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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정신세계수행자, IT전문가, 영화감독, 연극배우, 라디오방송기자 등 다양한 인생 여정을 거쳐 현재 뉴욕에서 옐로캡을 운전하고 있다. 뉴욕시내 곳곳을 누비며 뉴요커들의 삶을 지척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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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vs 사기꾼

홀로 외딴 곳에
글쓴이 : 황길재 날짜 : 2018-11-02 (금) 07:52:52

 


101418 홀로 외딴 곳에.jpg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오후 늦게 해가 잠깐 나오기도 했지만 대체로 비 또는 흐렸다.

 

오늘도 종일 달렸다. 가는 중에 다음 화물 예고가 들어왔다. 배달처에서 다른 화물을 받아 오클라호마 주로 간다. 내게 남은 시간을 계산해보니 딱 들어맞는다. 70시간 중 7시간 남았다. 오늘 배달처까지 가면 3시간 조금 더 남을 것이다. 내일 들어오는 시간은 3시간 남짓. 합치면 7시간이다. 모레 8시간 가량 들어온다. 그 시간들을 다 모으면 기한 내 배달할 수 있다.

 

테네시 주는 워낙 좌우로도 넓어서 하나의 주에 시간대가 둘로 나뉜다. 동쪽은 동부시간, 서쪽은 중부시간이다. 중부시간으로 6시가 안 돼 배달처에서 1마일 조금 더 떨어진 TA 트럭스탑에 도착했다. 120대 가량 주차 공간이니 작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내쉬빌을 너무 우습게 봤나 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주차 공간이 없다. 미리 예약하는 유료 주차공간만 조금 남았다. 그러면 일단 배달처에 가서 트레일러를 내려놓고 밥테일로 나와 주차공간을 찾아봐야겠다.

 

그런데 배달처가 문을 닫았다. 주말에는 일을 안 한다. 막다른 길이라 돌려 나갈 곳도 없다. 정문 앞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면 간신히 나갈 수는 있어 보인다. 공연히 무리하다 도랑에라도 빠지면 큰 일이다. 여기서 내일 새벽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리퍼 연료도 안 채웠다. 아까 TA에서 넣고 왔어야 했는데. 주차 공간이 없는데 당황해서 미처 생각을 못 했다. 내일 게이트 열면 마당으로 들어가 돌려 나오면 된다.

 

전화위복이랄까. 덕분에 혼자 조용한 곳에 주차하고 쉰다. 주차금지 푯말도 없고 막다른 길이라 다니는 차량도 없다. 내일 아침 출근 시간이 되야 차가 다닐 것이다. 차량 통행에 지장 없이 갓길에 댔다. 다른 회사의 것으로 보이는 선박용 트레일러 몇 대가 길 양쪽으로 놓여 있다. 샤워하려던 계획 말고는 그다지 차질 빚을 게 없다. 배달처 정문 앞은 어쩌면 최고의 주차공간이다.

 

밥을 잔뜩 지어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사기꾼 vs 사기꾼

      

 

      

밤새 잘 자고 일어나 배달처 정문으로 들어가 마당에서 트럭을 돌려 나왔다. 가까운 주유소로 가 리퍼 연료를 채우고 돌아왔다. 배달을 간 곳에서 바로 새 화물(貨物)을 받으니 편하다.

 

오늘 내가 가진 시간은 7시간이다. 마침 5시간 거리의 러브스 트럭스탑에서 주유를 하도록 정해졌다. 좋아 오늘은 거기까지 가서 쉰다. 절반 정도 갔을 때 트럭 파킹장에서 쉬며 아점을 먹었다. 러브스 트럭스탑에 도착하니 2시 조금 넘었다. 공간은 널널했다. 역시 일찍 낮에 끝내는게 좋다. 밝은 대낮이니 양쪽 트럭 사이 공간에 대는 것도 문제 없다. 밤낮의 시야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샤워하고 빨래도 할 참으로 챙겨나갔다. 샤워하고 면도하고 나와서 빨래를 하려니 이곳엔 세탁실이 없다. 세탁실이 트럭스탑이라고 다 있는게 아니구나. 이곳은 샤워실도 4칸이 전부다. 빨래는 내일 다른 트럭스탑을 찾아봐야겠다.

 

매점에서 직접 튀기는 닭과 감자가 맛있어 보였다. 참아야 하느니라. 가뜩이나 식탐이 많은데 트럭스탑 음식에 맛 들였다가는 뚱돼지를 면치 못한다. 이번에 집에 갔을 때 체중을 달아보니 81Kg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트럭 일 시작한 이후로 그 정도에서 계속 유지된다. 부모님과 가끔 화상통화를 하는데 지금 모습이 훨씬 좋다고 하신다. 예전에 택시할 때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직접 말은 못 했지만 못나진 인물에 충격을 받았다고 이제서야 말씀하신다. 전체적인 건강도 지금이 더 낫다. 트럭이나 택시나 장시간 앉아 운전하는 일인데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운전석 공간 여유가 많다는 것과 힘들 때 침대에 누울 수 있다는 차이인가? 택시 운전석은 비좁다.

 

오늘 남은 2시간과 내일 들어오는 8시간을 합하면 10시간이다. 배달처까지 갈 수 있지만 약속 시간이 모레 아침이다. 내일도 한 7시간 운전하고 일찌감치 편한 트럭스탑을 찾아 들어가면 된다. 떨어진 부식(副食)을 보충하기 위해 월마트에 들를 필요는 있다. 가는 경로상 1시간 거리에 월마트가 있고 오전 6시 개점이다. 그러니까 내일 오전 5시 출발하면 된다.

 

카톡과 메신저로 내게 연락을 해오는 외국인이 두 명 있다. 근래 2주 정도 사이의 일이다. 직접 얼굴을 못 봤으니 인종도 성별도 나이도 모른다. 프로필 상에는 둘 다 여성이다. 메신저로 연락해 오는 여성(이라고 주장하는)은 캐서린 핫산이다. 필리핀 태생으로 마닐라에서 사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생긴 것이 서구인이다. 이쁘게 생겼고 사진만 봐서는 배우나 모델이다. 게다가 핫산은 무슬림 성씨다. 직업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라고. 그래서 짐짓 마닐라에 아는 사람이 있는 척하며 사업에 도움을 주겠다고 떠봤다. 그랬더니 갑자기 스토리가 바뀌었다. 자기는 지금 시리아에 있다고. 자기 남편이 시리아 내전 통에 죽어 과부가 됐으며 다마스커스 난민촌에 산다고 했다. 핫산은 남편 성이란다. 여기서 나가고 싶으며 도움이 필요하단다. 필리핀에 가족은 없냐? 나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럼 대학은 어떻게 갔는데? XX(이름 기억 안 남)이 도와줬다. 그가 나를 입양했는데 나는 고아원에서 지냈다. (뭔 개소리냐?) 나는 그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는 지금 어디 있는데? 죽었다. (그렇겠지) 그래 그럼 도움을 줄테니 우선 너가 진짜인지 확인 좀 하자. 시리아 여권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합성인지 조작인지 알 길이 없다. 여권 사진은 보통 귀가 나오는데 귀가 덮힌 것으로 봐서 가짜 같다. 화상통화가 가능하냐 물었다. 도서관 컴퓨터라 전화 통화나 화상통화는 안 된다고 우긴다. (시리아 시간 밤 12시에 도서관 컴퓨터를?) 그럼 짧은 비디오를 찍어서 보내봐라. Hello Phil이라고 인사하며 말이다. 그랬더니 보안이 심해서 안 된다며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 지인의 핸드폰을 빌려서 사진을 찍어 보내겠다고 했다. 다음날 사진이 왔는데 그냥 셀카다. 배경이 어딘지 알 수 없다. 옷도 계절에 맞지 않는다. 나는 장난하냐며 난민촌인지 확실히 알 수 있게 찍어서 보내라 했다. 아니면 가짜로 알겠다며. 내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했다. 며칠 후 다시 사진이 왔다. 해변인지 모래밭인지 모를 곳에서 찍은 전신 사진이다. 몸매는 좋네. 거참 내 스타일일세.

 

또 한 명은 66년생, 51세 힐러리 대니얼이다. 텍사스 휴스턴에 살며 석유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이 여자도 (주장으로는) 과부다. 특이하게도 카톡으로 연락하자며 아이디를 알려달란다. 그때 이후로 카톡으로 연락이 온다. 특이하게도 한글로. 존댓말과 반말이 혼재하며 어색한 문장은 딱 봐도 구글 번역기 수준이다. 미국인이라니 나는 영어로 질문을 했다. 답변이 오는데 내 영어 수준과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인이 쓰는 영어가 아니다. 그후로 매일 한두 번씩 좋은 글귀를 보내온다. 물론 어색한 문장으로. 수준을 맞추기 위해 나도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가며 대꾸를 해줬다. 무슨 사심이 있어서가 아니고 심심해서 그랬다. 무슨 꿍꿍이로 그러나 궁금하기도 했다. 한국을 좋아하는 한류팬인가? 문장 내용이 한국 시간대에 맞춰져 있다. 가령 아침에 좋은 밤 보내라는 식의 문장이 온다. 저녁에는 간 밤에 잘 잤냐 좋은 하루를 시작하라는 식이다. 그래서 나 말고 몇 명하고 메시지 주고 받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오직 나하고만 연락한다며 왜 묻느냐고 반문했다. 오늘 갑자기 중요한 할 얘기가 있다며 다량의 문장을 보내왔다. 자기는 식도암으로 3개월 밖에 못 살며 병원에 있다고 했다. 유감이네 천국에 가길 빌어줄게. 자기한테 남편과 공동명의로 터키 은행에 넣어둔 3백만 달러가 있다. 이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 그럼 너 변호사 통해서 그 일을 진행해. 내 답변에는 아랑곳없이 계속 문자가 들어온다. 자기 친척은 못 믿는다. 요 며칠 너와 대화를 해보니 믿을 수 있는 좋은 사람이더라. (내가 뭐라고나 했나?) 너한테 다 줄테니 40%는 쓰고 60%는 자선단체에 기부해다오. 주소와 연락처 등 신원사항을 알려달라. 너가 터키에 갈 필요도 없다. 내 변호사가 연락할 것이다. 그래 그럼 너 변호사랑 직접 통화할게 연락처 알려줘. 너 병원 주소 알려주면 휴스턴 사는 내 친구한테 꽃 들고 문병가라고 할게. 이 일은 비밀리에 해야한다. 다른 사람이 알면 큰 일 난다. 정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장면이다. 화면을 캡처해 놨어야 하는데 짜증나서 그냥 지워버렸다.

 

운전하며 생각했다. 얘네들을 알라신의 이름으로 저주해버릴까 생각하다, 알라신이 무슨 죄냐? 그리고 얘네들이 무슬림인지도 모르면서 알라한테 부탁하는 것은 인종차별아닌가? 좋은 생각이 들었다. 얘네들을 연결해주자. 한 명은 도움이 필요하고, 한 명은 도움 주기를 바라고 있으니 천생연분(天生緣分)이다. 그래 나는 중간 메신저 역할. 그래서 핫산에게 연락했다. 너에게 도움을 줄 사람을 찾았다. 힐러리를 채팅방에 초대하마. 좋단다. 초대했는데 답변이 없다. 힐러리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 여자가 도움이 필요하다니 너의 돈을 줘라. 좋은 곳에 쓸 것이다. 아직 힐러리에게선 답이 없다.


101418 홀로외딴곳에.jpg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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