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시간 휴식이 리셋되는 새벽 2시, 트럭스탑을 출발했다. 드랍앤훅이 확실하므로 리퍼 연료를 가득 채워야 한다. 중간에 주유소에 들렀다. 월마트에 도착하니 아침 6시다. 짐이 든 트레일러는 내려놓고 새 트레일러 연결했다. 이왕이면 최근에 구입한 듯한 깨끗한 트레일러로 택했다. (문짝에 문제가 있는 줄은 나중에 알았다.)
가장 가까운 트럭스탑으로 향했다. 그리 크지 않은 트럭스탑임에도 프라임 트럭이 나를 포함해 8대였다. 터미널을 제외한 외부에서 프라임 트럭을 이 정도로 본 것은 처음이다. 메인주에는 마땅한 공업단지나 농업 생산물이 없다. 들어올 물건은 있어도 싣고 나갈 물건이 마땅치 않다. 모두들 다음 화물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정오경 다음 화물이 들어왔다. 출발지가 버몬트 주다. 여기서 250마일 떨어져 있다. 빈 차로 가는 거리를 데드헤드(Dead Head)라고 하는데 이 정도면 꽤 먼 거리다. 역시나 메인 주에서는 나가는 화물이 귀하다. 시계를 보니 중간에 트럭 세차를 하면 시간이 모자랄 듯 했다. 월마트에서 산 18인치 빗자루를 조립했다. 손바닥 빗자루보다 열배 정도 빠른 속도로 쓸어 냈다. 손바닥 빗자루 보다 잘 쓸리지는 않는다. 약간 시큼한 냄새도 나는데 방향제로 처리해야겠다. (역시 물세척이 최고다)
예전 뉴잉글랜드 지역으로 가족 휴가를 떠난 적이 있다. 메인 주까지 북동부를 두루 돌았다. 메인 주야 경치가 좋은 줄 알았지만 버몬트 풍경도 그에 못지 않다. 일 하러 가는 게 아니라 관광 드라이브 나온 기분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처음 출발할 때는 5시간 30분 가량 남아 시간이 넉넉할 줄 알았다. 마지막 70여 마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구간이 왕복 2차선 국도다. 마을도 자주 지났다. 마을을 지날 때는 시속 20~30마일이다. 편도 1차선이라 추월도 어렵다. 경치는 좋았으나 시간이 꽤 걸렸다. 막판 5마일을 남겨 두고 업무 시간이 끝났다. 비장의 카드 오프 듀티 드라이브를 꺼내 들었다. 짐 실으러 갈 때 쓰면 안 된다.
발송처 도착해 체크인하고 기다렸다. 캐나다 국경이 여기서 가깝다. 주차와 닥킹은 중간 정도의 난이도. 이 정도는 해낸다. 시간 문제지. 내 옆에 닥킹한 프라임 트럭 운전사는 젊은 여자다. 조그만 몸집의 여성이 풀사이즈 콘도 트럭을 저리 자연스레 몰다니 멋지다.
문제가 생겼다. 트레일러 문이 열렸다고 냉방기가 작동을 멈춘다. 이상하다. 다른 리퍼는 문이 열린 상태에서도 작동했는데? 옆의 다른 트럭들은 작동한다. 긴급히 페북 프라임 리퍼 그룹에 질문을 올렸다. 1분도 안 돼 답변이 줄줄 달리기 시작했다. 별도의 설정(設定)이 필요했다. 내가 새 트레일러를 연결해서 그 설정이 안 됐었나 보다.
짐 다 실어도 당장 떠나진 못한다. 10시간 휴식이 지나야 한다. 새벽 2시나 3시 정도에 출발 가능하다. 배달처는 펜실베이니아 주 허쉬 초콜렛 공장이다. 중간 원료를 나르는 모양이다.
참 버몬트는 지난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 버니 샌더스의 지역구지 아마.
무사해서 다행이야
오늘을 잘 넘겨서 얼마나 다행인지. 사고가 났어도 이상하지 않은 날이었다.
여느때 처럼 10시간 휴식이 끝나는 새벽 2시에 출발했다. 초콜릿이 꽤 무겁다. 텐덤 타이어 슬라이딩 핀을 15번 정도에 맞춰야 드라이브 타이어와 어느 정도 균형이 맞다. 뉴욕, 펜실베이니아 등 여러 주에서 12번 핀 이하로 맞추게 돼 있다. 고속도로 달릴 때는 상관 없으나 국도나 지방도로 다닐 때는 문제 될 수 있다. 어제 올 때도 줄줄이 마을과 타운 중심가를 지나왔다. (빈 트레일러로 왔으니 문제는 없었다) 아무래도 신경 쓰여서 텐덤 타이어를 앞뒤로 이리저리 보내는데 생각만큼 정밀 조정이 쉽지 않다. 한두 핀 옮긴다고 움직이면 아예 그대로거나 네다섯 구멍 지나가 있다.
뉴욕주에 들어와서 고속도로 주차공간에서 쉬었다. 정식 휴게소와 달리 주차 공간 외에는 없다. 이른 아침이라 자리가 없을 듯 해 진입로 입구 갓길에 댔다. 어제 잠을 많이 못 자서 한숨 자기로 했다. 어차피 30분 휴식도 해야 한다. 알람을 맞추지 않고 그냥 잤다. 1시간이 지나 일어났다. 다시 출발.
주유소에 들렀다. 연료도 넣고 저울에 트럭 무게도 달아봤다. 무게 측정은 유료다. 회사에서 비용이 나오는데 어떻게 신청하는지 몰라 그냥 자비(自費)로 했다. 11달러 50센트. 17번 홀 상태에서 무게를 쟀다. 결과는 무사통과. 둘 다 기준치 이내지만 드라이브 타이어는 생각보다 많이 나왔고 텐덤 타이어는 훨씬 적게 나왔다. 12번 홀로 옮겼다. 드라이브 타이어는 더 가벼워졌고 텐덤 타이어는 기준치를 약간 넘는다. 트레일러에 달린 저울은 캘리브레이션(정확한 측정)을 하지 않아 믿을 건 못된다. 실제보다 눈금이 더 나오는 듯 하다. 약간 찜찜하긴 하다. 다행히 가는 내내 웨이 스테이션은 모두 문을 닫았다.
84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가는데 핏스톤 터미널을 지나간다. 어차피 내일 배달인데 터미널에서 쉬다가 갈까?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식당에서 밥도 먹고, 트럭 세차도 하고. 100마일 거리니까 배달처까지는 두 시간 거리다. 고민하다 그냥 통과하기로 했다. 일단 가보는거다. 안 되면 근처에서 쉬고.
배달처 도착 전 마지막 트럭스탑에 왔다. 어렵게 주차를 했다. 글렌에게 일찍 가도 되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드랍앤훅이라고 최대한 빨리 가라고 했다. 그래? 진작 알았으면 다이렉트로 갔을텐데. 2시간 30분 남았다. 17마일이니까 금방 간다. 그런데 일이 요상하게 꼬였다. 트럭스탑에서 나와 방향이 헷갈려 바로 고속도로를 타지 못했다. 국도로 가도 약간 더 걸릴테니 괜찮다. 가민과 퀄컴이 서로 다른 방향을 지시한다. 가민은 무조건 유턴하라고 난리다. 국도에서 유턴 같은 소리하네. 무시하고 퀄컴을 따라 갔다. 가민도 한참을 유턴유턴 난리치더니 결국에는 진행 방향의 다른 경로를 안내했다. 퀄컴이 안내한 길은 공사로 막혔다. 헐~ 이때부터 고생의 시작이었다. 가민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우회해갔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퀄컴도 경로 재설정을 통해 같은 코스를 잡았다. 그런데 이 길이 도심 중심부를 옛날 좁은 도로를 따라 통과한다. 길도 막히고, 차도 많고, 주차한 차량도 피해야 하고 한마디로 트럭이 다닐 길이 아니다. 한 20분 걸려 갈 길을 1시간도 넘게 걸려 겨우 찾아 갔다.

허쉬 초콜릿. 허쉬 파크 근처다. 여기 시스템은 또 희한했다. 경비가 자꾸 ‘병’ 이야기를 하길래 뭔 소린가 한참 헤맸다. 영화에서나 보던 것이 실제로 쓰이다니. 서류를 통에 넣으면 파이프를 따라 이동한다. 인터폰으로 통화하고 서류는 통에 넣어 보내고 경비와 직접 만날 일이 없다. 아무튼 문을 연 상태로 26번 닥에 대라고 했다. 여기 닥은 안에서 문을 연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문을 여는 게 확실하냐고 재차 확인했다. 닥에 가서도 지나가는 야드자키에게도 물어봤다. 여는 게 맞단다. 다른 트레일러들은 문을 안 연 상태 같은데, 왜 나만 열라는 것이지? 오늘따라 닥킹이 또 잘 안 된다. 몇 번을 셋업을 다시 했다. 한 30분도 넘게 걸린 것 같다. 트레일러 분리하고, 빈 트레일러 찾아서 연결하고 서류 작업하니 남은 시간이 다 갔다. 오늘도 오프듀티 드라이브다. 아 참 내 로드락 2개 챙기는 것을 깜박했다. 그거 챙기려면 트레일러 다시 연결하고 앞으로 끌어내어 로드락 내리고 다시 후진해서 트레일러 분리하고 복잡하다. 그냥 포기. 어차피 로드락 다 쓰지도 않는다. 다행히 빈 트레일러에 낡았지만 로드락이 1개 들어 있다. 내가 원래 가진 것 1개와 합해 2개니 됐다. 로드락은 또 생길 수도 있고, 터미널 갔을 때 인바운드에서 얻어도 된다. 새 제품은 사야 하지만 중고는 그냥 얻을 수도 있다. 내가 포기한 로드락은 거의 새 제품이고 길이도 더 짧게 줄일 수 있는데다 가격도 더 비싸지만 무겁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가장 가까운 트럭스탑 중에 TA가 있었다. 최근 TA에서 주유를 해 샤워 크레딧이 있다. TA에는 컨츄리 프라이드라는 괜찮은 식당도 있다. 그쪽으로 가자. 그런데 나와서 또 방향을 잃었다. 퀄컴을 따랐어야 하는데 무심결에 습관적으로 가민 경로를 갔다. 앗차차. 아까 왔던 길로 가면 안 되는데. 퀄컴 경로 재설정을 한 후 그 길을 따라 갔다. 가민은 또 유턴하라고 난리다. 시끄럽다. 시골길을 한참 간다. 불안하네. 다행히 몇 마일 가서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TA는 공포의 사선 주차(斜線 駐車)를 해야 하는 곳이다. 오늘은 좀 일찍 와서 자리가 여유로운 편이라 주차하기 쉬운 공간을 찾아 들어갔다. 하루종일 정신이 산만하고 혼이 쏙 빠진 상태라 연습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글렌에게서 연락이 왔다. 툴레도(Toledo)로 가라고 했다. 빈 트럭으로. 여기서 9시간 거리다. 정확히 어딘지도 모르고 일단 간다. 뭔가 오버부킹이 되어 트럭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세한 정보는 내일 오전 중에 줄 것이라 했다. 나는 새벽 1시에 떠날 수 있다. 툴레도, 초기부터 내 글을 읽은 사람은 알 것이다. 그레이하운드 연착으로 예정에 없이 도시 여행을 했던 곳. 언제 다시 올까 싶었는데, 트럭으로 여러 차례 지나갔다. 내일도 그쪽 방면으로 향하니 툴레도와 무슨 인연이 있나 싶다.
샤워하고 컨츄리 프라이드 식당에서 저녁 뷔페를 먹었다. 뷔페 투고를 할 것을 그랬다. 뒀다 먹어도 되는데. 배에 다 넣고 나오려니 부담스럽다. 내일 먼 길을 가려면 일찍 자자.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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