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트럭스탑을 출발했다. 출발 전에 리퍼 연료를 점검하니 절반과 쿼터 사이에 눈금이 있다. 가다가 중간에 넣으면 되겠지.
3시간 달리고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 다시 출발해 달리고 있자니 퀄컴 문자 메시지가 자꾸 들어온다. 달리는 중에는 문자 메시지를 읽을 수 없고 대신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 리퍼 연료 게이지가 낮다는 내용이다. 내가 생각한 트럭스탑에 들러 리퍼 연료도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리퍼 연료가 3갤런 남았다는 메시지가 또 들어왔다. 냉동 모드라 연료를 많이 쓰나 보다. 1시간에 1갤런은 쓰는 것 같다. 이대로라면 예정한 주유소 가기 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 가까운 주유소로 향했다. 플라잉 J가 가장 가까웠다. 연료를 주유하자니 역시 승인이 안 난다. 이런 경우 디스패처나 연료부서에 직접 연락해 내 연료카드를 풀어달라고 해야한다. 디스패처에게 문자를 보냈으나 묵묵부답(黙黙不答). 연료부서에 전화했다. 전에는 주유소에서 바로 전화하면 풀어줬는데, 이번에는 위치가 어디며 어느 주유소로 갈 거냐고 묻는다. “여기가 어디지? 잠깐만 확인 좀 하고.” 그쪽에서 먼저 확인했나보다. 어디냐고 묻는다. “맞다 거기다.” “얼마나 넣을 거냐?” “3갤런 남았으니까 27갤런 넣는다.” 잠시 후 새벽 1시까지 30갤런 넣을 수 있다는 문자가 왔다. 주유 다 하고 나니까 야간 디스패처에게서도 문자가 왔다. 카드 열었다고. 참 빠르기도 하셔라.
오늘도 자정 무렵이 되니 졸렸다. 잠깐만 자고 가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밤에는 트럭스탑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자리가 날 확률이 더 높다. 잠깐 쉬었다 출발하는 트럭들 때문이다. 스무 대 이상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휴게소의 경우 얘기고, 작은 휴게소는 10시간 휴식을 취하는 트럭으로 자리가 대개는 없다. 1시간만 자야지 했는데 거의 3시간을 잤다. 4시간 더 달릴 수 있다. 가다보니 또 졸렸다. 길 가에 세우고 커피를 끓였다. 잠깐 쉬었기 때문에 예정한 휴게소까지 가려면 몇 분이 모자랄 것 같았다. 오프듀티 드라이브로 가는 방법은 있다. 그 전에 100대 규모의 트럭스탑으로 갈 수도 있다. 가다가 선택하기로 했다.
배달지에 약 200마일 남겨둔 시점에서 트럭스탑으로 가기로 했다. 더 갈 수도 있지만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다. 오전 6시, 트럭스탑은 주차 공간이 많았다. 뒷편에 후진 주차를 하다 앞쪽에 한칸 비었다. 그쪽으로 들어가 주차했다. 아침 햇살이 정면으로 들어와 앞쪽과 양측 유리창에 프라이버시 커튼을 치고 잠을 청했다.
정오가 지날 무렵 일어나 브런치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러브스 샤워 포인트가 1회 있다. 화장실도 이용할 겸 샤워를 했다. 지금 있는 일리노이는 중부시간대지만 미시건은 동부시간대다. 11시 약속이지만 여기 10시나 마찬가지다. 9시까지 간다고 치면 5시 전에 출발하면 된다. 도착 전에 리퍼 연료를 다시 채워야 할 것이다.
다음 화물 예고가 들어왔다. 오늘 밤에 받아 월요일 오전까지 세 곳을 들른다. 메인까지 갔다가 보스턴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적어도 화요일에는 집에 가야 하는데. 글렌에게 문자를 보냈다. 코스는 좋은데 나 화요일 오후에는 집에 도착해야 한다. 월요일 배달 끝나고 바로 집으로 가라 했다. 그래도 되나? 트레일러 끌고 집에 갈 생각도 않았는데. 나로서야 최상이다. 집 근처에 주차할 곳만 있으면. 집 주변에 트레일러 트럭이 주차한 것을 몇 번 보기는 했다. 집 사람 더러 자리 맡아 놓으라고 해야겠다.
리파워와 트럭커 비정상회담
트럭스탑에서 오후 4시 30분에 출발했다. 시간 여유가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시간대가 바뀌면서 1시간을 까먹었고, 시카고 인근의 지독한 교통정체(交通停滯)를 예상 못 했다. 게다가 배달지에 도착하니 리퍼 연료가 ¾ 수준 이하로 떨어져 있어 가득 채워오라는 얘기를 들었다. 중간에 트럭스탑에 들렀어야 했다. 17마일 거리에 있는 트럭스탑에 가 리퍼 연료를 넣고 왔다. 가져간 트레일러 내려 놓고 빈 트레일러를 찾아 연결했다. 내부를 보니 깨끗한 편이었다. 나무 조각 몇 개만 치웠다.
다음 발송처는 약 20마일 정도로 가까운 편이다. 그래도 도착했을 때는 자정을 훌쩍 넘겼다. 드랍 앤 훅의 경우 발송처 도착 시간은 엄격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배달 시간이다. 입구 초소에서 트레일러 내부를 보더니 더럽다고 했다. 가뜩이나 늦었는데 어디가서 다시 세척을 하고 와야 하나? 경비는 트레일러가 더럽다는 서류에 사인하라고 했다. 자체 세차 시설이 있다고 했다. 비용은 나중에 회사로 청구되나 보다. 다시 운송할 트레일러로 연결했다. 배달지가 세 곳이라 서류가 복잡했다. 트레일러 점검하고 서류 검토하느라 한 시간 이상 걸렸다. 서류를 받고 보니 1차 배달지 약속 시간이 내일(29일) 오전 9시다. 불가능한 시간이다. 메인주까지 천 마일을 그 시간 내에 갈 수 없다. 10시간 휴식 규정 때문이다. 어제 오전에 받았으면 가능했을 것이다. 2차 배달지는 150마일 거리인데 그 다음날(30일) 오전 배달이다. 낮에 디스패처에게 약속 시간 바꿔달라고 연락해야겠다.
중간에 러브스 트럭스탑에 들렀다. 여기서 50갤런 가량 보충하고 핏스톤 터미널에서 가득 채우라는 지시다. 새벽 3시인데 트럭스탑에 자리가 많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아예 여기서 자고 갈까? 주차까지 마쳤다가 다시 생각을 바꿨다. 여유롭지 않은 일정인데다 갈 길이 멀다. 최대한 갈 수 있는데까지 가자. 아침 7시까지는 운전할 수 있다.
I-90 고속도로 오하이오 주의 한 휴게소에 들어섰다. 꽤 큰 규모다. 당연히 자리 여유도 많았다. 주차하고 잠을 청했다. 자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9시다. 주말 담당 디스패처였다. 리파워를 얘기한다. 나한테는 뉴욕 방향으로 가는 다른 화물을 주겠단다. 잠시 후 다른 전화가 왔다. 여자 목소리다. 내 위치를 묻기에 구글맵 화면을 캡처해 보내줬다. 두어 시간 걸린다했다. 정오 쯤 도착하리라. 잠은 다 깼다. 아침 만들어 먹고, 화장실 이용하고, 식수 보충하고, 차량 점검하며 시간을 보냈다. 히마찰의 엔진 오일 레벨이 낮았다. 오일을 많이 태우나보다. 이번에는 ¼ 갤런 정도만 넣었다. 히마찰의 총 주행거리는 이제 30만 마일을 넘겼다.
리파워할 드라이버와 만났다. 나이는 나보다 많아 보였는데 실제 나이는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백인들은 아시안보다 좀 더 들어보이는 경우가 많으니. 서로 트레일러를 바꿔 연결하고 점검했다. 그녀가 끌고온 트레일러는 세척을 했는지 깨끗했다. 그 트레일러는 뒷 날개가 펴지지 않는다고 했다. 상관없다. 뒷 날개가 연비 향상에 좋다지만 그리 실감은 못 하겠다. 그녀는 내 트레일러 바퀴에 못이 2개나 박혔다고 불평했다. 트럭스탑에 들러 수리하고 가야 한다면서. 밤이라 못 봤을 수도 있고 못 박힌 자리가 바닥면에 있어 못 봤을 수도 있다. 그리 큰 못도 아니고 나 같으면 그냥 달리겠다. 트레일러 타이어는 에어 펌프가 있어 공기압을 조정한다. 약간 새는 것 정도는 보충하고 남는다. 어차피 그녀는 핏스톤 터미널까지만 운반한다. 거기서 처리하면 될 일이다. 핏스톤에서는 아마도 팀드라이버가 배달을 이어 받을 것이다.
다음 화물이 들어왔다. 인디애나 주로 250마일 정도를 돌아간 후 메사추세츠 주로 배달하는 코스다. 보스턴보다 좀 북부에 위치했다. 10시간 휴식이 끝나기를 기다려 오후 4시 30분에 출발했다.
탁 트인 중부 평원의 경치가 좋다. 운전도 수월하다. 빈 트레일러라 히마찰의 연비도 다시 회복됐다. 요즘은 히마찰의 기어 변속을 승용차 몰 듯 부드럽게 한다. 처음 야생마 길 들이듯 그르렁 거리며 기어를 갈아 먹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요즘도 정지에서 출발할 때 저단 기어는 잘 안 들어가서 힘을 줘야 한다. 다운 쉬프팅할 때 가끔 기어를 튕겨내기도 한다. FM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달렸다. 평지라 그런 지 잡음이 없고 음질이 깨끗했다. 그 동안은 음악을 듣지 않으며 달렸다. 이제 좀 운전에 여유가 생겼다는 증거다.
오후 9시에 발송처에 도착했다. 원래는 자정 약속이다. 그 정도 일찍 도착은 괜찮다. 그런데 컨펌 넘버를 요구했다. 그런 것 못 받았는데? 야간 디스패처도 잘 몰랐다. 화장실 이용하겠다며 발송 사무실로 들어가 직접 물어봤다. 컨펌 넘버를 받았는데 내일 오후 1시에 화물이 실린다고 했다. 이런 낭패가 있나. 방법이 없다. 오늘 잘 곳을 찾아야 한다. 100대 규모의 큰 휴게소가 12마일 거리에 있다. 그쪽으로 향했다. 가다보니 1마일 거리에 트럭스탑도 있었다. 거기도 100대가 넘는 규모다. 혹시나 해서 가봤다. 자리가 없으면 휴게소로 가면 된다. 자리가 드문드문 있었다. 그러나 한 두번 시도해보다 포기했다. 굉장히 좁은 곳이라 정상 셋업이 안 된다. 내 실력으로는 어림없다. 트럭스탑을 나가려는데 남자 세 명이 얘기하다 말고 빈 자리에 주차하려느냐고 물었다. 나는 뒤를 봐달라고 했다. 밤인데다 약간 블라인드 사이드 후진이라 뒤가 전혀 안 보였다. 수신호 하는 사람만 믿고 천천히 후진했다. 한 5분에서 10분 걸렸나? 앞뒤로 오가며 간신히 주차를 마쳤다.
고마운 마음에 내려서 그들과 얘기를 나눴다. 맨 처음 내게 말을 건 백인 남자, 얼굴이 역삼각형이다. 비쩍 말랐는데 키는 나보다 커서 190cm 이상 2m에 육박해 보였다. 만화에나 나올 캐릭터다. 게다가 혀가 짧다. 그에게 물으니 솔로 1주일 됐단다. 헐~ 일주일짜리를 믿고 후진했단 말인가. “너는 여기 어떻게 주차했냐?” “나는 운이 좋았다. 직선 후진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거의 한 달째인데 아직 후진이 어렵다”고 했다. “그래도 너니까 이 자리에 후진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낸다.” 나머지 한 명은 흑인인데 액센트가 있었다. 아프리카 출신이 아닐까 싶다. 또 다른 한 명은 남미계가 확실했다. 하이톤으로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혀 짧은 백인 말고는 다들 이민자 출신이었다. 백인도 유럽 출신인지도 모르지. 혀가 짧아 그런지 말이 유창하지는 않았으니까.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다 피곤해 나는 먼저 자리를 떴다. 잠시 후 그들도 흩어졌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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