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동북부가 기상관측 사상 초유의 따뜻한 겨울을 맞고 있는 가운데 워싱턴 DC의 국무부 빌딩 앞에 소담스런 한국 개나리가 피어나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6일 워싱턴DC는 전날보다 기온이 다소 내려가긴했으나 최고기온이 화씨 57도(섭씨 14도)로 여전히 온화(溫和)한 날씨였다. 실종된 겨울은 급기야 병아리처럼 노란색 개나리들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이날 국무부에선 존 케리 국무장관이 주최하는 홀리데이 리셉션(Diplomacy at Home for the Holidays)이 열렸다. 이날 취재차 국무부에 오면서 Lift 택시를 불렀는데 기사가 반팔 차림의 산타분장을 하고 있었다. 요즘 날씨가 너무나 따뜻해 산타 차림의 기사가 아니었다면 크리스마스시즌이라는걸 잊을뻔 했다.
제러드라는 이름의 택시기사는 "워싱턴에선 따뜻한 겨울 종종 벚꽃도 피기는 하지만 올해 12월같은 날씨는 처음봤다. 손님들 위해서 산타 분장을 하고 있는데 너무 더워서 반팔로 지낸다"며 웃었다.
21가와 23가에 걸쳐 있는 국무부 건물 앞에는 화사하게 피어난 개나리들이 단연 시선을 끌었다. 마치 봄을 맞은 모국의 풍경을 방불(彷彿)케 했다.
개나리는 학명이 'Forsythia koreana'로 한국의 대표적인 특산식물이다. 비단 워싱턴만이 아니라 뉴욕 등 미동북부의 주택가와 도로변에는 봄이면 흔히 볼 수 있는게 개나리꽃이다.
한국꽃 개나리가 미국에서 피게 된 것은 슬픈 역사가 있다. 일제시대 미국의 식물학자들에 의해 무단 채취된 대표적인 식물자원이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아놀드 수목원이 주도한 아시아 식물채집은 1917년부터 1918년까지 이뤄졌는데 개나리와 함께 현재 미국에서 인기있는 구상나무와 노각나무, 회양목을 비롯한 무수한 한국 자생수종이 포함됐다.
당시 어네스트 월슨 연구원은 일본의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의 안내를 받아 대대적으로 한국 식물들을 채집해 갔고 이후에도 지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의 명물 벚나무도 제주 왕벚나무가 원산지이지만 미국인들은 모두 일본의 벚나무로 알고 있다. 계절을 잊고 국무부 앞에 피어난 개나리를 보니 한세기전 우리민족의 아픈 역사가 새삼 떠오르는 것 같다.
우리 대사관과 문화원 앞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지만 개나리도, 진달래도, 심지어 나라꽃 무궁화도 없다. 이제라도 이런 꽃들을 보고 코리아를 떠올릴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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