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 스미스에서 오작까지 거리는 38 마일이다. 중간에 몇 개의 도시를 지나지만 모텔이 없다. 사실 어제 포트 스미스에서 한 7 마일 더 이동했어야 했는데 날씨도 안 좋고 또 일찍 쉬면서 반환점 통과를 홀로 자축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이동할 거리가 늘었는데 충분히 가능한 거리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당연히 대평원은 평지라 생각하고 매일 장보는 것도 귀찮아 물과 주스 등 잔뜩 사서 손수레에 싣고 상쾌한 봄바람을 만끽하면서 기분 좋게 이동했다.
기분 좋은 달리기는 거기까지 였다. 약 23 마일을 이동하고 늦은 점심을 Mulberry에서 하면서 종업원과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부터 오작까지는 가파른 산길이라고 한다. 가파른 산길을 한두 번 오른 것도 아니어서 대수롭지 않게 듣고 강을 건너서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무거운 손수레가 힘에 부친다. 산길에 고갯길은 언제나 홀로 나타나지 않는다. 한 고개 넘으면 또 한 고개 수도 없이 이어진다. 몇 번째 고개인지 고개를 오르다가 정강이 뼈를 감싸는 근육에서 삐끗하는 신호가 온다. 순간적으로 공든탑이 무너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날아갔다는 허탈감이 엄습한다.
홀로 길을 떠나 몸이 아프면 슬프다. 하물며 이런 육신과 정신의 극한 모험을 하고 있을 때 몸에 부상이 온다는 것은 치명적인 것이다. 사실 그동안 크고 작은 부상의 위협이 몸 곳곳을 업습하였다.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 놓인 몸은 면역력(免疫力)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최고의 정신력만이 이런 부상과 병마(病魔)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위군이다. 극단의 인간정신이 시시때때로 엄습하는 부상과 병마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잘 보호해 주었는데 잠시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이 부상이 들이닥치고야 말았다.
며칠 쉬었다 가라는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가 넘친다. 문제는 며칠 쉰다고 부상에서 회복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집에서 운동을 할 때 이런 부상이 오면 보통 6개월은 운동을 못하는 것을 내가 안다. 두려운 것은 며칠 쉬는 동안에 내 최고의 방위군들이 무장해제(武裝解除) 되고 말 것 같은 것이다. 쉬는 동안 정신적 긴장이 풀어지면 나사가 풀어져 해체가 되고 만 로봇처럼 힘을 못 쓸 것 같은 두려움이다.
최고의 긴장을 장시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미대륙횡단 마라톤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지도 않지만 도전하는 사람들 대부분 중도하차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보통 때 이런 정도의 부상이라면 나는 기권을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인간한계를 넘는 그 무엇엔가 도전을 하고 있다. 최고의 인간정신을 다시 조율하여 다시 출발하는 마음으로 임할 것이다.
미대륙을 달리면서 나는 희망을 노래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희망의 노래에 귀를 귀울이고 박수를 쳐주었다. 나는 통일을 노래했고, 나는 오육십 대의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노래했고, 달리기와 건강을 노래했다. 나의 노래는 계속되어야 한다. 나의 노래가 계속되기 위하여 나의 달리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희망의 노래에는 좌절(挫折)을 넘어선, 두려움을 넘어선, 한계 저 너머 보이는 것들을 담아야 한다.
처음부터 전반부에 달리던 66번 길은 미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프런티어들이 서부로 새희망을 안고 떠나던 길이고 지금 내가 달리는 64 번 도로는 Cherokee 인디언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고향을 뺏기고 이주하면서 수도 없이 죽어나가던 눈물의 아리랑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