도 박힌 돌을 빼낸 구르는 돌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으나 그림은 그럴 듯 했다.

대관령 아흔 아홉 굽이를 실로 오랫만에 차로 내려오면서 이순원 작가의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소설처럼 언제 아들과 대관령 옛길을 걸을 수 있을까? 꼭 한 번 걸었으면 싶었다.
#명주상회 는 짜이를 마실 수 있는 곳이고, 처음 마시는 짜이 맛은 상상했던 것처럼 좋았다. 춘천에도 짜이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쥔장은 한 번 본 적도 없는 페북 친구다. 알고보니 난 그의 독특한 마력을 생각했고, 그는 나를 많이 걷는 사람으로 기억하는 그런 친구였다.
이어진 주된 대화는 요즘 나를 붙잡고 있는 것들이었다. 어떻게 늙어가고, 어떻게 삶을 건강하게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길을 떠났으나 일상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동해 바닷가에서 첫 차박을 할 생각으로 떠난 길인데, 더위 속 낯선 풍경들과 장마에 굴하고 새벽같이 집에 돌아왔다. 나도 이제 늙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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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산다
책장은 안 보는 책들이 가득 차지했고, 옷장은 입지 않는 옷으로 빽빽하다. 자주 입는 옷들은 스탠드 옷걸이, 의자 등에 걸려 있고 침대 주변의 책들도 그러하다.
보지 않는 책과 입지 않는 옷을 정리해 버리고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보는 책과 입는 옷을 책장, 옷장에 정리해 넣는 작업을 한동안 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일주일 동안 책들을 묶어 내놓았다. 사진을 찍어 공개하고 필요한 분들 혹시 있다면 보내드릴까도 생각했지만, 오래된 책들이 많아서 그럴만한 것들이 별로 없어 보였다.

만약 기 천 권의 책을 제대로 봤다면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어야야 마땅할 일이다. 그렇지 못한 건 책을 본 것이 아니라 지적 허영심(虛榮心)으로 책꽂이를 바라 본 삶이었나 싶다.
아무도 믿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으로부터 삶은 어그러졌고, 결국 궤도수정을 하지 못하고 술도 물도 아닌 채 오늘에 이른 것은 전적으로 내탓이기에 더욱 허망하다.
이제 집안 물건의 80%는 버려도 사는데 문제 없을 것 같다. 어쩌다 책을 정리하는 것이 삶을 정리하는 일이 되고보니 쓸쓸하다. 욕심도 집착도 책도 물건도 버려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다.
덧) 페친 님들 책은 한 권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룡의 횡설수설’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wangl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