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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정신세계수행자, IT전문가, 영화감독, 연극배우, 라디오방송기자 등 다양한 인생 여정을 거쳐 현재 뉴욕에서 옐로캡을 운전하고 있다. 뉴욕시내 곳곳을 누비며 뉴요커들의 삶을 지척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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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 위로

글쓴이 : 황길재 날짜 : 2020-01-12 (일) 21:47:06



1202설국트럭.jpg

      

12월의 첫날, 업무 복귀했다. 다른 때와 달리 트럭을 집에 가져온 덕분에 오가는 시간 없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내가 출발 직전까지 트럭 살림 정리를 해주었다.

 

무슨 까닭인지 아침부터 마음이 불안했다. 여러모로 힘든 하루였다. 일과를 마친 현재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

 

뉴저지 남부에 있는 Cedarville, NJ에서 Coal Township, PA로 가는 화물을 받았다. 빈 트레일러는 Keasbey, NJ에 있는 페덱스 야드에서 가져가기로 했다.

 

이 페덱스 야드는 처음 와서 헷갈렸다. 빈 트레일러 야드는 별도의 공간에 있었다. 그걸 모르고 헤매다가 야드자키에게 물어보고서야 알았다.

 

날씨가 궂다. 비가 많이 내렸다. 내일까지 겨울 폭풍 주의보다. 기온은 영상이라 눈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발송처에 도착했을 때는 짧은 해가 이미 지고 날이 저물었다. 닥에 후진하는데 조명이 어둡다. 어두운 밤에 비까지 내리니 후진이 더 어렵다. 닥에 철제 구조물이 튀어나온 형태라 자칫하면 트레일러 문에 손상(損傷)을 입힐 수 있다. 몇 번을 내려 뒤를 확인하며 조심해서 후진했다.

 

국도 구간이 제법 길다. 날씨도 안 좋고 길도 미끄러워 속도를 내기 어렵다. 내일 아침 배달이니 오늘 중으로 배달처에 도착해 앞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 안전하게 가자.

 

11시가 넘어 배달처에 도착했다. 입구 앞 작은 공터는 다른 트럭들로 찼다. 나는 약간 후진해 도로 갓길에 주차했다. 새벽 5시부터 시작한다. 나는 8시 배달이니 7시 정도에 체크인하면 적당하다.

 

피곤하다. 자자.

 

 

케틀벨

 

 

 

120319 케틀벨.jpg

 

원래는 화물이 준비돼 있어야 했다. 빈 트레일러가 없다고 내가 가져온 트레일러에 실어야겠단다. 그러라고 했다. 문제는 5시간을 넘게 기다렸다는 것이다. 낮에 도착하면 뭐하나 짐 싣고 출발이 밤인데.

 

후진 실력이 늘었다. 좁은 공간에서도 잘 들어간다. 닥에 댔을 때 정확도도 높아졌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이 늘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 항상 조심한다. 특히 밤중에는.

 

오후 9시에 출발할 수 있었다. 정오에 시작했으니 새벽 2시에는 멈춰야 한다. I-64, 버지니아와 웨스트 버지니아 구간은 대부분 산악지대다. 남은 거리를 500마일 이하로 줄여 놓아야 내일 운행이 편하고 정시 배달도 가능하다. 곡선길에서도 속도를 줄일 수 없는 이유다. 자칫해서 차량 평형 상실 경고 메시지라도 뜨면 큰일이다. 가뜩이나 위험순위가 높은데 여기서 더 올라가면 거의 해고라고 봐야 옳다. 속도를 유지하면서 커브를 돌자니 운전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시야가 제한적인 야간이라 피로는 더하다.

 

새벽 2, 예상했던 휴게소는 진출입로 갓길에조차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찼다. 이 시간에 트럭스탑이라고 자리가 있을 리는 만무하다. 시간은 다 썼고 빨리 하이웨이 램프에라도 세워야 한다. 첫 번째 램프에는 주차할 공간이 없었다. 두 번째 램프도 마찬가지라 고속도로로 진입할 즈음에 기적처럼 주차할 공간이 보였다.

 

오전 7시에 일어났다. 정오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보다 안전한 주차공간을 찾기 위해 30마일 거리에 있는 트럭스탑에 가기로 했다. 이 정도 거리는 개인 편의(Personal Conveyance) 상태로 움직여도 지장 없다. 이 시간이면 트럭스탑은 한산하다.

 

트럭스탑에 도착해 샤워부터 했다. 집 떠난 지 사흘만이다. 앞으로는 더 자주 해야지. 잠은 더 오지 않고 쉬면서 정오까지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번에 집에서 케틀벨을 가져 왔다. 케틀벨은 시간 대비 효과가 가장 큰 전신운동이다. 근력과 유산소 운동이 혼합된 형태다. 몇 년 전 짐에서 케틀벨을 수십 차례 흔들고 집에 올 때 다리가 후들거렸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케틀벨을 휘둘렀더니 햄스트링과 엉덩이가 뻐근하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본사에 왔다

 


120519 프라임에서.jpg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배달처는 입구에 널찍하고 주차하기 편한 대기장을 갖췄다. 오후 9시에 도착해 경비실에 체크인했다.

 

자는데 전화가 왔다. 새벽 330분이다. 도어가 배정됐으니 입장하란다.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지난번보다 트럭이 적어 후진이 수월했다.

 

배달을 마치고 나올 즈음에는 10시간 휴식도 끝났다. 브라이언은 세인트루이스에서 아칸소 포트 스미스로 가는 화물을 내게 줬다. 트레일러를 본사에 내려놓고 내일 아침 캠퍼스인에서 안전 교육을 받으란다.

 

희한한 일이다. 세인트루이스 특정 지역만 가면 QC 내장 나비고 네비게이션이 꺼진다. 버그인 모양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단다. 가민이 알려주는 길로 갔더니 다른 트럭들과 반대길로 들어가서 회전이 무척 어렵다. 거의 불가능한 우회전으로 간신히 진입로에 들어갔다. 이걸 보면 내가 운전을 못 하는 게 아니다. 이곳은 들어오는 트럭의 무게를 잰다. 그 무게만큼 빼고 최대한 짐을 싣기 위해서다. 이런 곳에 가려면 트럭과 리퍼 연료를 가득 채우고 가야 한다. 나중에 주유했다가는 한계 중량을 초과(超過)할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트레일러를 연결하고 무게들 달아보니 78,500파운드 정도 나왔다. 내 트럭이 경량 트럭이어서 그렇지 풀콘도였으면 80,000파운드 됐을 것이다. 화물은 맥주였다. 병맥주는 따로 냉난방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본사에 왔다. 오늘따라 출입에 긴 시간이 걸렸다. 발송서류는 드라이브 라인에 제출했다. 나 대신 이 화물을 배달할 사람이 받아갈 것이다. 본사에 오니 할 일이 많다. 우선 세차부터 했다. 소금 먼지가 허옇다.

 

엔진오일 교환할 시기가 가깝다. 65천 마일마다 교환하는데 지금 61,879마일이니 약 3천 마일 남았다. RA에 물어보니 지금 교환해도 된단다. 한 달에 약 1만 마일을 주행하니 대략 6개월마다 엔진오일을 교환하는 셈이다. 팀드라이빙은 3~4개월 정도 걸릴 것이다. 이 작업은 PM(Preventive maintenance)이라 부른다. 즉 예방적 유지보수다. 엔진오일뿐 아니라 다른 소모품도 필요하면 교환하고 간단한 차량 점검도 한다. 외부에서 하는 것보다 회사 터미널에서 하는 게 아무래도 더 신뢰가 간다. 회사에도 경제적으로 이익이다. 일단 신청은 했는데 몇 시에 전화가 올지는 모르겠다.

 

내일 안전교육을 받는 것으로 봐서 해고당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오늘 아침에 브라이언과 통화했을 때도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앞으로 서류 스캔할 때 발송장에 스탬프를 찍어 도착시간과 출발시간을 꼭 기록하라고 했다. 11월에 내가 했던 트립 중에 6시간 대기가 있는데 스탬프가 없어 300달러 넘게 손해를 봤다면서. 디텐션 페이에 해당하든 아니든 앞으로는 무조건 기록하라고 했다. 나는 약속 시각보다 2시간 넘게 걸리면 스탬프를 찍고 시간을 기록했다. 회사 전체로는 기록이 없어 못 받은 금액이 엄청나다고 한다.

 

영주씨는 다른 회사로 옮기면 되지 뭘 그리 프라임에 충성하냐고 한다. 나도 프라임에 목숨 거는 건 아니지만 첫 회사라 애착이 가는 건 사실이다. 다른 회사는 안 다녀봤지만, 프라임만의 독특한 문화도 사람들의 애사심에 한몫하는 것 같다.

 

영주씨가 준 정보에 따르면 애슐리라는 가구 회사가 있는데 트럭 드라이버 초봉이 98천달러다. 각종 혜택도 좋다. 2년 이상 경력자만 신청할 수 있다. 뉴욕에도 애슐리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기사회생이라기에는

 


120719 이럴거면.jpg

 

어젯밤 9시에 샵에서 전화가 왔다. 트럭을 몰고 갔다. PM은 엔진오일 교환이 가장 크지만 다른 작업도 많았다. 오일필터와 에어필터도 교체했다. 정비사는 그 외에 정확히 뭔지 모를 여러 일을 하며 닦고 조이고 기름쳤다. 심지어 디어 가드 연결부의 볼트나사도 새것으로 교체했다. 작업은 40분 정도 걸렸다.

 

새벽 530분에 일어나 샤워하고 셔틀 버스를 타러 갔다. 첫 셔틀은 630분에 왔다. 캠퍼스인에 도착해 안전 교육 수업을 받았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한 대여섯 번은 받은 것 같다. 비디오 시청, 퀴즈 풀이, 시뮬레이터 운전으로 이어졌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탑200에 드는 나는 별도 과제가 있었다. 컴퓨터에서 8개 비디오를 시청하고 어떤 것은 문제도 풀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플라자 빌딩에 트럭을 가지고 가서 인스트럭터를 만나란다. 왜 트럭을 갖고 오라는 거지?

 

캠퍼스인에 온 김에 근처에 있는 월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종합비타민과 오메가-3도 샀더니 80달러 넘게 나왔다. 생전 이런 것 안 먹고 살았다. 나이 오십이 넘으니 챙겨 먹어야 할 시기다. 종합비타민을 먹으면 컨디션도 좋고 소변 색깔도 맑게 나온다. 450알 들었으니 한 통 사면 일 년 넘게 먹는다. 오메가-3는 처음 샀는데 2,000mg 고용량으로 골랐다. 아무래도 진한 게 좋겠지 싶어서. 다른 것은 750mg, 1,000mg이었다.

 

다시 본사로 돌아왔다. 플라자 빌딩에서 인스트럭터를 만나니 연습장에 트럭을 가져와서 트레일러를 연결하란다. 실기 시험을 보자는 건가?

 

내 트럭에는 조수석이 없어 인스트럭터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는 작년 4월 내가 CDL 면허 시험 볼 때 나를 감독했던 사람이다. 그때도 내가 주행을 잘했다고 했는데 이번에야 완벽 그 자체다. 그가 지시하는 대로 15분 정도 도로 주행을 하고 돌아왔다. 그는 내가 왜 평가 대상인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Z빌딩에 가서 브라이언을 만났다. 서로 처음 본다. 젊은 백인이었다. 얼굴이 작아서 앉아 있을 때는 체구가 작은 줄 알았는데 서서 걸어갈 때 보니 내 키만 했다. 그래, 나 얼큰이다. 함께 안전 담당자를 만나러 갔다. 안전 담당자는 전에도 봤던 흑인이었다. 그도 내가 왜 평가 대상인지 의아해 했다.

 

사실 내 성과는 좋은 편이다. 항상 정시 배달을 했고 위험한 사고도 없었다. 최근 6개월간 크리티컬 이벤트는 한 건이었다. 평균 이하라고 한다. 내가 이 지경까지 와서 Top 200 상위에 랭크된 것은 순전 티끌 모아 태산이었다. 작은 사안들이 모여 높은 점수가 됐다. 더구나 최근 두 달 사이에 받은 티켓 2장이 결정적이었다. 나는 그 두 건 모두 다소 억울한 사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절차대로는 해야 했다. 안전 담당자는 큰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나를 보며 뻔한 얘기들을 했다. 운전 시 주의 산만 요소를 배제하고, 주차할 때는 안 보이면 내려서 확인하라는 식이다. 딱히 무슨 다른 얘기를 하겠는가. 나도 질세라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가끔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에서는 상대가 얘기할 때 시선을 마주 봐야 한다. 안 그러면 뭔가 켕기는 게 있거나 자신을 무시해서 얘기를 안 듣는다고 생각한다.

 

최근 받은 2장의 티켓으로 내 FMCSA 벌점이 30점이라고 했다. 따로 벌금을 낸 것은 없다. 이직(離職)할 때 평가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는 있겠다. 이건 시간이 지나야 없어진다. 6개월마다 갱신을 한다고 하니 1~2년 정도 지나면 깨끗해지지 않을까 싶다.

 

본사에 온 김에 신분증도 바꿨다. 회사 신분증은 주유카드 역할도 한다. 이번에 마스터카드 기능이 들어간 게 새로 나왔다. 일반 신용카드처럼 여느 매장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안 바꿔도 되지만 새 기분으로 시작하고 싶어서 교체했다. 디자인이 달라졌는데 카드 번호 숫자가 늘어났고 읽기가 쉽지 않다. 무슨 디자인을 이따위로 했냐.

 

식당에서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고 5시에 본사를 출발했다. 빈 트레일러가 없어서 140마일 떨어진 월마트 DC에서 받기로 했다.

 

월마트에 도착해 트레일러를 연결했다. 내부가 더러워서 14마일 떨어진 블루비콘에 와쉬아웃하러 갔다. 와보니 전에 하루 쉬었다 갔던 트럭스탑 옆이다. 9시가 넘어도 주차공간 여유가 많았다. 여기 식당도 괜찮은 편이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자. 다음 화물은 내일쯤에나 들어오려나.

 

이제 더는 위험순위가 올라갈 일은 없을 것이다. 한 건의 교통위반이나 크리티컬 이벤트도 기록하지 않으리라. 무사고는 당연하고.

 

 

이럴 거면 뭐 하려고

 




1211-1.jpg


 

어제 왔던 미드웨스트 트럭플라자에 있다. 계속 있었던 것은 아니고 본사에 다녀왔다.

 

화물이 들어오지 않아 계속 쉬었다. 책도 읽고 수도쿠 게임도 하고. 오후 3시에 브라이언에게서 전화가 왔다. 본사로 다시 들어오란다. 한계 중량을 넘는 화물이 있어서 라이트웨이트 트럭이 필요하단다. 이럴 거면 어제 나를 왜 여기까지 보냈나. 여기까지 왕복한 거리 계산 안 해주기만 해봐라.

 

본사에 도착하니 야드가 꽉 찼다. 어제는 한산하더니 주말 저녁이라고 많은 트럭과 트레일러가 들어왔다. 빈 트레일러를 내려놓을 곳이 없어 본사 부지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Lower Yard까지 가서 주차했다.

 

뉴저지 바인랜드에 월요일 정오까지 배달인데 이미 늦었다. 처음부터 여기 있다가 화물을 받았으면 오늘 밤을 새워서라도 달려가면 시간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본사까지 오느라 2시간 넘게 사용했기 때문에 시간이 모자란다. 월요일 저녁이나 화요일로 약속 시각을 다시 잡아야 할 것이다.

 

이왕 늦었으니 화장실도 이용하고 저녁 식사도 하고 가기로 했다. 샤워도 하려고 했으나 빈 샤워실이 없었다. 어제 했으니 내일 가다가 하면 된다.

 

가져갈 트레일러를 나가면서 저울에 달아보니 총중량이 78,240파운드였다. 8만 파운드를 넘기면 안 된다. 트레일러 바퀴에 약 1천 파운드가 더 걸렸는데 34,000을 넘기지 않았으니 괜찮다. 연료가 절반 정도 들었는데 내일 가다가 가득 채우면 차이는 줄어들 것이다. 현재 핀이 8번 홀에 걸렸는데 9번 홀이면 가장 적절하다. 내일 가다가 기회 봐서 옮겨야겠다.

 

철야 운전을 해도 시간을 맞출 수 없으니,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는 게 좋다. 어제 안전 교육에서도 자정부터 오전 6시 사이는 가급적 운전을 피하라고 했다. 신체 리듬이 수면 주기에 들기 때문이다.

 

10시 넘어 주차할 수 있는 트럭스탑이 이곳이다. 여기도 어제보다 트럭이 많다. 1시간 더 늦게 오기도 했지만 역시 주말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내일은 최대한 달려 600마일을 주파하고 남은 거리를 400마일로 줄이는 게 목표다. 배달을 마치고 나서도 시간이 좀 남아 있어야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쉽다.

 

이재선 형님은 오리건에서 텍사스로 가는 중이라 했다. 밤운전이 무척 힘들다고 했다. 지금이 가장 힘들 때다. 몇 주 더 지나야 몸이 적응한다. 트레이너가 무진장 장거리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재선 형님은 나는 아직 가본 적 없는 오리건을 첫 운행에 가더니 이번에는 텍사스다. 동부에서 서부로 남부로 종횡무진이다. 나도 TNT 기간에 더 넓은 반경을 다니기는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뉴욕까지 대륙횡단을 했으니 말이다.

 

어제 재선 형님은 졸려서 도저히 안 되겠다며 차를 세우고 잤다고 했다. 나도 TNT 기간에 그랬어야 했는데 무식하게 이를 악물고 다리 꼬집어가며 참고 운전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다. 졸리면 자는 게 최고다.

 

재선 형님과는 지난 추수감사절 다음 날 부부 동반으로 저녁 식사를 같이했다. 형수님은 우리 부부 또래였다. 서른 살 아저씨가 갓 유학 온 23살 아가씨를 잡았다. 그 당시 재선 형님은 장사해서 돈이 많았다고 한다.

 

재선 형님네는 우리집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다. 같은 동네 사람이 같은 트럭 회사에 다니고 페이스북은 그걸 알아서 친구로 연결해주고 신기한 세상이다.

 

재선 형님은 PSD 과정 때 힘들어 때려치울까 생각도 했는데 내가 관심 가지고 안부를 물어준 게 무척 힘이 됐다고 고마워했다.

 

 

셀라돈 파산

 

 

 

120819 셀라돈 파산.jpg

 

오늘은 작정하고 달렸더니 621마일을 왔다. 내 하루 최고 기록일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600마일을 넘기는 날이 없다. 제한 최고 속도가 62마일이니까. 내일 오후 4시까지는 배달처에 도착할 수 있겠다. 지금은 오하이오 벨몬트에 있다.

 

며칠 전에 제법 큰 회사인 셀라돈(Celadon)이 파산(破産) 절차에 들어갔다. 2년 전부터 위태롭다는 얘기가 나오더니 이번에 결국 파산했다. 졸지에 트럭커 3천명이 길에서 오갈 데 없게 됐다. 인디애나폴리스에 본사를 둔 셀라돈은 1985년에 설립했다. 경쟁회사에서 이들의 귀향과 재취업을 돕기 위해 나섰다. 트럭 회사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파산이라고 한다.

 

TV 리얼리티 쇼, 아이스 로드 트럭커(Ice Road Truckers)에 나왔던 회사도 얼마 전 누적된 적자를 견디지 못해 파산했다. 내가 트럭 드라이버가 된 동기 중 상당 부분은 IRT에 있다. 캐나다 북부 다이아몬드 광산에 얼어붙은 호수 위로 물자를 나르는 일이다. 호수가 얼면 배가 다니지 못해서 트럭으로 나른다. 목숨 걸고 얼음 위를 달리는 모험에 매료됐다. 물론 내가 실제 트럭 운전을 시작하고 겨울을 지나 보니 아이스 로드 트럭킹에 대한 의욕이 많이 꺾였다. 그래도 한 시즌 정도는 도전해 보고 싶다. 히스토리 채널에서 2007년 시작한 아이스로드 트럭커는 큰 인기를 끌어 시즌 11까지 만들어졌다.

 

올해 트럭 운송 회사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화물이 줄어서인데 중국과의 무역 전쟁 영향을 원인으로 꼽는다. 주기적인 침체기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내년도 경제 불황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트럭 물류 회사의 불황이 경제 침체로 이어진 사례가 있지만 안 그랬던 때도 있다.

 

트럭회사는 내가 트럭운전을 시작한 작년이 최고 성황기였다. 그때 많은 회사에서 사람을 뽑고 장비를 사들였다. 올해 화물 감소로 운임까지 추락하자 작은 회사들은 자금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는 사례가 늘었다.

 

 

노 브로콜리

 


12119-1.jpg

 

밤을 잘 보냈다. 새벽에 누가 문을 두드렸다. 히스패닉 직원이다. 그는 심플하게 물었다. 브로콜리? 노 브로콜리? 나도 심플하게 답했다. 노 브로콜리. 그 이후론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8시에 일어나 슬슬 준비해서 아침 먹고 9시에 출발했다. 좀 더 일찍 출발했어야 했다. 2시간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변수가 생겼다. 트럭 세차를 하는 근처 트럭스탑에 들렀다. 입구에서 기다리던 트럭 운전사가 말했다. 세차 직원이 10시에서 10시 반 사이에 도착한다는군. ? 11시 약속인데. 기다릴 수 없다. TA 트럭스탑에 먼저 가기로 했다. 그 옆에 트럭 세차장이 있다.

 

TA에 도착해 세차부터 하고 주유도 했다. 서둘렀지만 11시까지 발송처에 가기는 어렵다.

 

1110분에 발송처에 도착했다. 항만 터미널인데 출입료를 받는다. TWIC카드가 있으면 10달러, 없으면 25달러다. TWIC카드 만들고 처음 사용했다.

 

내가 가져갈 화물은 델몬트 바나나다. 터미널 내부는 크고 복잡했다. 이곳은 짐을 싣는 동안 드라이버가 닥 내부에서 기다리도록 했다. 덕분에 지게차 기사들이 일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여러 지게차가 이리저리 오가는데도 서로 안 부딪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바나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맛은 딴판인 플랜테인도 몇 팰릿 실었다.

 

오후 130분에 발송처를 나왔다. 배달 약속은 새벽 215분이다. 오전 9시에 시작했으니 오후 11시면 끝난다. 원래는 일찍 도착해서 근처 트럭스탑에서 8시간을 쉬고 배달처로 갈 계획이었다. 비도 내리고, 국도 구간에서 정체로 두 시간가량 걸린 바람에 글렀다.

 

830분에 발송처에 도착했는데 역시나 입장이 안 된다. 월마트는 엄격하다. 새벽 1시에 오란다. 벤처 스트릿에 다른 트럭이 서 있길래 나도 그쪽에 댔다. 여기 세우면 티켓 받는다던데 밤이라 괜찮은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새벽 130분에 일어나 출입구로 가니 트럭 줄이 길게 늘어섰다. 20분 걸려 입장했다. 지난번 내린 눈이 아직도 쌓여 있다. 눈더미를 피해 후진하여 101번 닥에 댔다. 월마트는 트럭과 트레일러를 분리하라고 하는데 겨울에는 트럭을 트레일러에 연결한 상태를 유지하라고 했다. 그게 더 안전한 모양이다.

 

새벽 4시 서류를 받아 나왔다. TA 트럭스탑에 갈까 했으나 공간이 좁다는 얘기가 있다. 밤에 좁은 트럭스탑은 안 가는 게 상책이다. 공연히 사고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다. 아까 세웠던 벤처 스트릿에서 아침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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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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