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도시 Laughlin을 뒤로 하고 Arizona의 Kingman을 향해서 달려간다. 36마일 길을 해발 3500 피트의 고갯길을 두 개나 넘는다. 손수레를 밀면서 험준한 고갯길을 달릴 수는 없다. 시간은 더디고 다리에 통증이 오고 특히 짐이 있어서 내리막 길에 더 무릎관절에 무리가 온다. 그래도 다리는 훈련을 해와서 나은데 짐을 미는 손이 저려온다.
KIngman에서 일박하고 다시 Peach Springs로 향한다. 그곳은 Hualapai 인디언의 레저베이션이 있는 곳이다.
사막(沙漠)에도 바람은 있다. 고기압과 저기압이 만나면 일어나는 바람. 아침 해가 뜨기 시작해서 어느 정도 사막의 차가운 밤공기를 데워주는 8 시부터 9 시까지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 미국의 역사를 다룬 대부분의 책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割愛)하면서 시작한다. 인디언들에게 있어 가장 모진 바람은 콜럼버스가 이 땅을 발견하고 불어닥친 광풍(狂風)일 것이다.
이토록 아름답고 비옥(肥沃)한 땅에서 천국의 부락민으로 살아가던 그들은 내 것과 네 것을 가를 이유가 없었다. 국가를 만들어 지키고 빼앗을 것이 없으니 권력자를 만들 필요도 없고 문자를 만들어 역사를 기록할 필요도 없고 법을 만들어 법의 거미줄 속에 갇혀 살지 않아도 되었다. 천국의 부락민으로 살던 1억 명이나 되던 그들이 어떻게 멸종(滅種)에 가깝게 사라졌는지 미국역사는 대답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인디언들은 ‘땅은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믿었다. 땅이 곧 어머니이고 바위,나무, 강 같은 자연 요소들은 스스로 생명력과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었다. 땅은 인디언의 전부였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는 젓줄이자 성스러움과 영성의 원천이었다. 땅 위에서 생산과 폐기가 원형으로 연결되게 생활하여 순환구조(循環構造)가 되게하였다. 쓸만큼만 아껴서 쓰고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니 자연은 언제나 풍성했다.
나는 지나가다가 마당에 나와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혹시 당신 집 마당에 텐트를 칠 수 있느냐고 부탁을 하였다. 흔괘히 허락을 하여 텐트를 치고 일찍 잠을 청하려는데 일 갔다 돌아오는 그 집 딸 Mavis가 내 손수레에 달린 태극기를 알아보고는 들어와서 차 한잔 하라고 한다.
‘안녕하세요!’하고 정확한 한국말로 인사를 하며 인디언 전통 빵까지 준비를 해놓았다. 따끈한 차가 목젖을 타고 넘어가며 마음까지 덥혀준다. 인디언 인형처럼 눈망울이 영롱한 인디언 소녀는 사막까지 찾아온 한국 손님을 마치 한류(韓流) 스타를 대하듯이 극진하게 대접한다. 소녀는 내게 한국의 드라마나 가수들을 물어보고, 나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그녀는 Hualapai부족이 아니고 남편이 Hualapai 부족이라고 한다. 6 년 전에 신장(腎臟)이 안 좋아 Kingman에 있는 병원에 다니기 가까워서 이리로 이사를 했고 남편은 15년 형을 선고 받아 연방 교도소에 있는데 아마 죽기 전에 다시 못 볼 것같다고 말하면서 눈시울을 적시고, 딸은 뭐 그런 말을 다 하냐고 눈을 흘긴다. 나는 무슨 죄를 지었냐고 물을 수도 없고 다만 이 가정에도 광풍이 지나갔구나 생각했다.
권력을 만드는 것이 싫어서 부의 독점이 싫어서 국가를 만들지 않았던 인디언들의 인본주의(人本主義)와 우리의 홍익인간 정신이 만나면 천민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앨빈 토플러가 예측한 미래의 사회가 되지 않겠나 생각을 한다. ‘국가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봐요! 어렵지 않아요. 죽음도 살인도 없죠. 종교도 없고요’ 존 레논의 imagine이라는 노래를 중얼거려본다. 왜 콜로라도의 강물은 주위의 사막을 적시지 못할까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