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인줄 알았던 연습시간이 오전 6시였다. 씻지도 않고 달려가 연습을 했다. 직선 후진, 평행 주차, 오프셋 후진을 간간이 복습하며 연습을 거의 못 했던 Alley Dock 위주로 했다. 이제 조금 감이 잡히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10시에는 다른 트럭을 빌려 트레일러를 달지 않은 밥테일 상태로 도로주행을 나갔다. 제한 속도보다 너무 늦게 달린다고 Nathan이 계속 재촉했다. 대체로 어제 보단 양호해졌지만 다운 쉬프팅은 여전히 문제였다. 나중에 끝날 무렵에야 다운 쉬프팅의 타이밍과 엑셀레이터 누르는 강도 사이의 감을 잡았다. 주행은 큰 문제 없을 것 같다. Nathan도 가장 안심하는 부분이 프리트립이고 그 다음이 도로 주행이다.
다시 연습장으로 돌아와서 알리닥을 연습하는데 자꾸 정확하게 들어가지 않고 여러 번 수정을 필요로 했다. Nathan이 유심히 보더니 후진 시 기준이 되는 각도를 조금 작게 잡고 간격을 그 이하로 유지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정확하게 들어갔다. 시간이 다 돼 다음 사람에게 트럭을 넘겨주고 나왔다. 그런데 나는 아직 약간 미진하다. 알리닥만 주로 하다보니 평행주차나 오프셋 때 어떻게 했는지 확신이 부족했다. Nathan에게 시험 보기 전에 연습은 끝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이 정도면 충분하단다. 나는 한 번 정도 더 연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Nathan이 시간표를 보더니 오후 6시에서 8시로 연습시간을 잡았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트럭에서 한숨 낮잠을 잤다. 중간에 일어나 기억나는대로 후진 공식표를 써보았다. 나중에 실제로 해 보니 빠진 것이 있었다.
비가 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천둥도 쳤다. 일기예보에는 6시에는 비가 그치는 것으로 돼있다. 비가 와서 사람들이 연습을 중단했는지 연습장이 비었다. 5시 즈음에 Nathan이 지금 가서 연습하자고 한다. 비는 그친 상태다. Nathan은 우의를 챙겨 입었다. 풀사이즈 트럭에 시험용 트레일러를 달고 연습했다. 거의 한 80% 정도는 도달한 것 같았다. 각 후진 시 필요한 핸들 조작법과 멈추는 위치는 다 외웠다. 중간에 폭우(暴雨)가 쏟아졌다. 나는 차에 타고 있었지만 창문으로 비가 들이쳐 한쪽이 젖었고 간간이 위치 확인을 위해 차에서 내릴 때마다 비를 맞았다. 좀 쉬었다가 하자니까 계속 하잖다. 비를 맞으며 두 남자는 최선을 다했다. 중간에 비는 그치고 하늘이 개기 시작했다. 7시쯤 되니까 Nathan은 이제 충분한 것 같다며 그만하자고 한다. Nathan은 우의를 입었어도 모자와 하의는 홀딱 젖은 상태였다. Nathan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내가 더 연습을 하고 싶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수고해주다니. 우리는 젖은 옷을 옷걸이에 걸어 넌 다음 밀레니엄 빌딩에 가서 샤워를 했다. 다시 트럭으로 돌아와 후진 공식을 정리한 후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시험은 내일 오전 6시 30분 집결이다. 알파벳 순으로 한다니까 나는 비교적 앞쪽에 배치될 것이다. 최선을 다 했지만 100% 완벽한 것은 아니므로 어느 정도 행운도 필요하다. 시험이 끝나면 DMV에 들러 면허증을 받고 Nathan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월요일 저녁이나 화요일 오전에 와서 하루 종일 서류 작업을 하고 필요한 교육을 받은 후 수요일 쯤 다시 일을 나갈 예정이다. 뉴욕에는 언제쯤 가게 될까?
Testing Day
무슨 변명을 하겠는가. 내 실력이 모자라 떨어진 것을. 연습 중 겪어 본 일이 없는 우발적인 사고였지만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었다. 단지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 내 잘못이다.
6시 30분 집결이지만 우리는 5시에 일어나 5시 30분에 갔다. 일찍 가는 것은 항상 좋은 일이다. 당연히 우리 밖에 없었다. 조금 있으니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6시 30분에 면허증과 실기시험 지원 서류를 확인하고 시험 순서도 발표했다. 이제는 이름 순이 아니고 무작위라고 한다. 응시자는 16명이었다. 나는 네 번째였다. Nathan이 트럭을 찾아 트레일러와 연결하고 준비를 해줬다. 어제 비 맞으며 연습했던 그 트럭이었다. 내 순서가 오기를 기다려 트럭을 시험장 코스에 대놓고 마지막 In cab inspection 연습을 했다. 트럭을 앞으로 몰고 가 하는 부분은 생략했다. 이미 차량을 선에 맞춰 대 놓았으므로. 전에도 수 없이 연습했던 부분이다. 문제는 없다.
날씨는 엄청 추웠다.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體感溫度)는 영하였다. Nathan은 건물 대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혼자 트럭에서 시험관이 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은 9시 30분을 넘어갔다. 시험관이 오자 나는 트럭에서 내려 인사를 했다. 그는 편하게 대해 주었다. 주의 사항을 들은 후 프리트립 테스트를 했다. 엔진파트, 커플링, 라이트 모두 문제 없이 넘어갔다. 이제 인캡 인스펙션 부분이다. 시험관은 조수석에 탔다. 연습한 대로 했다. 트레일러 브레이크와 파킹 브레이크를 테스트하고 차를 서행시켜 세우는 서비스 브레이크 테스트도 마쳤다. 시동을 껐다. 여기까지는 문제 없었다.
에어브레이크 테스트를 하려니 공기 압력이 부족했다. 시동을 다시 켜서 압력을 높여야 한다. 압력을 빨리 높이려면 액셀을 좀 밟아야 하는데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자니 기어가 3단에 들어가 있고 차가 앞으로 움직인다. 클러치를 계속 밟고 있으면 시동은 꺼지지 않지만 차가 밀린다. 할 수 없이 파킹 브레이크를 걸었다. 기어는 중립으로 놓고 공기 압력이 충분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다시 시동 끄고 기어 넣고 파킹브레이크를 풀었다. 그런데 이때 트레일러 브레이크 밸브가 튀어 나왔다. 종종 있는 일이다. 이를 감지(感知)하지 못했다. 3단계로 진행되는 에어 브레이크 테스트를 진행했다. 1단계, 2단계 끝내고 두 브레이크 밸브가 튀어 나와야 하는 3단계에 가서야 이를 발견했다. 수정하고 진행했다. 이것이 실수였다. 1단계, 2단계에서도 트레일러 브레이크가 들어가 있어야 했던 것이다. 1, 2단계는 밸브와 상관 없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산이었다. 여기서 처음부터 다시 하겠다고 했으면 됐다. 나는 테스트를 마쳤다고 얘기했다. 결과는 Fail. 시험관은 친절했지만 절대 봐주는 것은 없었다.
시험관은 Nathan에게 실패한 이유를 설명해줬다. 다른 부분들은 아주 잘했다고, 한 부분을 실수해서 낙방이라고. 다른 부분들은 실수해도 벌점만 받고 말지만 에어브레이크는 하나라도 실수가 있으면 자동 낙방이다. 내일 다시 시험 일정을 잡았다.
Nathan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믿고 자신했는데. 더구나 오늘은 집에 가서 전처가 돌보고 있는 애들을 데려오기로 했다. 또 한 번에 붙으면 트레이너와 학생 모두에게 보너스가 주어진다. 그런데도 Nathan은 오히려 나보고 기죽지 말라고 오히려 격려해줬다. 면허증에는 몇 번 떨어졌는지는 기록되지 않는다면서. 면허 받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일이라면서. 나도 한 번 떨어지고 나니 오히려 부담이 줄었다. 하지만 가장 자신했던 부분에서 떨어지니 속상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렇게도 순조롭지 못하니 트럭 일이 정녕 내가 할 일이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첫 번째 낙방의 기록을 남긴 것이 운전면허 실기시험이다. 당시 나는 학원에서 가장 촉망받는 학생이었고 모두가 나의 합격을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나는 첫번째 굴절 코스에서 어이없게도 탈락했다. S자 후진도 아니고 기본 중의 기본인 굴절 코스라니. 그때와 같은 일이 30여년이 지난 지금 재현됐다.
기분전환을 위해 체육관에 가서 30분 정도 트레드밀에서 천천히 걸으며 책을 읽었다. 로비 소파에 앉아 책을 계속 읽고 있자니 아침에 시험장에서 만난 사내가 말을 걸었다. 자기도 어제 에어테스트에서 실패해서 오늘 다시 보는 것이라고. 오늘은 프리트립 통과하고, 직선 후진, 오프셋 통과했는데 알리닥에서 떨어져 내일 다시 본다고 한다. 그는 실망한 기색이 없었다. 내일이 있다고. 그래 이제와서 돌아갈 수는 없다. 떨어지면 붙을 때까지 보면 되는 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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