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이 순간에 깃들다

내 생애 최고의 날
/ 이민숙
한 잎의 병든 이파리가 수술대 위에 누웠던 그때
여기에서 저기까지 알 수 없이 까마득한 길은 무의미해지고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영원이라는 걸 알았다 그때
사랑하는 사람은 밤새 내 주위를 맴돌며
우주의 빛이 꺼지지 않기를 기원했다
죽음의 깊은 그림자를 붙들고 그러나, 삶의 최상인 에로스를 느꼈다
생명인 우주, 질긴 한 오라기 비단실 황금빛에 다름 아니었다
갓난아이처럼 세상의 첫 경험을 끌어안고 나아갔다
난 에너지가 차단된 시간의 총화,
생과 사의 경계를 걷는 광대였다
나를 창조하고 스스로를 춤췄다
살아있다는 건 생애 최고의 날이 밝았다는 것,
날개인 존재가
내 생애 최고의 날이 되어 날아다녔다
여전히 그렇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길어 올린 황금빛 환희(歡喜)인 이 시는 단순한 투병(鬪病)의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육체의 소멸을 마주한 인간이 역설적으로 발견한 생(生)의 가장 찬란한 정점에 대한 고백입니다.
시인은 자신을 '한 잎의 병든 이파리'라 명명하며 수술대라는 차가운 경계 위에 스스로를 눕힙니다. 아득한 미래나 지나온 과거가 모두 지워진 그 절대적인 고립의 순간, 시인은 비로소 깨닫습니다. 영원(永遠)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숨을 내뱉는 '오늘, 지금, 이 순간' 속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가장 감동적인 지점은 죽음의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순간, 시인이 느낀 것이 공포가 아닌 "삶의 최상인 에로스"였다는 고백입니다. 밤새 곁을 지키며 기도를 올린 사랑하는 이의 존재는 시인을 다시 우주의 빛으로 연결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죽음이라는 어둠이 짙어질수록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갈망과 사랑의 에너지는 더욱 뜨겁게 타올랐던 것입니다.
시인은 생명을 '질긴 한 오라기 비단실 황금빛'이라 묘사합니다. 가냘프지만 끊어지지 않는 그 빛줄기를 붙잡고, 시인은 수술실을 나와 다시 세상의 첫 경험을 끌어안습니다. 생과 사의 줄 위를 걷는 '광대'처럼 위태로운 순간 속에서도, 스스로 존재를 창조하고 춤을 추었다는 표현은 고통을 예술적 승화로 이끌어낸 시인의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 시가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는 명료합니다. 암이라는 거대한 절벽 앞에서 시인이 발견한 것은 '살아있음' 그 자체의 경이로움입니다. 고통의 수술대는 끝이 아니라, 존재의 날개를 달고 다시 날아오르는 이륙의 공간이었습니다.
"여전히 그렇다!"라는 마지막 외침은 과거의 완치 선언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뜨거운 응원이자,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생애 최고의 기적임을 증명하는 고귀한 선언입니다.
시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며, 그 고난을 황금빛 비단실로 엮어내신 문학적 시선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룡의 횡설수설’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wangl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